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판례로 살펴보는 AI와 영업비밀·비밀유지권[지식재산권 산책]

한경비즈니스 외고 2026. 6. 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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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권 산책]

2026년 2월 19일 변호사법 개정으로 ‘변호사–의뢰인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이하 ACP)’과 업무산출물 보호(work-product protection)를 포괄하는 이른바 ‘비밀유지권’이 명문화됨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이 가운데 최근 미국 연방법원에서 생성형 AI와 기밀정보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판단들을 내놓으면서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26년 1월 캘리포니아 북부연방법원은 Trinidad v. OpenAI 사건에서 원고가 챗지피티(ChatGPT)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OpenAI와 공유한 ‘독점적 AI 개발 프레임워크 및 프로토콜’에 관한 영업비밀 침해 주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미국 연방 영업비밀 보호법상 영업비밀로 보호되기 위해서는 비밀 유지를 위한 합리적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원고가 자신의 프레임워크와 프로토콜을 챗지피티를 이용해 개발하면서 해당 정보를 OpenAI와 ‘자발적으로 공유’했다고 보았다. 나아가 법원은 영업비밀 보유자가 기밀 유지 의무가 없는 제3자에게 정보를 공개하면 비밀성이 상실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했다.

이 판결은 일반 이용자에게 공개된(이하 ‘공개형’) AI 서비스에 중요한 기술정보나 사업 전략을 입력하는 행위 자체가 영업비밀성을 상실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AI와의 대화에는 비밀유지권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판결도 나왔다. 2026년 2월 뉴욕 남부연방법원은 United States v. Heppner 사건에서 피고인이 클로드(Claude)를 이용하여 작성한 AI 문서에 대해 ACP 및 업무산출물 보호의 적용을 모두 부정했다.

먼저 법원은 클로드는 변호사가 아니므로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의 비밀 의사소통에 해당하지 않아 ACP가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클로드의 개인정보처리방침상 입력·출력이 수집·활용되거나 제3자와 공유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기밀성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아울러 법원은 “특권이 없는 대화가 이후 변호인에게 전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ACP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판시했다.

다음으로 업무산출물 보호(work-product protection)는 소송·수사 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변호인 또는 변호인의 지시에 따라 작성된 자료, 특히 소송 전략이나 정신적 사고과정이 담긴 자료를 상대방으로부터 보호하는 제도인데 법원은 문제 된 AI 문서들이 변호인에 의해 또는 변호인의 지시에 따라 작성된 것이 아니므로 업무산출물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의뢰인이 변호인의 관여 없이 공개형 AI 서비스를 활용하여 법적 전략을 구상한 경우 그 결과물이 비밀유지권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2026년 2월 미시간 동부연방법원은 Warner v. Gilbarco 사건에서 변호사 없이 민사소송을 수행하던 당사자가 챗지피티를 활용하여 작성한 소송 준비 자료에 대해 업무산출물 보호가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연방민사소송규칙 제26조(b)(3)의 ‘당사자’ 문언에 주목했다. 변호사 없이 민사소송을 수행하는 당사자 역시 업무산출물 보호를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전제 아래 법원은 업무산출물 보호의 포기는 원칙적으로 적대적 상대방에게 공개된 경우에 인정된다고 본 뒤 “생성형 AI 프로그램은 사람이 아니라 도구”라고 판시했다. 또 법원은 상대방의 광범위한 AI 사용 자료 제출 요구가 내부 전략과 사고과정을 들여다보려는 투망식 증거수집에 가깝다고 보아 관련 증거개시 요구를 기각했다.

Heppner와 Warner 사건은 형사·민사 사건이라는 점, 변호인 관여 여부, 적용 법리 등에 차이가 있어 결론이 달라졌다. 향후 미국 법원이 AI 사용과 관련하여 어떠한 경우에 업무산출물 보호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판례 축적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정립될 것으로 기대된다.

위 판결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기밀성의 통제’로, 공개형 AI 서비스에 영업비밀이나 법적 전략에 관한 정보를 무분별하게 입력하는 행위는 그 보호를 스스로 상실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비밀유지권이 명문화된 우리나라에서도 AI 사용이 영업비밀성·비밀유지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기밀 유지 계약이 체결된 엔터프라이즈형 AI 도구의 활용, 변호인의 명시적 지시 아래 이루어지는 AI 사용, 그리고 사내 AI 거버넌스 체계의 정비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주석호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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