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이재용 회장이 사과할 일이었나?
노조 파업협박에 고개숙여
각계 이익공유 요구 거세
韓경제의 축복이 저주로

지난달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해외출장 중 급거 귀국해 대국민사과 메시지를 발표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도대체 왜 역대급 실적을 창출한 기업의 회장이 국민 앞에서 사과해야 하나.
올 1분기 삼성전자는 분기 실적 기준 사상 최대 영업이익(57조원)과 이익률(42.8%)을 실현했다. 엔비디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최상위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큰 경사이고 국가가 나서서 큰 상을 주어도 시원찮은 일이다. 영국은 경제발전, 일자리 창출과 혁신에 기여한 기업인들에게 최고 영예인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프랑스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있고, 미국에는 대통령 자유훈장이 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회장은 고개를 떨구고 사과해야 했다.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인가? 성과배분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분규가 발생하기는 했으나, 노조가 파업을 협박하면 기업총수가 사과해야 하나?
"노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큼은 변치 않겠다"고 다짐한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명령도 없이 협상 중재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노조 측의 요구대로 사측 협상대표도 바꿨다.
회장이 사과하고 장관이 나섰으니,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노사분쟁조정 시스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권익을 옹호해야 하는 노동부가 중재의 최정점에 있다는 점이다. 중재기구인 미국 FMCS와 영국 ACAS는 노동부와 무관한 절대 중립기구이고, 독일은 헌법에서 노사자치를 보장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노사분규가 발생하면 사측은 외로운 투쟁에 내몰린다. 게다가 뿌리 깊은 국민 일반의 반기업적 정서로 인해 기업은 수세에 몰리기 일쑤다. 이번에도 그동안의 정부 지원을 이유로 이익을 근로자뿐 아니라 사회와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노동부가 실제로 반도체 이익의 공유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한다고 한다.
점입가경이다. 제대로 살펴보자. 삼성전자가 받은 지원이 한국에만 특수하고 대단한 것이었나? 경쟁자인 대만의 TSMC는 세제혜택 외에도 한국에는 없는 송전망 이용료 90% 정부 대납, 가뭄 등 국가위기 시 용수 최우선 공급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대형 패키지법안(One Big Beautiful Bill)과는 아예 비교 불가다.
그럼에도 대만과 미국에서는 공공재 운운하며 이익을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이번 합의에서 가장 큰 문제는 영업이익의 직접배분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영업이익 그 자체를 모수로 성과급을 배정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이익공유의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는 영업이익에서 주주 몫(배당)을 빼고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한 투자 및 운전자금 소요분을 제외한 후 이를 기본으로 근로자들에게 차등 배분하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법정이익공유제도를 운영하는 프랑스는 세후 순수익이 모수이고 미래투자 자금을 뺀 근로자 몫 이익분배금을 5년간 기업 내에 묶어둔다.
90년 넘게 이익공유제도를 운영한 전설적인 회사 미국의 링컨 일렉트릭(Lincoln Electric)도 영업이익에서 주주배당금과 재투자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이윤을 성과급으로 개인별로 차등 배분한다. 이 회사에는 해고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성과급을 줄여 고통을 분담한다. 반도체 겨울(Semiconductor Winter)이 오면 삼성전자 직원들이 월급과 성과급을 삭감하는 데 동의할까?
삼성전자의 역사적 고성과는 이제 한국 경제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 벌써부터 N% 영업이익 배분은 노사협상에서 뉴노멀로 자리 잡을 기세다. 빈집에 황소 들어왔다고 잔치 벌이다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한다.
[강영철 좋은규제시민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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