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지 잘 모른다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그 행위 자체로 옳고 그름이 정해진다는 ‘의무론’이고, 다른 하나는 그 행위의 결과에 따라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는 ‘공리주의’이다. 의무론은, 거짓말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더라고 그 자체로 옳지 않다는 입장이고, 공리주의는 거짓말이라도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나는 최근 몇 년간 재건축조합의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의무론적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공리주의 입장도 많이 수용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조합원이 100세대 이하의 소규모 조합은 ‘도시정비법’이 아니라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에 관한 특별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 원칙과는 좀 다르게 운영되기도 한다. 소규모 조합에서 민주적 절차를 모두 갖추려면 시간과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서 임원 선거 등에서 일부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일반적인 법 상식에는 맞지 않지만,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마련된 예외 조항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나는 예전보다 어떤 절차 자체의 옳고 그름보다 결과의 중요성을 더 크게 보게 되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집을 나간 말이 튼튼한 말을 데리고 오고,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는데, 전쟁이 나서 군대에 안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재앙과 행복이 그 자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법적 절차를 최상의 수준으로 지켜야 한다는 옳음을 주장하다가 사업 실패라는 큰 화를 당한다면, 그 옳음은 진정한 옳음이라 하기 어렵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화 속에 복이 있고, 복 속에 화가 있다”면서 “하늘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 누가 그 이유를 알겠는가? 그러니 성인조차도 그 이유를 모른다”는 말이 있다. 재앙과 행복, 옳고 그름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기도 하니, 어느 행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심하게 나누지 말고 ‘아주 심한 악’만 제거하자고 한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제9회 전국지방동시선거 사전 선거는 끝나고 본 선거만 남았다. 막바지에 접어드니 한층 더 후보들의 작은 실수와 흠결을 부각하며 인신공격이 극심해진다. 그러나 선거는 완벽한 도덕적 무결함을 겨루는 시험장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현실적인 선택의 장이다.
우리가 국회의원을 뽑고, 시장 등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고, 교육감을 뽑는 것은 현재와 미래세대의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잘살기 위해서다. 그러니 어떤 후보의 잘못은 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로 판단해야 한다. 물론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니 어떤 후보를 쉽게 비난하고 악인으로 규정하기보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바라보며 판단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이 노자가 말한 ‘누가 옳고 그른 까닭을 알겠는가‘라는 물음의 의미이다.
/유영희 인문학자
Copyright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