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몸속 '약물공장' 될까…체내 해독제 생산 십이지장충

장내 '약물 공장'처럼 햄스터 체내에서 치료 단백질을 생산·분비하는 소장 기생충이 개발됐다. 수년간 인체 소장 내에 머무는 기생충의 특성을 활용해 만성질환 치료제나 독소 해독제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새로운 약물 전달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팀은 장내 기생충인 십이지장충이 햄스터 소장에서 독소 치료용 항체를 생산하고 혈류를 분비할 수 있게 유전자를 교정한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3일 발표했다.
십이지장충은 주로 열대 지역에서 전세계 수억 명을 감염시키는 장내 기생충이다. 인체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다양한 분자를 분비하며 장 내에서 수년간 생존하도록 진화했다.
연구팀은 십이지장충의 특성을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십이지장충이 치료제를 분비하도록 유전자를 바꿨다. 복어 등 일부 해양생물이 생성하는 치명적 신경 독소인 '테트로도톡신'을 중화하는 인간 항체 유전자를 십이지장충에 삽입했다.
유전자를 바꾼 십이지장충을 햄스터에 감염시키자 기생충은 햄스터 체내에서 항독소 항체를 생산해 혈류로 분비했다. 혈액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테트로도톡신 중화 기능이 확인됐다. 일반 십이지장충에 감염된 동물의 혈액에서는 중화 기능이 발견되지 않았다.
십이지장충이 약물 전달 플랫폼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체내 증식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제한된 수의 유충을 알약을 섭취하거나 피부에 바르는 방식으로 투여하면 소장에 정착해 생존하지만 개체 수는 더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이후 구충제를 한 번 투여하는 것만으로 24시간 안에 모두 제거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로 기생충을 활용한 '생체 약물공장' 개념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미트레바 교수는 "유전자를 교정한 기생충이 특정 치료 단백질을 생산하고 치료 단백질이 숙주 체내로 전달돼 기능하는 전 과정을 확인했다"며 "지속적으로 표적 약물을 전달하는 새로운 제약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전자 교정 십이지장충의 항체 생산량은 제한적이다. 연구팀은 항체 생산·분비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십이지장충이 분비한 치료 단백질이 대부분 장 내부에 머무는 만큼 크론병·궤양성 대장염 등 염증성 장질환이나 식품 알레르기 치료에 적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연구팀은 사람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전자 교정 십이지장충이 자연 환경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알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생물학적 차단 기술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doi.org/10.1038/s41467-026-73447-9
[문혜원 기자 m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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