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50년, 이상과 현실의 투쟁] 광기와 타락의 禁酒法... 세상을 오염시킨 악법은 교훈을 남겼다

송동훈 문명 탐험가 2026. 6. 3.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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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1920년대를 망친 금주법
풍요의 시대, 술 제조·소비 불법화
밀주 유통돼 돈은 범죄조직 속으로
부패 경찰·정치인·판검사에 뇌물…
악법은 목적·이름 바꿔 반복된다

미국은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았다. 1776년 독립 이후 미국의 영토는 약 11배 확대됐고 인구는 135배 폭증했다. 세계 제1 경제력을 갖춘 건 100년 전이다. 영국인들이 세운 식민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기적을 이뤘을까? 미국과 세계가 중대한 변곡점에 선 지금이야말로 그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편집자 주

소설과 영화에 이어 뮤지컬로도 제작된 ‘위대한 개츠비’는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과 타락이 교차하는 1920년대 미국이 배경이다. 1차 대전 승리 이후 경제·문화적 풍요를 맞이했지만 금주법이라는 악법 뒤로 위선과 부정부패, 범죄가 판치는 혼돈의 시대를 그렸다. /오디컴퍼니

1920년대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함께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됐다. 문화적으로도 다른 나라를 압도한 독서와 교양의 시대였다. 대다수 미국인은 책을 읽으며 여가를 보냈고, 작가들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리더스 다이제스트’(1922년), ‘타임’(1923년), ‘뉴요커’(1925년) 같은 잡지들이 잇따라 창간됐다. 뉴욕에서 12개 일간지가 발행될 만큼 신문 산업도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경제가 절정에 이르렀던 미국 사회의 화려함 뒤에는 도덕적 위선과 타락, 아메리칸 드림의 공허함도 있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담아낸 바로 그 시대였다. 이 신흥 강국에서 벌어진 금주법(禁酒法) 사태는 당혹스러울 만큼 기이했다.

모든 사회악의 근원은 술?

1919년 비준된 수정헌법 18조에 따라 미국에선 모든 술의 생산·제조·판매·소비가 불법화됐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이 금주법은 한 남자의 집념에서 시작됐다. 오하이오 출신인 웨인 휠러(1869~1927). 그는 어린 시절 술에 취한 농장 일꾼이 부주의하게 휘두른 쇠스랑에 다리를 다쳤고, 그 사건 이후 술에 적대감을 품게 됐다.

휠러는 변호사를 거쳐 오하이오 주의 술집반대연맹 회장에 오르며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1905년 그는 금주법을 두고 오하이오 주지사이자 미래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거물 마이런 헤릭과 정면 충돌했다. 당시 오하이오는 뉴욕,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주로 정치적 위상이 막강했다. 주지사 헤릭이 “오하이오 주에서 모든 술을 금지하자”는 술집반대연맹의 과격한 요구에 동의하지 않자, 휠러는 그의 정치적 입지를 무너뜨리는 공작을 시작했다.

목표는 선명했다. 금주법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인을 공직에서 몰아내고, 금주법을 통과시키는 것. 휠러는 ‘정계의 거물을 무너뜨리면 모든 정치인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국가·헌법·국민·가치 등 공익이 아니라 출세와 사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휠러와 그의 지지자들은 목적이 정당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웠다.

1920년대 미국에서 금주 운동을 펼쳐 금주법 도입을 현실로 만든 웨인 힐러(1869~1927). /위키피디아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치고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키지만 그렇다고 음주가 만악의 원인일 수는 없다. 그러나 휠러는 그런 논리를 폈고, 헤릭을 음주의 해악에 무지한 정치인, 술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무관심한 냉혈한으로 몰아갔다. 다음 주지사 선거에서 헤릭은 참패했고 대통령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오하이오 주의 정치적 미래는 나중에 29번째 대통령이 될 평범한 부지사 워런 하딩(1865~1923)에게 돌아갔다.

휠러가 승리하며 금주법 통과되다

휠러의 전략은 성공했다. 정치인들은 술집반대연맹과 척을 지는 순간 재선 확률이 급락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앞다퉈 휠러 앞에 무릎 꿇었고, 그의 이름을 딴 ‘휠러주의(Wheelerism)’가 전국에서 대세를 이뤘다. 1917년이 되자 27개 주가 금주법을 관철시켰다. 수정헌법을 만들려면 9개 주의 지지가 더 필요했는데, 1차 세계대전이 휠러에게 돌파구를 열어줬다. 당시 양조장 대부분은 독일계 미국인들의 소유였다. 선전선동의 대가 휠러는 반(反)독일 정서를 금주운동의 동력으로 활용했다. “맥주 마시는 것은 반역행위”라는 선동이 먹혀들었다. 1919년 네브래스카가 36번째로 금주법의 대의에 동참함으로써 수정헌법 18조가 의회에 상정됐다.

하지만 당시 주류사업은 미국에서 5번째로 큰 산업이었다. 이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금주법에 의해 불법화되자 많은 사람이 실직했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하로 숨어들었다. 연방·지방 정부는 주류 산업에서 매년 20억달러를 세금으로 거두고 있었다. 그 세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부의 손을 떠나 범죄자들 손으로 넘어갔다.

1920년대 미국 뉴욕의 거리에서 경찰 간부들이 보는 가운데 단속 요원들이 하수구에 밀주를 버리고 있다. /미 의회도서관

악법은 누군가에게 돈이 된다

금주법의 시대는 부정과 부패, 위선과 타락의 시대였다. 이 법은 시행되자마자 미국 전체를 오염시켰다. 단속 요원들은 술을 압수해 원래 소유주에게 되팔았다. 주류 밀매상과 술집 주인들은 부패한 경찰·공무원·판검사·정치인에게 주기적으로 뇌물을 건넸다. 치료 목적으로만 위스키를 처방하던 의사들은 백지 처방전을 팔아 수입을 올렸다. 가장 큰돈을 번 건 시카고 마피아 알 카포네 같은 범죄자들이었다. 금주법 시대에 벌어들인 자금으로 거대한 범죄 조직들이 형성됐다.

알 카포네 /FBI

금주법은 거꾸로 술 소비를 늘렸다. 틀어막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 심리다. 금주법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휠러는 “공업용 알코올에 독성 물질을 섞어, 밀주를 마시는 자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멈출 줄 모르는 광기(狂氣)였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976년 출간된 ‘미국의 식생활(Eating in America)’에 따르면 1927년 한 해에만 1만1700명이 독성 밀주를 마시고 사망했다. 섬뜩하고 기이한 금주법은 13년간 지속됐다. 금주법이 옳다고 믿던 소수의 광기와 금주법으로 돈을 버는 권력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금주법은 1933년 수정헌법 21조에 의해 폐기됐다. 미국 사회가 망가진 뒤였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휠러는 이미 6년 전에 사망했다. 금주법 시대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지만 결국 다 잃어버린 개츠비의 최후처럼 공허하다. 세상을 오염시킨 악법은 교훈을 남겼다, 한번 일어난 일은 과거가 아니라 이름과 목적만 바뀌어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교훈을.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도덕이 해이해지고, 재즈가 유행하고, 불법이 난무하며, 주가는 끝없이 치솟았던 1922년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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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우월주의 단체 KKK도 세력 확장

타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가 자양분

1920년대는 증오의 시대였다. 남북전쟁 전후가 전성기로 알려진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단체 KKK(쿠 클럭스 클랜)는 사실 진보와 개혁의 물결이 일던 시기에 폭발적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미국이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설파하던 1920년대였다. KKK가 전성기를 맞은 것은 변화에 불안과 공포를 느낀 당시 주류 세력이 이들의 교묘한 전략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920년 미 시카고에서 벌어진 집회에서 ‘KKK’의 상징인 가운과 고깔모자 차림을 한 회원들. /위키피디아

KKK는 지역마다 표적이 달랐다. 중서부에서는 가톨릭 교도와 유대인을, 서부에서는 동양계 이민자를, 동부에서는 유대인과 남부 유럽계 이민자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흑인은 전국에서 타깃이 됐다. 대중은 KKK의 이념에 열광했고, 공공연하게 두둔했다. 절정기에 KKK 회원은 500만명에 달했고, 연방의원 75명도 KKK 회원이거나 공개적으로 KKK 지지를 선언했다. 오클라호마와 오리건은 주지사도 KKK 회원이었다.

몰락의 순간은 갑자기 찾아왔다. 1925년 3월, 인디애나주 KKK 지부장 스티븐슨이 젊은 여성을 참혹하게 구타하고 잔인하게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티븐슨은 자신의 권력을 믿고 처벌을 피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사안은 엄중했고 종신금고형이 선고됐다. 분노한 그는 KKK와 관련된 인디애나주 최고위층 인사들의 부패를 폭로했다. 주지사부터 인디애나폴리스 시장, 공화당 지부장, 시의원과 판사까지 KKK의 추악한 부패 사슬에 얽혀 있었다. 국민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전국 KKK 조직은 순식간에 붕괴됐다.

하지만 KKK가 완전히 소멸했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타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를 자양분으로 삼는 조직과 이념은 사라지지 않는다. 때를 기다리며 숨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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