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 BMK가 서울맹학교를 찾는 까닭

지난해부터 ‘꽃피는 봄이 오면’ 가수 BMK(본명 김현정)는 교단에 선다. 월요일에는 강의를 위해 경기도 평택 집과 학교가 있는 서울 삼각지역을 SRT 기차와 지하철로 오간다. 그가 수업을 하는 곳은 국립서울맹학교 용산캠퍼스. 이 학교의 방과후교실에서 한 학기에 10회씩, 1년 20회 강의를 한다. 성인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음악 수업이다.
뛰어난 가창력과 섬세한 감성으로 ‘솔(soul) 국모’라는 별명을 가진 그에게 사실 교단은 무대만큼이나 친숙한 곳이다. 1997년 서울재즈아카데미부터 시작해 2020년까지 수원여대, 백제예술대,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김천대 등에서 실용음악 강의를 했다. 또 특수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어 가수 생활을 하면서 심리코칭, 미술치료 등을 공부했다. 음악치료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대학 강의는 할 만큼 했다 싶었고” 대학에서 수업한 내용을 정리해 보컬 트레이닝 책을 쓸 계획으로 강의를 그만두었다. 그때가 코로나19 팬데믹 즈음이다. 그런 그가 왜 국립서울맹학교의 방과후강사가 되었을까.
어느 날 지인을 만난 게 계기가 되었다. “젊은 친구인데, 중도 시각장애인이 돼 이 학교를 다니고 있더라. 예전에 만났을 때 그 친구는 시각장애인이 아니었다. 시각장애인이 되어서 다시 만났을 때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장애인이 황반변성 등 질환으로 후천적 시각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남의 얘기가 아닐 수도 있는 거다.” 국립서울맹학교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국립서울맹학교는 1913년에 개교한 한국 최초의 특수학교다. 종로캠퍼스에 초중고 과정을 두고 있다. 용산캠퍼스에는 이료재활, 이료전문 등 성인 과정을 두고 있다. ‘이료(理療)’는 ‘체표(몸의 표면)에 물리적 자극을 가해 피로 회복과 건강 증진을 꾀하고 각종 질병의 예방·치료에 도움을 주는 처치 방법’을 뜻한다. 용산캠퍼스는 전문 이료인 양성을 목적으로 삼는다. 졸업하면 안마사 자격증을 받는다. 용산캠퍼스는 현재 성인 학생 68명이 다니고 있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BMK는 문화·예술 수업이 있는지 궁금했다. “교육과정의 초점이 전문 이료인 양성에 맞추어져 있다고 하니 아쉬웠다. 누구보다 위안과 치유가 필요하고, 문화·예술 수업이 필요할 텐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BMK는 학교 측에 ‘무료로 음악 특강을 하고 싶다’고 연락했다. ‘BMK가 왜?’ 할 정도로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이효성 국립서울맹학교 교감은 흔쾌히 학교 문을 열어주었다.

2024년 11월, ‘BMK와 함께하는 세계음악 여행’ 특강이 열렸다. 중도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로는 여행을 한 번도 간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마련한 음악 수업이다. 재즈·블루스 음악을 듣고 미국 여행을, 클래식 음악을 통해 유럽 여행을 상상해보자고 했다. “음악 수업을 통해 전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한 수강생이 울더라. 교감 선생님 등 교사 몇 분도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 위안과 치유가 되는 수업이라고 공감해주었다. 그날 그 수업을 잊을 수가 없다.” BMK의 말이다. 음악 수업의 효과와 가능성을 확인한 날이었다.
1회성 수업으로 그쳐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수업을 이어갈 방법이 없을까. BMK는 국립서울맹학교 방과후강사직에 응모했다. “국립학교라 방과후강사가 되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 많았다. 건강검진도 해야 하고, 범죄 이력을 조회해 관련 서류도 내고(웃음). 면접까지 아주 험난한 산을 넘고 넘어 1년 계약직 방과후강사로 채용됐다. 용산본원에서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 중에 ‘BMK 뮤직 클래스’라는 수업명을 못 알아들으시는 분이 있었다. 제가 방과후수업을 하러 온다는 걸 상상을 못했던 것 같다(웃음).”
한 학기에 10회 수업. 다양하게 커리큘럼을 짰다. BMK가 노래 수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친분이 있는 음악치료사협회장을 섭외해 ‘음악치료’ 수업을 병행했다. 전문 성우가 낭독 수업을 하고, 작사가가 음악적 심상을 말로 표현하는 작사 수업을 열었다. 소리의 진동을 느끼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싱잉볼’ 수업도 열었다. 음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끔 초점을 맞추었다. 친분이 있는 외부 강사 강의가 있을 때도 BMK가 수업을 함께하며 가교 역할을 했다. 그렇게 지난해 두 학기 동안 20회 음악 수업을 했다.

그가 맹학교에서 방과후수업을 하는 걸 아는 이들은 ‘혹시 가족 중에 시각장애인이 있느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BMK는 ‘내가 답답해서 시작한 일’이라고 답한다. “시각장애인이 된 뒤부터는 인생을 새롭게 살아야 하는데, 그분들의 선택이 안마사라는 직업 하나밖에 없다니 내가 가슴이 답답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이지만 100% 누구나 그거 하나만을 위해 달려갈 수는 없지 않나.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선택을 좀 더 폭넓게 할 수 있으려면 문화·예술 수업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이 수업을 시작했다.”
음악 수업이 정규수업이 되었으면
그가 제안하고 학교가 호응해 시작한 일인데, BMK는 ‘방과후수업’이라는 한계를 느낀다. 자신이 그만두면 이 수업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정규수업으로 ‘롱런’했으면 하는 마음에 BMK는 지난해 수업을 영상으로 기록해두었다.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육부 관계자들에게 맹학교에 음악 수업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수업을 하지 않더라도 음악 수업이 정규 시스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른 공적 기관의 강사료 지급 기준을 참고해, 1년 동안 음악 전문가를 초빙해 수업을 하면 비용이 얼마나 들지 계산해서 정책 제안서를 쓰기도 했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의미 있는 음악 수업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보니 1년에 1000만원 정도더라. 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학교 관계자들이 해결하기는 어렵겠더라. 문화·예술 수업의 중요성을 정책 결정하는 분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5월18일 오후 2시50분 ‘BMK 뮤직 클래스’를 참관했다. 이날은 ‘노래 교실’ 수업이 열렸다. 특강까지 포함해 스물여덟 번째 음악 수업이다. BMK가 수원여대에서 음악을 가르친 보컬 트레이너 안소영씨가 피아노 연주를 도왔다. ‘방과후강사’ 김현정씨가 출석을 불렀다. 한 명 한 명 출석을 체크하며 오지 않은 학생들의 안부를 물었다. 음악 수업으로 맺어진 관계, 서로 간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중간에 늦게 들어온 학생을 김현정씨가 자리로 안내했다.
이날은 ‘걱정 말아요 그대’와 동요 ‘등대지기’를 번갈아가며 함께 불렀다. ‘내 몸에 맞게 일정한 톤과 일정한 세기로 노래 부르는 법’을 실제 경험과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강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강사와 수강생 모두 자주 웃었다. “내 수업만은 숨 쉴 수 있는 숨구멍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라고 BMK 김현정씨는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업을 듣는 장호철 학생회장은 “이 수업을 들으면 정서적으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교양 수업으로 키워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서울맹학교 학생에게는 ‘선물’ 같은 수업이다. BMK의 노래처럼.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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