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작하는 오정세, 니가 좋아 [MD포커스]

이승길 기자 2026. 6. 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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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인간은 없다
채널 돌리면 바뀌는 오정세의 전방위 습격
오정세 / 롯데엔터테인먼트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배우 오정세는 바쁘다. 2026년 상반기에만 해도 ENA '클라이맥스'를 시작으로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MBC '오십프로', 영화 '와일드 씽'이 공개되었거나 공개 중이다.

보통 한 배우가 이토록 짧은 주기로 다작(多作)을 이어가면 대중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연기 톤에 이미지가 소모되어 극의 몰입도를 깨뜨리는 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정세는 이 해묵은 공식을 비웃듯 깨부순다. ENA와 JTBC, MBC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대중의 머릿속에는 오정세라는 이름 석 자 대신 그가 남긴 기묘한 캐릭터의 잔상들만 또렷하게 남는 까닭이다.

그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저마다 완벽하게 분리된 서사를 살아 숨 쉬게 만든다. '모자무싸'에서 연기한 박경세는 겉보기엔 그럴싸한 영화감독이지만, 속내를 까보면 성공한 동료 황동만(구교환)을 향한 지독한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지질함의 끝판왕이었다. 능청스러운 생활 연기 속에 낮은 자존감을 드러내는 표정과 미묘한 목소리의 떨림을 심어두어,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인간 군상을 빚어냈다.

반면 극장가에서 관객들을 홀리고 있는 '와일드 씽'의 최성곤은 또 다른 결의 얼굴이다. 20년 전 한 시대를 풍미한 ‘39주 연속 2위’의 비운의 발라드 왕자에서, 현재는 숲속을 떠도는 덥수룩한 사냥꾼이 된 인물이다. 오정세는 중단발 생머리를 찰랑이며 촉촉한 눈빛으로 유치한 발라드를 부르다가도, 순식간에 야생의 비애를 품은 자연인의 얼굴로 돌변해 관객들을 들었다 놓는다. 대본의 빈틈을 쉼 없이 파고드는 그의 치열한 아이디어가 캐릭터에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은 결과다.

오정세 / 스튜디오 피닉스, SLL, 스튜디오 플로우

흥미로운 지점은 카메라 뒤 진짜 오정세의 정서가 그가 연기하는 '결핍투성이' 인물들과 완벽한 대척점에 있다는 사실이다. 20년째 데뷔를 못 한 동료에게 샘을 내고 악플에 괴로워하는 캐릭터들과 달리, 실제 오정세는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느낀 적이 없으며, 안 좋은 감정이나 비판은 무던하게 흘려보내는 편"이라고 말한다. 생각의 스위치를 빠르게 바꾸는 단단하고 긍정적인 내면이 역설적으로 그 지독한 지질함을 연기할 수 있는 단단한 자양분이 된 셈이다.

체력적·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법한 스케줄 속에서도 "일하러 갈 때 놀러 가는 기분을 내려고 한다"며 미소 짓는 이 영리한 아티스트의 다작을 대중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박해영 작가의 묵직한 대사에 숨을 불어넣어 명장면을 만들 줄 알고, 촌스러운 옛 노래마저 관객들이 지갑 속에 포토카드를 고이 접어 넣게 만드는 장르로 격상시키기 때문이다. 장르와 플랫폼의 경계를 가볍게 허물며 매번 다른 인생 캐릭터를 경신하는 그를 보며, 대중은 오늘도 기꺼이 고백할 수밖에 없다. "오정세, 당신의 다작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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