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동맹과 멀어지는 트럼프

안홍욱 기자 2026. 6. 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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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무역전쟁 휴전’을 연장하는 현상 유지 수준에서 끝났다. 국제 정치와 경제의 향배가 달린 ‘세기의 담판’이 될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눈길을 끈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대비되는 태도였다. 트럼프는 공손했고 시진핑은 대담했다. “대만을 공격할 경우 방어할 것인가.” 시진핑이 트럼프 면전에서 이런 질문을 하리란 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더 놀라운 건 대답하지 못한 트럼프였다. 오히려 대만 무기 판매가 “우리에게 매우 좋은 협상 칩”이라고 했다. 대만은 졸지에 미국의 방어 대상이 아니라 거래 품목이 됐다.

대만을 이렇게 취급하는 미국에 동맹·우방국들은 당혹스러웠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지난달 30일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에게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헤그세스는 “미국 방위 전략의 네 기둥 중 하나가 인도·태평양에서의 중국 억지이다. 이 지역에서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헤그세스가 앞서 제시한 조건이 있다. 안보 비용·책임 분담의 기여도에 따라 나라별로 차등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중국에 공손 동맹엔 가혹
안보·시장 의존을 거래 수단 활용
중견국 간 연대 모색은 그 반작용
한국 정부, 전략적 자율성 키워야

트럼프는 힘에 의한 지배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경제력·군사력 세계 2위인 중국에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번번이 물러선다. 그와 달리 동맹들에는 가혹하게 군다. 미국의 군사적 보호와 미국 시장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우리가 알던 예전의 그 미국이 아니다. 동맹도 예전 같지 않다. 유럽의 주요국들은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고 굽신거리지 않는다. 유럽의 문명을 말살하겠다는 조롱, 그린란드 병합 시도는 임계선을 넘었다고 여긴다. 한때 트럼프를 추앙하던 우파 포퓰리스트도 트럼프와 거리를 둘 정도다. 이란 전쟁에서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에 손을 든 나라가 없다. 미 군용기의 영공 통과도 허용하지 않았다. 미국의 군사행동에 일단 지지를 보냈던 과거 태도와 다르다. 미국이 명확한 전략 없이 시작한 이란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헤매는 것에는 동맹들이 미국의 버팀목이 되지 않는 상황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강 군사력만이 아니다. 동맹과의 협력, 국제 규범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무차별 고율 관세로 무역질서를 흔들고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면서 미국이 주도했던 세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과거 동맹이 미국 편에 서면 경제적으로 안보적으로 유리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동맹들은 점점 미국의 선의를 기대하지 않는다. 미국이 중국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할 정도의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대중국 견제에 동참하라고 압박해도 선뜻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결속력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을 믿고 국제 규범을 잘 따랐던 국가들이 연대를 모색하는 것은 그 반작용일 것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규칙 기반의 질서는 사라지고 강자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약자는 견뎌야만 하는 시대”라며 중견국들이 합심해야 한다고 했다. 튀르키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이란 전쟁을 세계 정세의 위기 상황으로 진단하고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도 트럼프 시대 미국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던지게 된다. 미국 우선주의와 한·미 동맹은 병존할 수 있는가.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을 중국 견제용 ‘단검’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방위 약속은 끝까지 믿을 수 있는가.

이재명 정부 1년의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평가는 양호한 편이다. 미국과의 무역·안보 협상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한·중 관계를 복원했다. 일본과는 셔틀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이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실리만 챙기려 할 게 아니라 분명한 좌표를 설정하고 그에 합당한 가치와 명분을 추구해야 한다. 한국의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자강과 국제사회와의 연대로 전략적 자율성을 키워야 한다.

안홍욱 논설위원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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