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억 년 시간이 빚은 대연평도

기호일보 2026. 6. 3. 17: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푸른 연평 바다 물결 위,삶을 빛내준 인연 새기다
구리동해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대연평도 첫 번째 탐방은 구리동해수욕장. 이곳은 연평도에서 안전요원이 배치된 유일한 해수욕장이란다. 길이 1km, 폭 200m의 모래사장이 있다. 이곳은 약 16억 7천만 년전 모래가 쌓인 퇴적암층이 규암 변성암이 되면서 석영편암이 됐단다. 특히 2억2천만 년전에 현무암이 지하에서 관입돼 기포가 발생하지 않는 바람에 일반적인 현무암과 다르게 표면이 깨끗한 현무암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오석과 다르다고 김기룡 이사장께서 지질학적인 설명을 더해주셨다.

이어 대청도의 서풍받이와 같이 깍아지른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가래치기 해안을 거쳐 평화공원으로 갔다. 평화공원에는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 관련 위령탑 등이 그날 영웅들의 슬픈 사연과 긴박했던 상황을 들려주고 있었다. 안보교육장에서 해설사 김영순 님의 설명과 함께 그날의 상황을 재현한 동영상을 시청했는데, 육지에서 단순히 매스컴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접했던 상황에 비하면 너무도 긴박하고,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불과 수 km 거리에 적과 마주하고 있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고충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러 개의 책을 쌓아놓은 듯해서 책섬으로 불린다.
일행의 다음 방문지는 조기역사관이었다. 연평도의 조기는 조선 16대 인조대왕 14년(1636년) 임경업 장군에 의해 이곳 안목어장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한다. 그 후 해방 전부터 1968년 무렵까지 황금의 조기파시 어장을 이뤘다. 이 역사관은 연평도 역사와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며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건립됐다고 한다. 연평도 근해어장에서 조기가 많이 잡히던 찬란했던 시절의 역사와 각종 사료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참 교육장이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충민사라는 사당이 있다. 어업의 수호신으로 모시면서 매년 전 주민이 참여해 풍어제를 지냄은 물론 출어할 때나 귀항할 때도 이 사당을 찾아 참배를 올리며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빌었다고 한다. 이 또한 임경업 장군이 조기를 처음 발견한 인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다음날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동진정으로 갔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연도교와 책섬(삼형제 바위) 건너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과거 조기 어업이 융성했던 연평도 조기역사관.
두 번째날 첫 일정은 망향전망대. 이곳은 실향민들이 북녘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는 곳으로 기상이 좋은 날은 개머리, 해주의 시멘트 공장의 연기까지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북한과 매우 가까운 곳이라 한다. 부모님의 고향이 황해도라서 이번 탐방길에 망향제를 지내기로 한 형제가 있어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실향민 가족의 슬픔을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나의 장인도 황해도 장연이 고향이었는데 결국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생전에 백령도에 가셔서 멀리 고향 하늘을 바라보고 오셨다고 했다. 이곳 또한 분단의 아픔과 실향민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음으로 아이스크림 바위를 보러 갔다. 이 바위는 동부리의 망향전망대 북쪽 해안가에 위치하며 일명 '낭까리봉'으로도 불린다. 생김새가 마치 볏섬을 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노적가리봉, 혹은 낟가리봉으로 불렸는데 낟가리가 낭까리로 변음돼 낭까리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아이스크림 바위는 선캠브리아 시대의 운모-석영편암층에 속하는 규암으로 이뤄져 있으며 규암층은 층리면이 잘 나타나는데, 규암층 내 점토질이 우세한 부분은 풍화작용을 더 많이 받아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 바위는 오랜 세월에 걸친 파도의 침식 작용을 견뎌낸 시-스택으로 파식대지 위에 우뚝 솟아 있다고 김기룡 이사장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군사보호구역 안에 있어 철조망 밖에서 봐야 하는 것이 아쉬웠다. 군부대의 허가를 받으면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한다.

기형도 시인의 시비를 답사 중인 회원들.
이어 새마을리에 있는 기형도 시비를 보러갔다.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일찍이 읽어 본 나로서는 매우 흥분된 순간이었다. 또한 그는 나와 동년배다. 비록 29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가 태어난 곳이 연평도라니 이 만남은 내 인생에 멋진 추억이 될 것 같다. 특히 그의 시 중 '엄마 걱정'은 별도로 메모해 둘 정도로 의미를 두는 작품인데,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비 관리가 잘 안 돼 있는 것 같아 정말 아쉬웠다. 연평도의 관광자원으로써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텐데 연평도 관광안내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 번째 탕방 장소는 책섬이라는 곳이었다. 책섬(삼형제 바위, 벌염)은 본섬과 연륙교로 연결돼 있어 차량 통행이 가능했다. 책섬은 석영편암과 운모편암이 교호하는데 해안에는 해식애, 파식대, 육계사주가 발달돼 있으며 석영편암의 층 사이에 얇은 운모편암이 박층으로 끼어 있는 모양이 마치 많은 책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 책섬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책섬은 약 12억 6천만 년전에 생성됐으며 석영편암으로 구성돼 있다고 김기룡 이사장께서 설명해 주셨다. 특히 이곳에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검은머리물떼새가 서식하고 있었다. 탐방 시에도 두 마리가 날아와 책섬 주위를 배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진정에서 바라 본 일출.
마지막으로 가 본 곳은 백로 서식지였다. 대연평도 북서쪽 서부리의 고래준골과 파선봉 일대에는 백로가 서식하고 있었다. 백로는 이곳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머무른 뒤 겨울에는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라고 한다. 백로는 황새목 왜가리과의 조류로 해안이나 물가에 서식하며 연평도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이곳 고래준골에서 머무른다고 한다. 백로는 여기서 짝짓기 및 산란을 하며 알을 낳아 암수가 함께 품는다고 한다. 매년 이맘 때면 백로가 머무는 시기라서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백로들의 활동 상황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매우 많은 백로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연평도 탐방 중에는 철새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구지도, 갈매기가 서식하는 거도(갈매기섬)를 비롯해 백로 서식지, 검은머리물떼새, 저어새, 가마우지 등 새에 대한 관찰을 많이 할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컸다.

탐방을 마무리하면서 의미를 되새겨 보면 오월의 푸르른 날에 서해안의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연평도에서 멋진 추억을 1쪽 정도는 늘린 것 같아서 참 뿌듯했다.

이진영 인천섬유산연구소 회원
내가 좋아하는 어떤 작가는 수필 「장수(長壽)'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중략)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작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

이번 탐방에 함께한 모두가 멋진 인연을 맺고 아름다운 과거로 가슴에 간직하고 수시로 꺼내어 읽어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이번 연평도 탕방을 위해 애써주신 인천섬유산연구소 김기룡 이사장님과 권순학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함께 장수(長壽)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신 회원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글=이진영 인천섬유산연구소 회원·사진=김기룡 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장>

Copyright © 기호일보. 무단전재, 재배포, AI학습·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