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여자축구단 방남이 한국 사회에 남긴 질문

“운동장에 있는 우리 선수들에게 들리도록 우리 팀 이름 크게 불러볼게요!”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만큼 쏟아지는 장대비를 뚫고 한 축구 팬이 외쳤다. 서포터스 약 100명이 “수원FC!”라고 화답했다. 그러자 다른 쪽에 앉은 관중 수천 명은 “내고향!”과 “수원!”을 번갈아 소리치기 시작했다. 5월20일 오후 7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전에서 한국의 수원FC 위민과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이 맞붙었다. AWCL은 2024-2025시즌 정식으로 출범한 아시아 지역 여자 클럽 축구대회다. 우승 상금 100만 달러(약 15억원)를 걸고 아시아 최정상을 가리는 국제대회이기도 하다.
준결승전은 수원FC 위민 홈구장에서 열렸다. 하지만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참석을 확정한 순간부터 언론의 관심은 이들에게 쏠렸다. 리유일 감독이 이끄는 내고향여자축구단은 2012년 평양을 연고로 창단됐다. 북한 스포츠용품 회사인 ‘내고향’의 후원을 받는 구단이자 북한 1부 리그 우승을 여러 번 차지한 북한 여자축구 강호다. 이번 시즌 AWCL 예선에서 3전 전승(23득점 무실점)으로 조 1위를 하고 본선에 진출했다. 5월17일 내고향여자축구단 현철윤 단장과 선수 23명, 지원 인력 등 모두 35명이 AWCL 준결승전 참가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건 과한 해석”
남북 간 왕래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5월18일 통일부가 발간한 〈2026년 통일백서〉에 따르면 2019년부터 북측 인사의 방남이 전혀 없었고, 2021년부터는 우리 측 인사의 방북도 끊겼다. 북한 선수단이 국제 스포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것도 2018년 12월 인천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 경기가 마지막이었다. 5월17일 인천국제공항에는 과거 남북 스포츠 교류 때처럼 북한 선수단을 환영하는 인파가 몰렸다. 내고향여자축구단 감독과 선수단은 사전 공식 기자회견, 공개 훈련 등 계획된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적대적인 남북 관계 속에서 돌연 한국을 찾은 내고향여자축구단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는 북한 선수단 파견을 “남북 관계 개선이라고 보는 건 과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북한은 스포츠 경기 등 자신 있는 쪽에 적극적이었다. 또 ‘김정은식 세계화’라고, 꾸준히 ‘정상 국가’ 이미지를 보여주려 노력해왔다. 그 연장선상으로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건 ‘두 국가론’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북한 주민들을 대내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내고향여자축구단 방남을 계기로 (남한과 북한이) 독자적인 두 국가라는 걸 명백하게 하고 싶다는 것도 동기가 됐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라고 선언했다. 지난 3월에는 헌법을 개정해 원래 없던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통일 관련 표현을 모두 삭제하는 등, ‘두 국가 관계’를 명문화했다. 이우영 교수는 “‘적대적’보다 더 중요한 건 ‘두 국가론’이다. 남한과의 관계가 더 이상 한 민족의 이슈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문제라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이번 내고향여자축구단 방문은,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북한이 이후 한국을 어떻게 대할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첫 사례였다.

새로운 자세는 입국 장면에서부터 드러났다. 5월17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장을 나오는 북한 선수단의 손에는 북한 여권이 들려 있었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북한을 외국으로 보지 않는다. 그간 북한 주민의 남한 방문은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여권이 아닌 방문증명서를 발급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북한도 이런 왕래 방식을 수용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선수들은 공항 심사에서 방문증명서 대신 여권을 제시했다. 정부는 북한 여권을 신분 확인용 참고 자료로만 활용했다고 밝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딜레마에 놓여 있다’라고 분석했다. “여자축구의 ‘압도적 실력’을 통한 체제 우월성 과시 등 포기하기 힘든 실리 때문에 남한 방문을 허용했지만, 동시에 체제 오염을 막아야 하는 모순된 과제가 있다. 남한의 발전된 모습과 자유로운 문화가 TV 중계와 선수단의 눈과 귀를 통해 유입되는 건 북한 당국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북한 선수들이 남한 사람들의 박수와 환대를 직접 경험하면서 상당한 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남측 인사와의 접촉을 제한하는 등 전례 없는 수준의 통제를 가했을 것이다.”
준결승전 전날인 5월19일 낮 12시경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단이 숙소로 돌아오는 시점에 맞춰 호텔 입구 통제가 시작됐다. “이제 들어옵니다”라는 한 현장 관계자의 발언이 끝나자 ‘NAEGOHYANG WOMEN’S FC’라는 영문명이 앞 유리에 부착된 빨간 버스가 호텔 입구에 들어섰다. 낮 12시12분부터 하늘색 체육복 차림의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빠르게 하차를 마쳤다. 현장 관계자들은 “선수들이 불편해한다”라며 휴대전화를 꺼내지 말라고 말했다. 이들은 선수 모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갈 때까지 한국 시민들의 접촉을 차단했다. 버스에서 내린 뒤 웃고 떠들면서 호텔로 들어서던 선수 두 명은 한국 시민들이 보이자 빠르게 굳은 표정을 지었다.

둘로 쪼개진 관중석
남북 대결을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준결승전 티켓 약 7000장이 12시간 만에 매진됐다. 남북 교류 협력단체를 중심으로 민간단체 300여 곳이 3000명 규모의 남북 공동응원단을 꾸렸고, 통일부는 티켓 구매, 피켓 준비 등 명목으로 남북협력기금 3억원을 지원했다. 5월20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의 체육, 문화, 종교 등 비정치적 교류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든 박근혜 정부든 과거 정부에서도 다 지원해왔다”라고 설명했다. 정욱식 공동응원단장은 “남북 관계 개선에 아주 작은 디딤돌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동응원단을 꾸렸다고 말했다.
5월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는 폭우에도 관중 5763명이 자리를 채웠다. “수원 짝짝짝!” “내고향 짝짝짝!” “잘한다. 잘한다. 우리 선수 잘한다!” 오후 7시 경기가 시작되자, 공동응원단은 수원FC 위민과 내고향여자축구단의 엠블럼이 각각 새겨진 작은 깃발 두 개를 흔들며 양 팀의 이름을 번갈아 외쳤다. 주최 측이 “양쪽 모두 응원 부탁드린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경기 내내 일방적으로 “내고향”을 외치는 관중도 있었다. 이들은 수원FC 위민 득점에는 침묵하고, 내고향여자축구단 득점에는 환호했다. 방종운씨(68)도 그중 하나다. 방씨는 “우리 민족은 통일을 해야만 살아남는다. 북한 선수들을 보고 응원하고 싶어서 여기 왔다”라고 말했다.
모두 공동응원단과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수원FC 위민 서포터스는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반칙이 선언되거나 이들의 공격이 실패할 때마다 강한 야유를 보내며 수원FC 위민을 응원했다. 응원석에서 조용히 박수를 치던 김 아무개씨는 “나는 수원FC 팬이 아니라 FC안양 팬이다. 어이없게 ‘내고향’을 응원하러 온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수원FC 위민에) 힘이 되고 싶어 왔다”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1-2로 수원FC 위민이 역전패했다. 박길영 수원FC 위민 감독은 경기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축구팀이다. 경기하는 내내 조금 속상하기도 하고 마음이 조금 그랬다”라고 공동응원단을 향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양 팀 선수들 사이 특별한 교류는 없었다. 경기 전후 팀 인사 때 가볍게 손을 맞댄 정도였다. 양 팀 주장 지소연 선수(수원)와 김경영 선수(내고향)가 경기 전 가벼운 악수를 나누기는 했지만, 경기 도중 넘어진 상대 선수에게 손을 내밀거나 일으켜 세우는 장면은 보기 어려웠다. 경기 종료 후 공동응원단에게 화답하는 모습도 없었다. 리유일 감독은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공동응원단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감독으로서 경기에만 포로되다(마음이 쏠리다) 보니까 크게 의식은 잘 못했지만, 이곳 주민들이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라고 답했다.
북한 선수단의 한국 방문이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우영 교수는 “북한에는 남한이 개최하는 경기 참석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주요) 경기에 한해 참석한다는 게 원칙이었다. 이번에 북한이 그 가이드라인을 깼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임을출 교수는 “김정은이 모든 물리적·제도적 연결을 차단했는데도, 스포츠라는 ‘국제 규범’ 아래 선수단이 오가는 건 남북 간 최소한의 연락 체계와 안전보장 장치가 다시 작동한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5월21일 조선중앙통신은 “우리나라의 내고향 팀은 한국의 수원 팀을 2-1로 이기고 결승 단계에 진출하게 됐다”라고 보도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남 소식을 보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약 300자 분량의 단신이었다.
수원·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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