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자유분방하게 개성 있게… 걸그룹도 이젠 웃겨야 산다
멤버들 개성·관계성 보여주는 '자콘' 올려 화제
소녀시대 가상유닛 '효리수'도 자연스러운 웃음

“거제 야호~!”
뚱딴지같은 외침이 K팝 걸그룹 판을 뒤흔들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 JYP의 엔믹스, 하이브의 르세라핌 등이 줄줄이 대규모 자본을 쏟아부으며 컴백 대전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온라인에선 설립된 지 6년밖에 안 된 중소 기획사의 걸그룹이 화제성을 독차지하고 있다. 2024년 데뷔해 올해로 활동 3년 차를 맞은 5인조 걸그룹 리센느다.
‘거제 야호’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은 리센느의 리더 원이가 지난 3월 말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자콘(자체 제작 콘텐츠) ‘갸루의 자세에 대해서 배워보았습니다’에서 시작했다. 동료 일본 멤버 미나미와 ‘갸루’ 콘셉트로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경남 거제 출신인 원이가 “너 지금 이러고 거제 가잖아? 너 거제 시민들한테 혼나”라고 말하자 미나미가 “거제 야호”라고 외친 것. 일본에서 ‘야호’는 등산할 때는 물론이고 젊은 여성들의 가벼운 인사로도 쓰인다.
‘거제 야호’로 시작해 지난달 22일 올린 ‘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까지, 원이 유튜브 채널의 갸루 영상 3편은 3일 현재 총 1,070만여 조회수를 올렸다. 최정상급 아이돌을 제외하면 웬만한 인기 그룹 자콘 영상이 보통 수십만 조회수에 그치는 것과 달리 원이의 채널은 개설한 지 4개월밖에 안 됐는데도 편당 평균 약 200만 회를 기록 중이다. 경주 출신인 같은 팀 멤버 제나와 함께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찍은 한 달 전 영상도 420만 회, 지난달 29일 올린 사투리 영상 2탄은 닷새 만에 331만 회를 기록했다. 지난달 24일 30만 명 수준이던 구독자도 열흘 만에 두 배 이상(3일 기준 65만 명)으로 늘었다.

리센느의 인기는 특정 곡의 반짝 히트로 끝나는 게 대부분인 여느 ‘중소돌의 기적’과는 양상이 다르다. 소속사가 기획된 이미지나 팬덤만을 위한 콘텐츠가 아닌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움과 예능 스타 못지않은 재치, 멤버들의 독특한 개성과 관계성이 일반 팬까지 끌어당기고 있다. 그룹 공식 자콘이 아닌 멤버 개인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란 점도 특징이다. 소속사 더뮤즈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공식 그룹 채널과는 시각과 결이 다른 콘텐츠로 원이와 멤버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콘 인기는 리센느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한 차례 역주행을 했던 첫 미니앨범 수록곡 ‘러브 어택’(2024)은 2일 멜론 일간차트 25위까지 오르며 발표 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 곡은 미국 그래미닷컴이 ‘2024년 뜨겁게 달군 K팝 10곡’에 선정했고, 곡이 수록된 ‘신드롬’은 같은 해 빌보드 선정 ‘올해의 K팝 앨범’에 포함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예능감으로 음악 실력을 뒤늦게 인정받은 셈이다.

걸그룹 대전에서 한 발 떨어져 자콘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또 하나의 걸그룹이 있다. 실존하는 그룹이 아닌 비공식 걸그룹 ‘효리수’. 소녀시대 멤버인 효연, 유리, 수영이 같은 그룹의 유닛인 태티서(태연, 티파니, 서현)에 대항해 농담처럼 만든 유닛이다. 지난해 효연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효연의 레벨업’의 가짜 다큐 ‘가짜 김효연’에서 티파니에게 유닛 결성을 호언하면서 시작됐다.
효리수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린 것은 지난 2월 올린 영상 ‘태연이도 인정할(지는 모르는) 효리수 메인 보컬 탄생’이었다. 400만 조회수를 넘긴 이 영상에서 세 멤버는 과장된 열창과 음이탈, “(소녀시대 때 파트가 적어서) 우리 엄마는 나 무대에 선지도 몰라” 하는 식의 자학 개그를 천연덕스럽게 선보이며 “신흥 개그 그룹”을 자처했다. 팬들은 소녀시대 활동 시절의 신비주의와 무결점 이미지를 벗고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K팝이 대형 기획사의 ‘쩐의 전쟁’으로 바뀌고 중소 기획사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자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중소 기획사의 경우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이를 알릴 기회가 많지 않은데 자콘은 그룹의 장점을 드러내며 역전을 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라면서 “최근에는 멤버 각자의 자연스러우면서 자유분방한 매력과 진정성을 보여주려 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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