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두려워 않는 아이가 AI 인재… 부모는 ‘마음 면역력’ 키워줘야”
AI가 정답 1초만에 쏟아내는 시대, 본질 꿰뚫는 사고력 있어야 ‘주인’
눈-귀로만 하는 학습은 가짜 공부… 남에게 가르치며 꺼내야 내 것 돼

30년 넘게 교육심리학을 연구해 온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오늘의 정답이 내일에는 오답이 될 수 있다”며 “학생들이 갖춰야 할 역량은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책 ‘학습 민첩성의 힘’을 펴낸 신 교수에게 AI 시대 달라진 공부법과 학부모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학습 민첩성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해 알아내려는 마음을 말한다. 흔히 민첩성이라고 하면 남보다 빨리 선행학습을 하고 진도를 나가는 것을 떠올리는데, 학습 민첩성의 본질은 속도가 아닌 ‘전환의 유연함’이다. 익숙한 공부법이나 과거의 성공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 이를 과감히 버리고 낯선 상황에 맞춰 새롭게 배우는 방식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학습 민첩성이 높거나 낮은 학생의 특징은….
“학습 민첩성이 낮은 학생은 처음 보는 문제를 만나면 배운 적이 없어서 풀지 못한다며 금세 포기한다. 반면 학습 민첩성이 높은 아이는 ‘배운 적이 없으니 내가 한번 알아볼까’라며 호기심에 눈을 반짝인다. 한 가지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과감히 다른 방식을 시도하는 유연함을 보인다. 문제를 틀렸을 때는 좌절하는 대신 전략을 바꿔 다시 시도해 보려고 다짐하며 실패를 성장의 데이터로 삼는 회복력을 보여준다.”
―학습 민첩성은 타고난 재능이 아닌 태도인가.
“부모는 태생적 지능이 높아야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습 민첩성은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마음의 근육이자 습관이다. 낯선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태도나 실패했을 때 다음 전략을 생각하는 유연한 태도를 말한다. 학습 민첩성은 부모의 지지 속에서 정답이 아닌 과정을 성찰하는 훈련을 통해 누구나 단단하게 키울 수 있다.”
―AI 시대 이전과 이후 학습법의 가장 큰 차이는….
“과거에는 ‘지식의 소유’, 즉 지식을 뇌라는 창고에 얼마나 많이 쌓아두는지가 중요했다. 주어진 정답을 남보다 빨리 외우고 이해하는 게 핵심이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한 번 하면 세상의 방대한 지식에 쉽게 접속할 수 있다. 이제 학습법의 본질은 지식의 암기가 아니다. AI가 찾아준 지식을 자신의 방식대로 연결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고차원적인 사고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아는지보다 어떻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활용하는지가 미래의 경쟁력이 됐다.”

“현재 학생들은 어제 배운 지식이 내일이면 옛것이 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어진 정답을 실수 없이 찾는 일은 이미 AI가 인간을 추월했다. 이런 시대에 지식 암기에만 그치는 과거의 공부법만 고집하면 결국 AI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습 민첩성을 갖춘 학생은 다르다. AI가 내놓은 대답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본질을 꿰뚫는 고차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계를 유능한 동료로 활용한다. 기계가 주는 답을 수동적으로 외우는 학생은 AI의 노예가 되지만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학생은 AI를 잘 활용하는 주인이 된다.”
―AI 시대에는 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확한 답변을 내놓는 훌륭한 대답 기계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먼저 질문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질문은 지적 결핍을 느끼고 호기심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답이 1초 만에 쏟아지는 시대일수록 엉뚱한 상상을 하고 타인이 보지 못하는 이면을 들춰내는 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어떻게 공부해야 학습 민첩성을 기를 수 있나.
“눈으로 교과서를 읽고 인터넷 강의를 보는 건 뇌가 편안한 가짜 공부다. ‘1타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강사가 막힘없이 강의 내용을 설명하니 수업을 듣기만 하면 잘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내 머릿속에 남는 결과를 적게 만든다. 학습 민첩성을 기르는 진짜 공부는 책을 덮는 순간 시작된다. 방금 배운 내용을 책을 보지 않고 빈 종이에 직접 써보는 ‘백지 복습법’, 가상의 학생에게 선생님처럼 가르쳐 보는 ‘자기 설명’을 추천한다. 내가 무엇을 완벽히 알고 어디서 막히는지 점검하며 뇌를 치열하게 괴롭히는 ‘꺼내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불편한 과정이 쌓여야 비로소 어떤 낯선 문제라도 유연하게 풀어낼 수 있는 진짜 실력이 된다.”
―학부모는 자녀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나.
“정답을 곧바로 알려주기보다 자녀가 스스로 논리적 빈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 처음에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작은 일을 해냈을 때도 칭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점차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이 생겨 어려운 일도 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적절한 실패 경험도 중요하다. 백신을 맞아 면역력을 키우듯,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실패를 겪어봤을 때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근육을 기를 수 있다. 부모는 자녀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해내지 못했을 때 든든하게 우군이 돼 주는 ‘정서적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
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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