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 일상 된 의료현장...필수의료 무너진다
민형사 법률지원 물론 정신건강까지...의료인 안전망 구축 나서
“안심하고 진료할 환경 만드는 것이 사명...든든한 버팀목 되겠다”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민사소송만 진행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제는 경찰 조사부터 형사절차, 민사배상까지 의료인이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공제조합은 그 과정에서 의료인을 보호하는 든든한 안전망이 돼야 합니다."

최근 의료현장을 둘러싼 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환자 권리의식도 강화되면서 의료분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민사소송을 넘어 형사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의료인들이 느끼는 부담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 박 이사장의 진단이다.
박 이사장은 "최근 조합원들을 만나보면 가장 크게 호소하는 것이 형사 리스크"라며 "예전에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민사배상 문제를 걱정했다면 이제는 경찰조사와 형사절차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공제조합에 접수되는 의료분쟁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현재 조합원 수는 약 3만5000명에 이르며, 지금까지 접수된 의료분쟁은 2만8000여 건에 달한다. 누적 공제금 지급 건수는 2만1000여 건, 지급액은 1670억원을 넘어섰다.
박 이사장은 "최근 5년간에만 1만4000건 이상의 의료분쟁을 처리했다"며 "그만큼 의료현장의 법적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 단계부터 변호사 지원...법률지원 강화
책임보험 의무화 시대...공제조합 역할 확대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공제조합은 올해부터 형사사건 법률지원 체계를 대폭 강화한다.
기존 기소 이후 변호사 선임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경찰 조사 단계부터 변호사가 입회하는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의료인이 전문적인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
박 이사장은 "첫 경찰 조사에서 어떤 진술을 하느냐가 사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며 "의료인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혼자 대응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공제조합은 조합원들이 경찰서 문 앞에 혼자 서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제도를 준비하고 있으며, 의료인이 위축되지 않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법률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박 이사장은 "실제 현장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인이 형사절차에 휘말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의료현장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도 공제조합에는 중요한 변화다. 법 개정에 따라 의료기관 개설자는 앞으로 의료사고 배상책임보험 또는 책임공제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이에 따라 공제조합 역시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게 됐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일부에서는 책임보험 의무화를 규제로 바라보지만 공제조합 입장에서는 의료사고 대응체계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박 이사장에 따르면 공제조합은 1981년 대한의사협회 공제회로 출발한 이후 45년 가까이 의료분쟁만을 전문적으로 다뤄왔으며, 전국적인 분쟁 처리 네트워크와 112명의 전문과 심사위원, 27명의 변호사 심사위원이 참여하는 전문 심사체계를 갖추고 있다.
박 이사장은 "민간 보험사가 단순 보험상품 중심이라면 공제조합은 의료현장을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해 의료분쟁을 해결한다는 차별성이 있다"며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무가입 시대에 가장 적합한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필수의료 살리려면 의료인 보호부터

박 이사장은 "응급의료, 분만, 소아진료 등 필수의료 분야는 다른 진료과보다 의료사고 위험과 법적 부담이 큰 분야"라며 "젊은 의사들이 필수과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 역시 과도한 사법 리스크에 대한 우려"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의료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법적 위험을 꼽았다.
박 이사장은 "분만, 소아외과, 응급의학과 같은 분야는 의료행위 자체의 난이도가 높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많아 의료진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문제는 그 결과가 수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이 넘는 민사배상과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결국 이러한 구조가 우수한 의료인력의 필수의료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가 인상도 중요하지만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안전망 구축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제조합은 올해부터 정부의 필수의료 배상보험료 지원사업을 통해 분만 산부인과 전문의, 소아 외과계열 전문의, 응급의료기관 전담 전문의 등 3955명과 필수의료 8개 과목 전공의 3646명을 대상으로 의료사고 배상책임 보장을 제공할 계획이다.
박 이사장은 "국고지원금만으로 고액 의료사고에 대한 민사 책임을 담보하고 본인 부담금을 없애 보다 많은 필수의료 종사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제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형사사건 법률지원 서비스는 물론 진료 중 발생한 사고로 조합원이 사망할 경우 최대 3억원까지 보장하는 단체상해사망 담보사업도 운영 중"이라며 "의료인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 민사·형사·신체 위험을 아우르는 종합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공제조합은 최근에는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은 물론 의료인까지 함께 지원하는 새로운 모델도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협력을 통해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정신건강 지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 이사장은 "의료사고는 환자와 가족뿐 아니라 의료인에게도 큰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며 "공제조합은 의료인 보호와 환자 지원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 잡힌 안전망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결국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인들이 법적 부담과 불안감에서 벗어나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공제조합의 존재 이유"라며 "앞으로도 의료인을 위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