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무형유산을 찾아서] ③ 국가무형유산 채상장 서신정 보유자…한 올 대나무에 담은 담양의 혼
생활소품 개발로 현대화 모색
전수교육관 운영도 보유자 몫
"전통 지키되 시대 맞게 변해야"
아들·남편과 3대 전승 이어가

전남 담양군에는 대나무를 실처럼 가늘게 떠 색을 입히고 정교한 무늬를 엮어내는 전통 공예가 전해지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제53호 '채상장(彩箱匠)'이다. 채상장은 대나무 껍질을 얇게 저며 오방색으로 물들인 뒤 다양한 문양을 엮어 상자와 소반,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전통 기술과 그 기능 보유자를 일컫는다.

◇600년 이어온 대나무 공예의 정수
현재 채상 전통은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인 서신정 선생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 보유자는 1979년 열아홉의 나이에 아버지이자 2대 채상장인 고(故) 서한규 선생에게 입문한 뒤 47년째 채상 외길을 걷고 있다.

서 보유자는 "대나무를 실처럼 떠내는 작업부터 쉽지 않다"며 "공정 하나하나가 모두 수작업이다 보니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과거 채상은 혼례 때 빠지지 않는 혼수품이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결혼 문화가 바뀌면서 수요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서 보유자는 "예전에는 한 달에도 여러 세트씩 주문이 들어왔지만 IMF 이후부터 눈에 띄게 줄었다"며 "코로나19 이후에는 함 문화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통 지키며 현대화로 돌파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 보유자가 선택한 길은 현대화였다. 전통 채상 제작 기법은 그대로 유지하되 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방과 소반, 브로치, 도시락통 등 채상 기법을 활용한 생활소품 100여 종이 탄생했다.
서 보유자는 "전통은 고스란히 지켜야 하지만 시대에 맞는 쓰임새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며 "공예품은 결국 사람들이 사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교육관을 찾은 방문객들도 전통 상자에 머물러 있던 채상이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확장된 모습에 큰 관심을 보인다.

◇전수교육관 홀로 감당…"채상도 K-공예 돼야"
하지만 전승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채상은 한 작품을 만드는 데 수십 일이 걸리고 대부분 공정이 손작업으로 이뤄진다. 긴 제작 기간에 비해 시장 규모도 크지 않아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전수 과정을 밟다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서 보유자는 "전통공예는 짧게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오랜 시간 기술을 익혀야 하는데 젊은 세대는 생계 문제 때문에 쉽게 뛰어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담양 죽녹원 인근에 위치한 채상장 전수교육관 역시 국가유산 등록에 따라 국가 예산으로 건립됐지만 운영 부담은 상당 부분 보유자가 떠안고 있다. 직원 인건비와 전기료, 시설 유지비 등이 꾸준히 발생하지만 이를 감당할 지원은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서 보유자는 "전통이 끊기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채상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주목 받는 한류 문화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채상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서 보유자는 "K팝과 K드라마처럼 한국 공예도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며 "채상도 K-공예로 성장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전통은 만드는 사람만으로는 지킬 수 없다"며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사용해 줄 때 비로소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