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시진핑이 북한을 방문하는 까닭

여론에서 잠시 밀려나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미사일을 비롯해 대규모 드론 공격을 퍼부었다. 전쟁은 벌써 5년째 진행 중이다. 오죽했으면 지난달 중순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직접 시진핑 주석에게 러시아가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나서달라는 부탁까지 했을까 싶다. 트럼프가 베이징을 떠난 직후 닷새 만에 이번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이 한 장면에서도 시진핑의 존재감은 몰라보게 커졌다. 최근 세계 주요국 정상급 인사들이 앞다투어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을 거치면서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선 시진핑이 이번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다. 이르면 이달 중순이나 늦어도 내달 11일 북·중 우호조약 체결 65주년을 앞둔 시점이 유력해 보인다. 시진핑의 방북은 2019년 6월 이후 7년 만이다. 한껏 몸집을 키운 시진핑이 직접 평양으로 가서 김정은을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뜩이나 불안정한 세계정세를 고려한다면, 시진핑의 이번 방북은 동북아 정세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단순히 경제 및 안보 협력 확대나 북중 관계 복원 등의 통상적인 외교 담론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시진핑의 방북은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마중물 성격이 강하다. 트럼프를 만난 시진핑이 북미 정상회담의 중재자 역할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보유국 문제도 가닥을 잡았을 것이다. 어쩌면 트럼프의 의중을 확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아니더라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간주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과 같은 방식이다. 이는 우리의 한반도 비핵화 전략에 결정타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도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미국이 한국형 핵잠수함 문제에 힘을 싣는 것도 선의가 아니라 이유 있는 셈법이다. 그리고 이웃 일본과 대만도 핵무기 경쟁에 나설 것이다. 자칫 동북아 정세에 격랑이 몰아칠 수도 있다.
시진핑이 하나를 내준다면 그만큼 챙길 것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두만강을 통해 동해에 진출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지난 중·러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됐던 '두만강 출해권'이다. 러시아가 협조키로 한 만큼 북한이 동의한다면 '북·중·러 협의체'가 가동될 것이다. 중국 북부의 물류를 직접 동해로 연결하는 '해상 통로'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동북아 물류 시스템의 엄청난 변동을 초래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북·중·러 3국의 협력체제가 더 확대·강화될 것이다. 이전보다 더 커진 시진핑의 존재감은 이번 평양 방문으로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에겐 동북아를 넘어 세계질서의 변동을 읽는 혜안이 시급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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