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하는 정치 기대" "소외계층에 관심을"… 한마음으로 소중한 한 표 꾹!
오후 6시 기준 전국 투표율 59.8%
소란·난동… 경찰 신고 접수 399건

"엄마가 투표하는 모습을 지켜만 봤는데, 이제 제 손으로 투표할 수 있다니 너무 신나요."
6·3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2동 투표소를 찾은 고교 3학년 허현성(18)군은 두근두근 설렘을 품고 생애 첫 투표를 마쳤다. 밤새 후보별 공약도 꼼꼼히 살펴보고 왔다. 집 근처 홍제천에서 러닝을 즐기는 허군은 '홍제천 미관 개선' 공약이 특히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 유경민(53)씨는 "아들이 새벽부터 빨리 투표하러 가자고 깨워서 부랴부랴 투표소에 왔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허군을 바라봤다.
이날 전국 투표소에는 유권자들의 발걸음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각자 지지하는 후보는 다를지 몰라도, 한 표에 실린 소망은 모두 같았다. 국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 오후 6시 기준 전국 투표율은 59.8%로, 지난 지방선거 같은 시각 대비 9.8%포인트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산 넘고 물 건너…110세 할머니도 '한 표'

유권자들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강원 화천군 동촌1리 4반 마을은 1940년 화천댐 건설로 육로가 끊겨 외부로 나가려면 무조건 배를 타야 하는 이른바 '육지 속 섬마을'이다. 이곳 주민 2명은 군에서 지원한 행정선을 타고 호수를 건너,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투표소로 향했다. 왕복 2시간 거리다. 권모(79) 할머니는 "최근 넘어져 다리를 다쳤지만 투표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100년이 넘는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광주 최고령 유권자 110세 김정자 할머니는 이번에도 투표소에 얼굴을 비쳤다. 1914년 12월 21일 태어난 김 할머니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투표를 거르지 않았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투표를 마친 김 할머니는 "청년들이 놀지 않고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나라가) 해주면 좋겠다"며 "다음 투표에도 꼭 참여할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전국 각지에 마련된 이색 투표소는 투표의 즐거움을 더했다. 서울 중구 청구동 주민들은 청구초등학교 야구부 실내연습장에서 투표했다. 곳곳엔 야구공과 운동기구, 매트리스가 쌓여 있었다. 광진구 능동 기아자동차 대리점에 차려진 투표소를 찾은 최모(47)씨는 "작년에 이사 와서 여기서 처음 투표해 보는데, 전시된 차량도 함께 둘러보니 좋다"며 즐거워했다. 그 밖에도 전국 곳곳에서 카페, 고깃집, 미용실, 예식장, 박물관, 유치원 등이 투표소로 새 단장을 하고 유권자들을 맞이했다.
"어떤 후보에게 표를 줬냐면요"

유권자들은 선거 이후 새로운 변화를 꿈꿨다. 서울 광진구 주민인 취업준비생 이채연(23)씨는 "요즘 취업이 너무 힘들다"며 "정치인들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함께 고민해 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동작구에서 다섯 살 아들과 함께 투표하러 온 이모(38)씨는 "온 동네가 공사판이라 안전한 어린이집을 찾기 어려운데 공약집에는 재개발 얘기뿐"이라며 "아이와 부모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잠실2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유광현(52)씨는 "정부의 과도한 부동산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후보를 지지했다"고 밝혔다.
진영 다툼에 매몰된 정치권을 향한 쓴소리도 들려왔다. 부모님과 잠실2동 주민센터를 찾은 정아연(18)양은 "뉴스를 보면 정치인들이 국민은 신경 안 쓰고 싸우기만 하는데 모두 잘살 수 있게 화합하는 정치를 해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용산구 남영동에 사는 신모(71)씨는 "정치인들에게 민생은 뒷전"이라며 "선거 때만 굽신거리지 말고 평소에 잘해 달라"고 꼬집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인근 놀이터에 모여 서로 누구를 뽑았는지 얘기하면서도 "어차피 변하는 건 없을 텐데"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최대훈(66)씨는 "정치인들은 여기서 구경만 하고 간다"며 "투표로라도 혼내 주려고 아침 일찍 투표소에 갔다"고 말했다. 쪽방촌에서 3년째 살고 있는 김두형(42)씨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서도 "누구든 뽑아야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경기 김포시 고촌읍 한 투표소에선 지지 후보가 없다며 소란을 피우다 이를 제지하는 사무원을 폭행한 60대 유권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서울 영등포구에서는 75세 여성이 투표 용지에 이미 기표가 돼 있었다며 소란을 일으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 세종시 다정동에서는 40대 남성이 투표를 마친 뒤 "대통령도 이렇게 하지 않았느냐"면서 용지를 주변인에게 보여주려다 제지받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3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에 접수된 선거 관련 112 신고는 총 399건으로 집계됐다.
문지수 기자 door@hankookilbo.com
남병진 기자 south@hankookilbo.com
화천=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광주=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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