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침스틸러] ‘모자무싸’ 속 김치볶음밥…벼랑 끝 삶, 허기와 피로 달래는 한끼

장다해 기자 2026. 6. 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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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스틸러] (26)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속 김치볶음밥
꿈은 원대한데 현실은 너무나 냉혹
공허함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형제
수다·폭식으로 결핍 이겨내는 동생
삶 포기하려는 형에게 숟가락 건네
재료·조리 간단한 한국인 대표음식
잘게 다진 김치 볶아 찬밥 넣으면 끝
명란·아보카도 더해 다양한 맛 즐겨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컷. JTBC

“밥 안 먹어서 그래, 내려와. 김치볶음밥 해줄게.”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2026년, 차영훈 감독)에서는 주인공 황동만(구교환 분)·황진만(박해준 분) 형제가 등장한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계 속에서 이들은 버림받고 불안해하고 열등감에 휩싸이며 공허함에 시달린다.

마흔이 넘도록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붙들고 살아왔지만 번번이 실패를 겪으며 자신의 무가치함을 마주한 동만. JTBC

동생 동만은 마흔이 넘도록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붙들고 살아왔지만 번번이 실패를 겪으며 자신의 무가치함을 마주한다. 형 진만도 촉망받던 시인으로 사는 삶이 그와 그의 가족을 책임지지 못하자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죄책감에 시도 쓰지 못하게 된 채 막노동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진만이 생(生)의 무게를 버티다 못해 자살을 시도한다. 이 모습을 발견한 동만은 그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밥부터 먹자고 말한다. 그동안 동만은 끊임없이 떠들거나 음식을 먹는 방식으로 그를 괴롭히는 결핍을 이겨냈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언제까지 그 꿈을 붙잡고 살 거냐”라고 말하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고 정신없이 음식을 꺼내먹는 것처럼 말이다. 배우 구교환은 이를 두고 한 인터뷰에서 “(공허함을 폭식으로 채우는 상태를)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자기 파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노력으로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생인 동만과 달리 형 진만은 소주 한병에 의지해 위태로운 나날을 보낸다. JTBC

밥이라도 먹으며 내일을 살아가려는 동만과 달리 형 진만은 소주 한병에 의지해 위태로운 나날을 보냈다. 동만은 그런 형 곁에 꾸역꾸역 붙어 그를 챙겼다. 자신도 매일 같이 무력함과 싸우지만 형이 술로 끼니를 때우면 김치볶음밥을 들이밀며 밥이랑 같이 먹으라고 잔소리했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이가 삶을 포기하려했다는 충격적인 현실 속에서도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김치볶음밥 해줄게” 뿐이었다.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마음에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여기 있다”는 간절함이 들었을까. 끝내 숟가락을 내려놓지 않게 붙잡고 싶은 마음, 어떻게든 다시 하루를 살아내게 만들고 싶은 절박함일 것이다. 형마저 벼랑 끝으로 무너진다면 자신 또한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동만은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그때마다 동만이 해주는 음식은 ‘김치볶음밥’이다.

밥과 김치만 있어도 만들 수 있는 김치볶음밥은 어떤 재료를 더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개성을 지닌 요리로 변한다.

밥과 김치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김치볶음밥은 남은 찬밥과 신김치를 가장 맛있게 되살리는 방법이 됐다. 재료가 단출하고 조리법도 어렵지 않아 금세 만들 수 있고 실패할 일도 거의 없다. 그렇게 김치볶음밥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김치볶음밥은 무엇을 더 넣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으로 변하기도 한다. 크림을 부어 부드럽게 만들 수도, 차돌박이의 기름진 풍미를 더 할 수도, 날치알을 넣어 톡톡 터지는 식감을 살릴 수도 있다. 버터와 치즈를 더해 고소한 맛을 강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명란이나 아보카도·바질을 넣는 이색 김치볶음밥도 등장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도 달라지는 김치볶음밥. 동만을 따라 직접 김치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냉장고 속 양파 한개와 대파, 찬밥·새송이버섯·김치·통조림햄·깻잎·달걀·슬라이스치즈·김가루·고춧가루·들기름을 꺼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도 달라지는 김치볶음밥, 동만의 요리는 어떤 맛이었을까. 그 어떤 재료보다 누군가를 살리려는 귀중한 마음이 깃들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동만을 따라 직접 김치볶음밥을 만들어봤다. 방법은 간단하다. 잘게 다지고 볶기만 하면 된다. 냉장고 속 양파 한개와 대파, 찬밥·새송이버섯·김치·통조림햄·깻잎·달걀·슬라이스치즈·김가루·고춧가루·들기름을 꺼냈다.

대파와 양파·새송이버섯·김치·통조림햄을 모두 잘게 다진다. 햄은 한번 데치면 짠맛과 기름기를 덜 수 있다. 먼저 대파를 볶아 파기름을 낸 뒤 양파와 새송이버섯을 넣고 볶는다. 이어 김치와 햄을 넣는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더하면 매콤한 맛이 살아나고 붉은빛도 한층 짙어진다.

이제 밥을 넣을 차례다. 볶음밥에는 식은 밥이 잘 어울린다. 갓 지은 밥은 수분이 많아 쉽게 뭉치지만 식은 밥은 알알이 풀어져 고슬고슬한 식감을 내고 비교적 기름을 덜 머금는다.

슬라이스치즈 한장과 달걀프라이를 올린 김치볶음밥.

밥알이 재료와 고루 섞이면 김가루를 넣고 한번 더 볶는다. 부족한 간은 간장으로 맞춘다. 마지막으로 들기름을 한바퀴 두른다. 슬라이스치즈 한장을 올려 천천히 녹이고 노른자가 반숙인 달걀프라이와 자른 깻잎까지 올리면 숟가락을 멈추기 어려운 김치볶음밥 한 그릇이 완성된다.

크게 떠 한입 먹어보니 잘 익은 김치의 산미와 고춧가루의 매콤함이 오랫동안 입안에 머문다. 통조림햄은 짭조름한 향을 더했다. 밥알 사이사이에 섞인 새송이버섯은 쫄깃하게 씹히고 잘 볶아진 김치는 아삭하다. 마지막에 두른 들기름은 고소한 향을 퍼뜨리며 전체 맛을 부드럽게 조율했다.

마음은 몸과 연결돼 있다. 허기와 피로가 계속되면 세상 전체가 위협처럼 느껴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무력해지는 이유다. ‘학습된 무기력’이 내 삶 전반에 침윤하더라도 든든한 밥 한숟갈 뜨면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겨난다. 하루하루 살아내다보면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가 보이고 나를 외면한 것 같던 세상도 다시 손을 내미는 날이 올 것이다. 밝은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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