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70년 평생 투표 못 하는 건 처음”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세상&]

이영기 2026. 6. 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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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인 수 예상 못 해 투표용지 부족
송파·강남서 초유의 투표 중단 사태
2시간 가까이 기다린 유권자들 항의
“6시 이후 투표지 집계되는 것 맞냐”
3일 오후 6시10분께 서울 송파구 잠실2동 제6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마감시각 도착 선거인’ 대기표를 들고 취재진을 향해 보여주고 있다. 윤승현 수습기자.

[헤럴드경제=이영기·김아린 기자] “투표 자체를 못 하는 건 살면서 처음 봤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 종료를 앞두고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동작구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유권자들에게 배부해야 할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 종료시간인 오후 6시를 넘겨서도 투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찜통더위도 불사하고 1시간 넘게 기다리던 유권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투표 대안을 제시하라고 언성을 높이며 성을 냈다. 일부는 투표를 포기하고 귀가한 사례도 있어 향후 정치적 논란이 거세게 일 전망이다.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공식 본투표가 마감된 3일 오후 6시께 서울 송파구 잠실2동 제6투표소인 서울 송파구 잠일초등학교 앞에는 여전히 100명이 넘는 유권자가 얼굴을 붉히며 줄을 서있었다.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돼 생긴 대기 줄이다.

오후 4시30분께부터 중단된 후 기다림에 지친 유권자들은 불만을 표출했다. 투표소에서 만난 최정근(72) 씨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2시간 전에 와 있었는데 투표용지를 선거인 수의 50%만 준비했다고 한다”며 “살다 살다 전두환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투표 자체를 못 하는 건 살면서 처음 봤다”고 토로했다.

3일 오후 6시15분께 서울 송파구 잠실2동 제6투표소. 공식 투표 시간이 지났지만,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를 마치지 못한 유권자들이 투표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윤승현 수습기자

윤모(27) 씨는 “민주주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가 이렇게 된 게 참담하다”며 “지금까지 선거도 항상 이랬던 건지 알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최모(63) 씨는 “오후 6시 이후에 투표한 표들이 개표소까지 전달될지 주민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가족들 같이 왔는데 1시간40분 기다리다 다 갔다. 몸이 안 좋은 집사람은 결국 돌아갔는데 이건 투표권을 도둑맞은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투표소는 급히 ‘투표 마감 시각 도착 선거인’ 번호표를 발급해 선거인을 구분하고 임시 용지 등을 투입했지만 유권자들 동요는 멈추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6시 이후 투표지가 집계가 되는지 알 수 없어 함부로 투표할 수 없다”, “6시 이후 진행되는 선거는 부정선거 아니냐” 등 격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3일 오후 6시께 서울 송파구 잠실2동 제6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유권자들이 항의하고 있다. 윤승현 수습기자

이날 잠실2동 제6투표소 외에 ▷문정2동 제2투표소 ▷잠실7동 제2투표소 ▷잠실4동 제5투표소 ▷가락2동 제3·7투표소 ▷청담동 제4투표소 ▷광진구 구의3동 제6투표소 등에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송파구 문정2동 제2투표소도 투표용지가 부족해 시민들에게 대기표를 나눠줬다. 현장 유권자들끼리 대기표를 양도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김석주 씨는 “대기표를 다른 분이 양도해줘서 방금 투표했다”며 “대기표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대기표를 받지 못한 일부 유권자들이 격하게 항의하자 선거관리인은 “(대기표 없이도) 그냥 투표 하시라”라고 하기도 했다.

투표용지가 부족해 실랑이가 벌어지자 경찰이 출동해 현장을 수습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오후 6시 기준 투표용지 관련해 14건의 112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투표 부족 사태에 대해 “제9회 지방선거 투표율이 지난 선거보다 높아 송파구 일부 투표소에서 준비된 투표용지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야권에서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측은 “선관위에 강력 경고한다”며 “참정권을 침해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국민희힘 의원은 “동작구에서도 투표용지 부족한 투표소 2곳을 확인했다”며 “18시까지 대기하신 시민들 투표를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표 마감 1시간 앞두고 ‘러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의 마감을 앞두고,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들도 투표소로 몰려 들었다. 오후 6시까지 마감해야 하는 과제를 내고 달려온 대학생부터 퇴근하고 온 직장인. 거동이 불편해 사람이 적은 시간대를 골라서 온 유권자도 있었다.

본투표 마감 1시간을 앞둔 3일 오후 5시께 경기 광명시 광명새마을금고 투표소에는 뒤늦게 투표를 하려는 유권자들이 몰렸다.

해당 투표소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한 번에 20명 정도가 기다릴 정도로 붐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유권자들은 “이러다 투표 시간 끝나겠네”, “왜 이렇게 안 와” 등 불안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만원’이 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대학생 오승기(24) 씨는 “지금 기말고사 기간인데 공교롭게도 리포트 제출 기한이 오늘 오후 6시까지였다”며 “서둘러 마감하고 투표장에 왔다. 과제 결과는 아쉽지만, 정치외교학과인데 투표를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투표 마감을 1시간 앞둔 3일 오후 5시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센터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우중 수습기자

해당 투표소에서 만난 등산복 차림의 김다솜(31) 씨와 박상영(36) 씨 부부는 “아침에 관악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왔다”며 “투표 시간에 늦을까 봐 서둘러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시간에 맞춘 유권자도 있었다. 경기 고양시 일산2동 제3투표소를 찾은 김학선(68) 씨는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투표소에 나왔다. 그는 “몸이 불편해도 투표는 해야 한다”며 “내가 남들보다 걸음이 많이 느려서 지각할 수도 있으니 넉넉하게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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