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반장선거만도 못해"…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발칵'

허경주 2026. 6. 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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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동나 곳곳서 투표 차질
예상 빗나간 선관위 허술한 대응
투표 중단 초유 사태에 시민 분통
"진상규명 추진·책임을 물을 것"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서울 송파구 잠실2동 6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들이 투표마감 시간 이후에도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 본투표 날인 3일 서울 지역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한때 투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예상을 웃도는 투표율로 사전에 준비한 용지가 빠르게 소진됐다는 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설명이지만, 일부 유권자는 투표권을 박탈당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부실 관리를 비판하면서, 과거 ‘소쿠리 투표’와 ‘투표지 반출’ 사태로 논란을 자초했던 선관위의 선거 관리 행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투표 못할 뻔” 현장 아수라장

선관위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30분 기준 투표용지 부족이 발생한 투표소는 서울 송파구 12곳, 강남구 1곳, 광진구 1곳 등 총 14곳이다. 현장에선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특히 송파구 잠실2동 제6투표소에는 오후 1시쯤부터 용지 부족으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고, 오후 4시 30분 이후로는 투표가 전면 중단돼 100명 넘는 유권자가 발길을 돌리거나 수 시간 대기해야 했다.

오후 6시 투표 마감 직전 투표용지 50장이 추가 공급됐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선관위는 오후 6시 전에 도착한 유권자에게 대기 번호표를 배부해 마감 이후에도 투표할 수 있도록 조치한 뒤, 투표용지를 공수해 투표를 재개했다. 하지만 장시간 대기한 시민들은 선관위의 미숙한 대처에 분통을 터뜨렸다.

오후 7시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잠실2동 주민 이모(56)씨는 “오후 4시30분쯤 도착했는데 별다른 안내가 없어 30분 가까이 기다리다가 뉴스를 보고서야 상황을 알았다”며 “자칫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할 뻔했다”고 황당해했다.

또다른 주민 김모(45)씨는 “오후 6시 전에 도착했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번호표를 받지 못해 투표 기회를 날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투표용지는 맞춰서 준비하는데 전국 단위 선거가 그보다도 못하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투표가 경품 뽑기도 아닌데, 4년간 기다린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지 못했다”고 성토했다.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서울 송파구 잠실2동 6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대기하던 한 유권자가 마감 시간 후 대기 번호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송파구 가락2동 제3투표소에서도 유권자 200여 명이 투표용지가 보충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곳에서 투표를 마친 회사원 김모(44)씨는 “평소와 달리 수십 명이 길게 줄을 서 있어 당황스러웠다”며 “국가의 중요한 선거 관리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선관위는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통상 투표율이 100%에 이르지 않는 점을 고려해 직전 지방선거 투표율에 맞춰 용지를 준비했다”며 “송파구 일대 투표소에서 준비된 용지가 부족해 해당 투표소로 투표지를 긴급 이송했다”고 밝혔다. 2022년 치러진 지방선거 최종 투표율은 50.9%였다.

이번 사태가 자칫 부정선거 논란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날 오후 7시 30분쯤 송파5투표소 앞에서는 한 시민이 차량으로 투표함을 옮기던 선관위 직원들을 향해 “이게 왜 부정선거가 아니냐”며 거세게 항의했고,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도 투표함을 회수하려는 선관위원과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이 대치하면서 경찰이 출동했다. 이 투표소는 대기 번호표를 받아 간 유권자들을 기다리느라 투표 마감 시간을 오후 10시로 늦추기도 했다.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오후 8시 30분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선관위 직원과 시민들이 투표함 이동을 두고 대치하고 있다. 남병진 기자

여야 한목소리로 선관위 질타

전례 없는 사태에 여야는 한목소리로 선관위를 비판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입장문을 통해 “서울시내 곳곳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를 못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서울시선관위의 선거 준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선 한층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정희용 선대본부장은 긴급 입장 발표를 통해 “2026년 대한민국 투표 현장에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투표율이 높아지자 긴장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선거가 끝나는 대로 곧장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추진하고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선관위는 고개를 숙였다.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오후 9시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엄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허철훈(왼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윤재수(가운데) 선거정책실장, 이상능 선거1국장이 6·3 지방선거 본투표가 실시된 3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원회에서 서울 송파구 등 일부 투표소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날 전국 곳곳에서 선거 관련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경기 김포시 고촌읍 한 투표소에선 지지 후보가 없다며 소란을 피우다 이를 제지하는 사무원을 폭행한 60대 유권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서울 영등포구에서는 75세 여성이 투표 용지에 이미 기표가 돼 있었다며 소란을 일으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 세종시 다정동에서는 40대 남성이 투표를 마친 뒤 “대통령도 이렇게 하지 않았느냐”면서 용지를 주변인에게 보여 주려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3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에 접수된 선거 관련 112 신고는 총 399건으로 집계됐다. 서울에서는 투표용지 부족 관련 신고가 14건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남병진 기자 south@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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