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억 년 시간이 빚은 대연평도

이어 대청도의 서풍받이와 같이 깍아지른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가래치기 해안을 거쳐 평화공원으로 갔다. 평화공원에는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 관련 위령탑 등이 그날 영웅들의 슬픈 사연과 긴박했던 상황을 들려주고 있었다. 안보교육장에서 해설사 김영순 님의 설명과 함께 그날의 상황을 재현한 동영상을 시청했는데, 육지에서 단순히 매스컴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접했던 상황에 비하면 너무도 긴박하고,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불과 수 km 거리에 적과 마주하고 있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고충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충민사라는 사당이 있다. 어업의 수호신으로 모시면서 매년 전 주민이 참여해 풍어제를 지냄은 물론 출어할 때나 귀항할 때도 이 사당을 찾아 참배를 올리며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빌었다고 한다. 이 또한 임경업 장군이 조기를 처음 발견한 인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다음날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동진정으로 갔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연도교와 책섬(삼형제 바위) 건너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특히 나의 장인도 황해도 장연이 고향이었는데 결국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생전에 백령도에 가셔서 멀리 고향 하늘을 바라보고 오셨다고 했다. 이곳 또한 분단의 아픔과 실향민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음으로 아이스크림 바위를 보러 갔다. 이 바위는 동부리의 망향전망대 북쪽 해안가에 위치하며 일명 '낭까리봉'으로도 불린다. 생김새가 마치 볏섬을 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노적가리봉, 혹은 낟가리봉으로 불렸는데 낟가리가 낭까리로 변음돼 낭까리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아이스크림 바위는 선캠브리아 시대의 운모-석영편암층에 속하는 규암으로 이뤄져 있으며 규암층은 층리면이 잘 나타나는데, 규암층 내 점토질이 우세한 부분은 풍화작용을 더 많이 받아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 바위는 오랜 세월에 걸친 파도의 침식 작용을 견뎌낸 시-스택으로 파식대지 위에 우뚝 솟아 있다고 김기룡 이사장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군사보호구역 안에 있어 철조망 밖에서 봐야 하는 것이 아쉬웠다. 군부대의 허가를 받으면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한다.

네 번째 탕방 장소는 책섬이라는 곳이었다. 책섬(삼형제 바위, 벌염)은 본섬과 연륙교로 연결돼 있어 차량 통행이 가능했다. 책섬은 석영편암과 운모편암이 교호하는데 해안에는 해식애, 파식대, 육계사주가 발달돼 있으며 석영편암의 층 사이에 얇은 운모편암이 박층으로 끼어 있는 모양이 마치 많은 책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 책섬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책섬은 약 12억 6천만 년전에 생성됐으며 석영편암으로 구성돼 있다고 김기룡 이사장께서 설명해 주셨다. 특히 이곳에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검은머리물떼새가 서식하고 있었다. 탐방 시에도 두 마리가 날아와 책섬 주위를 배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연평도 탐방 중에는 철새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구지도, 갈매기가 서식하는 거도(갈매기섬)를 비롯해 백로 서식지, 검은머리물떼새, 저어새, 가마우지 등 새에 대한 관찰을 많이 할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컸다.
탐방을 마무리하면서 의미를 되새겨 보면 오월의 푸르른 날에 서해안의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연평도에서 멋진 추억을 1쪽 정도는 늘린 것 같아서 참 뿌듯했다.

이번 탐방에 함께한 모두가 멋진 인연을 맺고 아름다운 과거로 가슴에 간직하고 수시로 꺼내어 읽어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이번 연평도 탕방을 위해 애써주신 인천섬유산연구소 김기룡 이사장님과 권순학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함께 장수(長壽)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신 회원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글=이진영 인천섬유산연구소 회원·사진=김기룡 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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