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고 기억하자

경북매일 2026. 6. 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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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본사 고문

미국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경기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기억에 더 오래 남은 것은 경기 시작 전 펼쳐진 짧은 의식이었다. 제복을 입은 군인 한 사람이 가족과 함께 소개되었고,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어느 날은 소방관이었고, 또 어느 날은 경찰관이었으며, 때로는 지역사회의 자원봉사자였다. 정치인이 아니었고 유명인도 아니었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바친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미국의 작은 도시들을 다니다 보면 또 하나 인상적인 풍경을 만난다. 작은 동네에도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공원 한 켠, 시청 앞 마당, 혹은 재향군인회 건물 앞에. 비석에는 지역 출신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어떤 이는 전사했고, 어떤 사람은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지역 공동체 속에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어도 그들을 기억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동네 사람들의 기억에 남긴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은 이념이나 구호가 아니다. 작은 기억과 진솔한 감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자신의 땀이 인정받을 때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느낀다. 반대로 자신의 희생과 노력이 잊혀진다면 공동체와 거리를 두게 된다. 감사는 사람을 연결하고, 기억은 공동체를 묶는다. 우리는 어떤가. 지방선거와 정치 현안을 둘러싸고 사회는 극심하게 갈라져 있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서로를 적으로 대하고, 같은 문제를 놓고도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선거철에는 더욱 심하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공격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공동체는 쪼개진다. 포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남겨진 상처와 앙금은 시민들 사이에 머문다.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결국 모두가 같은 도시의 시민이다. 누구를 지지했든, 어느 당을 좋아하든, 태풍이 오면 함께 피해를 입고 경제가 어려우면 함께 걱정한다. 포항이 발전하면 모두가 혜택을 누리고, 쇠퇴하면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결국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감사와 기억의 문화’가 아닐까.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가 함께 지역의 숨은 공로자들을 찾아 정기적으로 감사하는 행사를 만들면 좋겠다. 태풍 힌남노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복구 현장을 지킨 시민들,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님들, 헌혈과 봉사를 꾸준히 실천한 사람들, 어려운 이웃을 돌본 사회복지사들, 지역경제를 묵묵히 지켜낸 소상공인들, 밤낮없이 시민의 안전을 지켜 온 소방관과 경찰관들을 시민 앞에 세우고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야구경기장에서도 좋고 시청광장에서도 좋다. 정치인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무대가 되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긴 사람보다 지역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더 큰 박수를 받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공동체는 기억하지 않을 때 무너진다. 감사하지 못할 때 차가워진다. 비판하는 법은 배웠지만 감사하는 법은 잊고 산 게 아닐까. 잘못을 찾아내는 데는 능숙하지만, 수고를 인정하는 데는 인색한 게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헌신을 기억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일은 오래 남는다.

/장규열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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