‘러시아 다보스포럼’ 맞춰 우크라 드론 공습…전시장 창문 너머로 연기

천호성 기자 2026. 6. 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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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공습 능력 과시…최근 러시아 폭격 보복
3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항구 근처에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떨어져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폭격 속에 개막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국제 행사에 맞춰 장거리 공습 능력을 과시하고, 최근 러시아의 키이우 폭격을 되갚으려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아침 텔레그램 채널에 “밤사이 러시아 영토 내 중요한 목표물들이 타격받았다. 여기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석유 터미널이 포함된다”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앞바다 섬의) 크론슈타트 기지 군사 목표물들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 공격으로 크론슈타트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발트함대 초계함 ‘보이키’호가 손상됐다. 주거 단지에서도 여러명이 다치고 도시 기반시설 일부가 손상됐다고 시 당국이 확인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국제경제포럼 개막을 몇시간 앞두고 공습을 벌였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행사가 열릴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전시장에서 17㎞ 거리까지 드론이 떨어졌다. 첫 세션 시작 때 전시장 창문 너머로 연기가 보일 정도였다. 도시 관문인 풀코보 국제공항 운영도 일시 중단돼 항공기 30여편이 취소됐다.

세르히 스테르넨코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보좌관은 “우크라이나의 타격에 이어, 멋진 검은색 연기 기둥을 배경으로 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이 개막하고 있다”고 조롱했다.

국제경제포럼은 러시아가 매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는 경제 회의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등 선진국 정상들이 찾아 ‘러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렸다. 올해는 130개국에서 총 2만여명이 온다. 푸틴 대통령은 5일 기조연설을 하는 등 회의장을 직접 찾을 예정이다.

우크라이나는 이 행사를 자신들의 장거리 타격 능력을 내보일 기회로 본다. 국경에서 1100㎞ 떨어진 이곳까지 드론을 발사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이 불리하지 않음을 과시하고, 러시아가 공들인 행사를 방해하려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의 공습에 보복하려는 의도도 있다. 지난 1∼2일 러시아군이 750대 이상의 드론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폭격해 어린이 등 23명이 숨진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는 이것(상트페테르부르크 공습)이 정당한 공격이라고 본다”며 “그들이 우리를 향해 드론·미사일을 쓰면 우리도 똑같이 한다는 점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역공을 환영했다. 뤼터 총장은 “우크라이나가 전선에서뿐 아니라, 러시아가 전쟁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을 무력화하는 데서도 점점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우크라이나 공격이 크렘린을 겁먹게 했다고 거들었다.

미국의 음모론 인플루언서 캔디스 오언스가 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오언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가 ‘남성’이라고 주장해, 마크롱 부부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AFP 연합뉴스

한편 올해 국제경제포럼에는 우즈베키스탄·탄자니아 정상이 온다. 쿠바·벨라루스·사우디아라비아는 장관을 보낸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론 고위급 참석자 명단은 글로벌사우스(북반구 저위도·남반구 개발도상국) 위주로 단출해졌다.

다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년 만에 대표단을 파견한 게 눈에 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연회장 신축을 담당하는 로드니 쿡 미 정부 예술위원장이 단장으로 대표단을 이끈다. 미국의 음모론 전문 유튜버 캔디스 오언스, 친러시아 성향의 유명 배우 스티븐 시걸, 여성 혐오 성향 인플루언서 앤드루 테이트 등도 온다. 테이트는 루마니아에서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미국 외에 서방에선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도부가 참석한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정책보좌관은 “미국인들이 이 정도 수준으로 참석한 것은 2017~2018년 이후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며 만족해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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