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을 만나다] 5. 정대교 석공예 명장
매형 석공예 권유…짧은 수련기간 두각
작가 의뢰한 작품 돌로 구현 불구
“이름 없었다” 아쉬움 이탈리아행 결심
태아의 형상·DNA 구조 등 작품에 담겨
“명장 명예직 가까워…활용 구조 필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탄생·인내’ 돌에 새기다
돌은 단단하다. 쉽게 휘어지지도, 마음대로 깎이지도 않는다. 때로는 작은 충격에 금이 갈 때도 있고, 한번 잘못 건드린 돌은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정대교 강원도 석공예 명장의 손끝을 거친 돌은 어느새 부드러운 곡선을 품고 나선형으로 말려 올라간 대리석은 생명의 시작처럼 힘차게 뻗어난다.

정 명장은 “돌로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를 만들어내고 싶었다”며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인내와 생명의 힘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횡성 둔내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모두 지역에서 보낸 정 명장이 처음부터 석공예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무렵, 교내에서 모집하던 목공 기능반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것이 기술인의 첫 길이었다. 당시 기능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고, 입상자에게는 여러 혜택도 주어졌다. 손으로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했던 정 명장은 대학 진학 대신 기술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목공예와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3개월 가량의 훈련을 받으며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때, 손을 내민 사람은 석공예를 하던 매형이었다. “어차피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면 석공예를 배워보라”는 권유에 그는 구리로 향했다. 그렇게 열아홉의 나이에 처음 돌을 마주하게 됐다.
처음 배운 석공예는 예술이라기보다 치수와 도면을 정확히 맞추는 기술에 가까웠다. 주춧돌, 탑, 불상 등 전통 석물 작업을 익히며 돌 다루는 법을 배웠다. 기능대회에서는 도면에 맞춰 각도와 치수를 정확히 깎아내야 했다. 정 명장은 “돌로 1㎜ 오차를 다툰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며 “그 과정에서 세밀한 감각과 기본기를 몸에 익혔다”고 했다.
정 명장은 짧은 수련 기간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개인적으로 매형에게 석공예를 배웠지만 전국대회에서 은메달을 따고 국제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불과 1~2년 만에 석공예 국가대표가 된 것은 주변에서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현장에서 일을 하며 전통 석공예 뿐 아니라 조각가들의 작품 의뢰도 맡았다. 작가가 구상한 작품을 돌로 구현하는 일이었다. 돌을 깎는 기술은 충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돌로 다 만들어주는데 정작 내이름은 없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갖기 위해 미술을 더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선택은 이탈리아 유학으로 이어졌다. 대리석 조각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카라라 지역은 조각가들에게 꿈의 무대와도 같은 곳이었다. 2000년 9월, 그는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났다. 낮에는 생활을 이어가고, 일과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학비 부담은 크지 않았지만 낯선 언어와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새로 익혀야 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돌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한국에서 주로 쓰는 화강석은 입자가 거칠어 섬세한 표현에 한계가 있다. 반면 대리석은 입자가 곱고 치밀해 인체나 곡선, 아주 작은 세부 표현까지 가능했다. 정 명장은 “대리석은 바늘 끝 같은 표현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다”며 “화강석과 대리석은 작업 방식부터 결과물까지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푼타(Punta)’ 기법이었다. 푼타는 이탈리아어로 ‘점’을 뜻한다. 모형에 점을 찍고, 그 점을 기준으로 형태를 옮겨 대리석을 깎아내는 방식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듯이 작품을 복사해 구현하는 기법이다. 한국 전통 석공예가 선과 비율을 나누는 방식으로 형태를 잡는다면, 대리석 조각은 점을 통해 깊이와 구조를 정밀하게 옮기는 작업이었다.

정 명장이 작품에 담는 주제는 ‘탄생’과 ‘인내’다. 나선형 구조는 태아의 형상, 식물이 땅을 밀고 올라오는 힘, DNA 구조 등 생명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 동시에 단단한 돌을 깎고 다듬어 불가능해 보이는 형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고난과 역경을 견디는 인내의 시간이다. 정 명장은 “뭔가를 하려고 끝까지 노력하면 못할게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다”며 “사람들이 작품을 보면서 그런 ‘인내심’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도 이 주제의 시작점에 있다. 우연히 둘둘 말린 에어호스를 보며 ‘저런 형태로 돌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스프링 형태를 깎는 실험부터 시작했다. 여러차례 실패를 겪은 뒤 결국 용수철과 같은 형태를 만들어 냈다. “이정도 굵기와 길이로도 돌을 깎아낼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준 작품이었다. 비록 이후 한국 전시를 위해 이탈리아에서 운송하던 중 파손됐지만, 정 명장에게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열어준 첫 작품으로 남아있다.

강원도 명장에 도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처음부터 타이틀에 큰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평생 해온 일이 있고, 쌓아온 기술이 있으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장이 된 뒤 느낀 현실은 복잡했다. 그는 “명장이라는 타이틀은 명예직에 가깝다”며 “지역사회가 명장을 선정했다면 그 사람들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시 지원과 일거리 연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명장으로 선정돼도 실질적 지원이 부족하면 후배들에게 이 길을 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명장이 되면 이런 혜택이 있고, 이런 기회가 있다고 보여줄 수 있어야 후배 양성도 가능하다”며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기반”이라고 말했다.
후계자 양성은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석공예는 1~2년 배운다고 익힐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최소 10년 이상 돌을 다뤄야 비로소 돌의 성질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이 분야에 뛰어드는 일은 드물다. 기계화와 AI의 확산 속에서 손기술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석공예의 가능성을 믿는다. 오히려 배우려 하는 사람이 줄어든 지금, 이 기술의 희소가치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보석이 비싼 이유는 희소하기 때문”이라며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제대로 된 기술을 갖춘 사람은 앞으로 더 빛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고향 횡성에서 자신의 작업을 더 깊이 이어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야외에 설치할 수 있는 대형 조각 작업도 본격화하고 싶다. 그는 횡성에 조각공원 같은 문화예술 공간이 생기길 바란다. 한우축제, 안흥찐빵축제 등 지역 축제가 있지만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머물며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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