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1954년 전쟁 폐허 속에 시작된 한국의 월드컵 첫 도전[아하! 월드컵]

한국 축구가 FIFA 월드컵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것은 1954년 스위스 대회였다. 6·25 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대표팀은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숙적 일본을 꺾고 본선 진출권을 따내는 기적을 연출했다. 국교 정상화 전이라 한국에서 경기할 수 없다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대표팀은 “일본에 지면 선수단 전원이 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 결전 의지를 전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월드컵행 기쁨도 잠시, 스위스로 향하는 길은 고난 그 자체였다. 전란 직후의 가난한 나라에 스위스행 비행기 표가 있을 리 만무했다. 대표팀은 우여곡절 끝에 미 군용기를 얻어 타고 일본 도쿄로 건너간 뒤, 현지에서 겨우 구한 민간 항공기 좌석에 나눠 앉아 환승을 거듭해야 했다. 방콕(태국), 콜카타(인도), 카라치(파키스탄), 카이로(이집트), 로마(이탈리아)를 거쳐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65시간. 대회 개막 불과 하루 전에야 결전지에 간신히 도착했다.
인프라와 장비의 열악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표팀에게 지급된 유니폼은 단 한 벌뿐이었다. 번듯한 축구화나 장비 가방도 없어 선수들은 각자 광목천으로 만든 보따리에 징을 박은 투박한 축구화를 싸 들고 다녔다. 등번호를 급하게 천에 써서 유니폼 뒤에 꿰매 붙인 채 경기에 나설 만큼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했다.
지독한 여독과 장비 부실 속에서 마주한 본선 첫 상대는 당시 세계 축구를 호령하던 ‘매직 마자르’ 헝가리였다. 페렌츠 푸스카스가 이끄는 당대 최강 헝가리를 상대로 한국 선수들은 몸을 던져 육탄 방어를 펼쳤다. 장시간 비행 여파로 경기 도중 수많은 선수의 다리에 쥐가 나 쓰러졌지만, 교체 카드가 없던 시절이라 다시 일어나 뛰기를 반복했다. 결과는 0-9 대패였고, 이어진 2차전 터키전에서도 0-7로 무릎을 꿇으며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비록 전적은 2전 전패에 16실점이라는 참담한 기록으로 남았지만, 현지 언론과 팬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라운드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대한민국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 강인한 DNA가 태극 전사의 위대한 뿌리로 남아있다.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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