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국희, 여성 사연 방송으로 끌어낸 '속사포 퍼스낼리티'

이충원 2026. 6. 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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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30년사 캡처]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마복림(1921∼2011) 할머니가 서울 신당동에서 만들어 팔던 '고추장 떡볶이'가 1970년대에 전국으로 퍼진 것은 MBC 아나운서 임국희(林菊姬·1938∼2026)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살롱' 때문이었다고 유족은 기억하고 있었다. 고추장 떡볶이와 함께 '집안일'에 매달리던 여성들의 사연이 대중 매체에 먼저 소개됐고, 그 후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했다.

TV보다 라디오의 위력이 세던 1960∼1970년대. 그 중심에 MBC 라디오가 있었고, 선두엔 임씨가 있었다. 살짝 비음이 섞인 음성으로 10초에 40자, 1분에 200자 원고지를 3장 넘게 읽을 만큼 속사포 퍼스낼리티(개성 있는 화자). 그녀가 여성의 사연을 라디오로 끌어낸 주역이었다.

임씨는 대학에서 교직을 이수했지만, 어쩐지 교사가 되기 싫었다. 2015년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여자라면 교사가 최고의 직업일 때인데도 저는 왠지 교사가 싫었어요. 교사만은 안 한다고 했던 말이 씨가 된 것 같아요. 대학(성균관대 사학과) 시절 KBS에서 대학생 방송극 콘테스트 비슷한 걸 했는데 억지로 불려 나갔다가 경상도 술집아줌마 역을 맡아 그걸로 뜻하지 않게 연기상을 받았고, 남산에 있던 방송국에 드나들면서 방송 일에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는 모든 게 비밀이었어요. 졸업하면서 곧바로 결혼을 했고, 그 직후 KBS 공채에 응해 합격했지요"라고 했다.

1961년 KBS의 5급을(현 9급) 공무원 아나운서가 됐다가 1964년 MBC로 옮겼다. TBC(동양방송) 개국 후 MBC 창설 요원들이 대거 이탈하자 월급을 5천원에서 1만2천원으로 올려준다는 소리에 임택근, 최세훈 아나운서 등과 함께 MBC로 옮겼다. '문화방송 30년 편성자료집'(1991)을 보면 1964년 4월 편성 시 신설된 프로그램으로 '탱고 살롱'(토요일 오후 10시 10분∼10시 40분, PD 최경식, MC 임국희)이 처음 등장한다.

['문화방송 30년 편성자료집'(1991) 캡처]

임국희는 1964∼1973년 심야시간대에 '한밤의 음악편지' 진행을 맡아 MBC 라디오를 대표하는 MC로 떠올랐다. 한국 최초의 심야 리퀘스트 프로그램이자 젊은이 대상 심야 팝송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밤에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면 안 된다'는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정봉화 PD는 '문화방송 30년사'에서 "모두가 깊이 잠든 고요한 밤에 라디오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면 잠자던 사람이 모두 깰 것이 아니냐고 할 때였다"며 "나는 계속 열심히 두들겨 부수는 노래를 냈는데 그것이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뒷날 심야 팝송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한밤의 음악편지'는 청취자 편지 사연을 함께 전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AFKN 방송에서 여자 진행자가 미국 본토에서 주한미군 장병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서 엽서 사연을 받아서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때는 임씨의 목소리 톤도 낮고, 차분했다. 방송을 녹음한 레코드가 불법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오상열 PD는 '문화방송 30년사'에서 "이러한 포맷에 낯선 청소년층 청취자들은 얼마간 어떻게 편지를 써야 할지 모른 탓인지 도저히 방송으로 내보낼 수 없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오곤 했다…(중략)…임국희씨와 나는 일일이 편지를 각색하는 작업을 매일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MBC 여성시대'의 시작은 '11시의 희망음악 임국희예요'였다 ['문화방송 30년 편성자료집'(1991) 캡처]

'한밤의 음악편지'를 끝으로 프리랜서가 된 임씨는 1975년 4월부터 MBC 라디오에서 매일 오전 '11시의 희망음악 임국희예요'(유제국 PD), 1975년 10월부터는 'MBC 여성살롱 임국희예요'(윤건호-최양묵-우종범 PD)를 진행했다. 아침 생방송이었다. '문화방송 30년사'(1992)에는 "TV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라디오가 개발한 형식 중의 하나가 퍼스낼리티 프로그램을 강화한 것이었다. 청취자의 계층별 특성과 생활 시간대를 고려하여 집중 개발했다"고 적고 있다. 이런 퍼스낼리티 프로그램의 맨 앞이 1974년에 시작한 '박원웅과 함께'였고, 그 다음이 'MBC 여성살롱 임국희예요'였다.

[촬영 황광모] 2014.10.6

최양묵 PD는 'MBC 50년 인사이드 스토리'(2012)에서 "(내가 '여성살롱'을 맡은 1976년 봄에만 해도) MBC 라디오의 오전 11시 방송은 청취율이 저조한 죽은 시간이었다. 청취자가 보내는 사연은 여전히 30여통에서 크게 늘지 않았다. 베테랑인 임국희 아나운서의 음성이나 진행도 나무랄 데가 없었음에도 말이다"라며 "한 달여쯤 아주 죽을 쒔는데, 크라운 햄 소시지를 만드는 회사의 차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방송되는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소시지를 제공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50통에서 100통, 200통…엽서와 편지는 순식간에 500통을 넘었다"고 회상했다. 임씨의 목소리에 소시지가 덧붙여지며 여성들의 사연이 MBC 라디오로 밀려든 셈. 여성들의 사연을 담은 편지는 하루 3천500통까지 늘어났다. 1977년 4월 2일자 경향신문 기사에선 "혼자서는 주체할 길이 없어 얼마 전에 가위로 편지봉투를 개봉하는 일만 하는 아가씨를 따로 뒀다. 그래도 쏟아져 들어오는 편지를 다 읽어내지 못해 집에까지 갖고 가 읽기 일쑤"라고 푸념했을 정도였다.

한국외대 김진홍 교수가 사연을 묶어서 책을 내자고 해서 1978년 '바구니에 가득찬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고, 2권 '또하나의 행복'을 1980년에 발간, 27판을 찍었다. 1978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최인호의 소설 '별들의 고향' 다음인 2위를 차지했다.

이때부터 아침 분위기에 어울리게 말이 빨라지고 톤이 높아지며 임국희 특유의 이미지가 형성됐다. "너무 내세우거나 새침하지도 않고 궂은일 좋은 일에 앞장서면서도 수다스럽지 않은 건강하고 선량한 이웃 아줌마"(1984.9.1 매일경제신문) 성격을 구축했다.

[월간한복 1987년 10월호 캡처]

1984년부터는 방송 후반에 이병주, 안성기, 한수산, 김동길, 오현경, 이미자, 이시형 등을 출연시켰다. 황산성도 이 프로그램에 인생상담자로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1984년에는 방송 10주년을 맞아 '편지 백일장', '특집쇼, 여성 그 영원한 이름', '기획특집 아시아의 여성계를 가다', '남성 의식 대조사' 등 다채로운 기념특집과 행사를 연말까지 펼쳤다.

1978년 10월 1일 가을개편과 함께 '컴퓨터 데이트'를 마련, 엽서를 보내오는 이들의 정보를 컴퓨터에 넣어서 매칭을 시도했다. 1979년 9월 16일 실제 부부가 탄생했다. 근로여성 생활수기를 모집하거나 '여성의 적'을 찾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오전 10시 5분부터 2시간 동안 'MBC 여성살롱'을 방송한 뒤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FM의 '임국희의 팝스퍼레이드'를 매일 방송했다. DJ로, MC로 입지를 굳히는 동안 하루 2개 정도 라디오 프로그램을 쉼 없이 진행했다. 그는 "30년 동안 매일 240분씩을 방송에 할애했다"고 말했다.

사연을 골라서 엮은 책 '바구니에 가득찬 행복' 1권(1978)의 서문에서 "우리 여성들은 모두 '자기발견'과 '부엌에서의 해방'을 시작하려 하지만 크게는 전통과 현대, 작게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을 겪고 있지 않는가"라며 "이런 갈등과 한을 극복하고 차지한 승리,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소중한 행복임에 틀림없다"고 여성살롱이 소개한 사연에 의미를 부여했다.

1979년 2권에서는 "여성이 나와 다른 사람을 함께 생각하는 사회성을 갖고 일을 한다면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성취감을 분명히 얻게 될 것"이라며 "행복에 넘친 사연 외에도 자기실현의 굳은 의지를 보이신 분들이 많은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적었다.

1988년 임국희가 여성살롱을 하차한 뒤에는 '여성시대'로 이름을 바꿔서 이종환, 송승환, 손숙, 양희은이 뒤를 이었다. 임씨는 2003년까지 평화방송, SBS, TBS(교통방송)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65세이던 2003년 방송 인생을 마무리한 이유에 대해 임씨는 "나이 들면서 어휘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다. '입덧'이란 단어가 금방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리고서는 그만둘 때가 됐구나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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