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白球百想(백구백상)

방민준 2026. 6. 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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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칼럼과 관련 없는 참고 이미지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白球百想(백구백상)'.



수도권의 한 골프장 식당 벽에 걸린 서예 액자는 골프장을 찾을 때마다 내 눈길을 붙잡는다. 그리고 가슴 속에 조용한 회오리를 일으킨다. 철학적이고도 내면적인 네 글자는 골프를 매개로 인간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여주기 때문이다.



 



'흰 공 하나에 백 가지 생각이 담겨 있다'는 의미는 단순히 '생각이 많다'는 뜻만이 아닐 것이다. 골프를 통해 인간의 마음이 끝없이 드러난다는 뜻에 가깝다. 



 



참 묘한 말이다. 골프를 오래 할수록 사람은 스윙이 아닌 생각과 싸우게 된다. 몸은 하나인데 마음은 수백 갈래로 흔들리고 골퍼들은 그 흔들리는 마음과 씨름하느라 녹초가 된다.



 



'세게 쳐야 하나.' '또 OB 나면 어떡하지.' '이번엔 붙을 것 같은데.' '괜히 욕심내는 건 아닐까.'



몇 초 사이 인간의 마음은 끝없이 흔들린다. 그래서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생각의 운동'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다른 스포츠는 생각보다 육체적 움직임이 먼저 나온다. 그러나 골프와 궁술은 생각이 먼저 움직인다. 축구나 야구 배구 등 구기종목이나 복싱 유도 태권도 등 격투기 종목은 반사적 순간 반응이 중요하다.



하지만 골프는 공을 치기 전 이미 승부의 상당 부분이 마음속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골프는 인간의 내면을 숨길 수 없다. 조급한 사람은 급하게 치고, 욕심 많은 사람은 무리하며, 두려움이 큰 사람은 끝내 클럽을 놓지 못한다.



 



반대로 깊은 골퍼들은 점점 단순해진다.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비워야 할 순간을 알게 된다. 바람을 계산하되 바람과 싸우지 않고, 경사를 읽되 결과에 매달리지 않으며, 실수를 반성하되 다음 샷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 그들은 백상(百想)의 세계를 통과하며 결국 무상(無想)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것은 골프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오히려 생각이 사라질 때 찾아온다는 점이다. 너무 잘 맞은 샷은 종종 '친 기억'조차 흐릿하다. 몸이 억지로 만든 샷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나온 샷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지나가는 순간과 닮아 있다. 억지로 붙잡으려 하면 깨지고, 자연스럽게 맡기면 살아난다.



 



 



사진제공=방민준

 



 



어쩌면 '白球百想'이라는 말은 단순히 생각이 많다는 뜻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흰 공 하나를 통해 인간은 자기 삶 전체를 돌아보게 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골프장에서 인내를 배우고, 어떤 이는 내려놓음을 배우며, 어떤 이는 평생 자기 욕심과 싸운다.



 



그리고 긴 세월 끝에 깨닫는다. 골프의 상대는 동반자도 아니고 코스도 아니라 결국 자기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작은 흰 공 하나를 좇아 끝없이 걸어간다. 백 가지 생각 속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그 백 가지 생각을 지나, 아무 생각 없이 평온한 '무상(無想)의 경지'로 들어가기 위해.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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