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잿더미가 된 호국도량 경주 오봉산 주사암

강시일 기자 2026. 6. 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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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전기누전 추정 화재 발생해 오봉산 주사암 소실, 김유신 장군과 선덕여왕 등의 설화와 전설 서린 주사암, 역사문화도 함께 복원해야
경주 오봉산 주사암에 4일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하고 있다. 김주석 작가 제공

역사문화와 전설이 서린 경주시 서면 오봉산 주사암에서 4일 오전 6시27분께 전기 누전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암자 건물이 완전히 소실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신라 불교와 호국 전설이 서린 산중 도량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았다.

현장에는 아직 연기가 옅게 떠 있고 잔불 정리가 이어지고 있다. 젖은 목재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흩어지지 않고 떠다닌다. 무너진 기와와 불탄 서까래가 마당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소방대원의이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렸다. 오봉산 절벽에 자리한 암자는 한때 정적이 깊은 수행처였지만, 이날 아침에는 물 먹은 기와, 재 그리고 침묵만 남았다.

주사암은 경주 서면 오봉산 정상부 절벽에 자리한 암자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 이름은 주암사였고, 이후 주사암으로 불렸다. 현재는 불국사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군사들을 훈련하고 보리술을 해 먹인 곳으로 전하는 오봉산 주사암 옆의 마당바위. 강시일 기자

오봉산 주사암은 신라의 서쪽 방어선과 맞닿은 곳이다. 부산성으로 이어진 주사암은 예부터 경주를 지키는 호국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 산성과 암자가 함께 놓인 구조가 신라의 방어와 신앙을 동시에 보여는 현장이다.

주사암 이름에는 붉은 모래의 전설이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오봉산 동굴에서 수행하던 도인과 궁녀, 그리고 붉은 주사의 흔적을 따라 왕의 군사들이 산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왕이 노승을 붙잡으려 하자 수많은 신장이 산을 메우고 막아서자 왕은 오히려 그를 국사로 모셨다고 한다.

주사암에는 또 '죽은 사람이 없는 절'이라는 민간전승도 있다. 김유신 장군이 마당바위에서 군사를 훈련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 오봉산 자락의 여근곡은 선덕여왕의 지혜를 반증하는 문화유적으로 역사학도들의 주요 탐방코스다. 역사적 사실들이 다양한 기록으로 남아 있고 자연경관이 뛰어나 오봉산 일대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오봉산 주사암과 죽지랑 설화가 서린 부산성, 선덕여앙의 이야기가 전하는 여근곡 등의 사적이 있는 오봉산 정상. 강시일 기자

이번 화재는 문화유산 관리의 과제를 다시 드러냈다. 산중 사찰은 목조건물이 많고 전기시설 관리가 어렵다. 접근로와 소방수 확보도 쉽지 않다. 원인 조사는 당국의 공식 감식으로 확인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과제를 노출했다.

복원에 대한 논의 역시 건물 재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전인섭 문화해설사는 "주사암의 가치를 전하고 있는 의상대사 창건 전승기록, 붉은 주사의 설화, 오봉산 호국신앙, 선덕여왕과 김유신 장군과 관련된 마당바위와 여근곡에 대한 사료까지 함께 복원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주민들은 주사암의 화재를 통해 "경주의 오래된 산사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묻혀 있는 역사문화의 가치도 함께 복원할 수 있는 답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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