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리닝은 커리의 발이 아니라 미래를 샀다
- 약 6060억 원 규모…현역 경기력보다 ‘브랜드 생명력’에 베팅
- 연 매출 6조6000억 원대 리닝, 커리 앞세워 미국·아시아 농구 시장 공략

스테픈 커리(38·골든스테이트)가 중국 스포츠 브랜드 리닝과 손을 잡았습니다. 한때 언더아머의 얼굴이었던 NBA 최고 슈터가 이제 중국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건 '커리 브랜드'의 두 번째 장을 열게 됐습니다.
미국 AP통신과 로이터 등은 2일 커리가 리닝과 장기 신발·의류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습니다. 계약은 커리 브랜드와 리닝의 장기 파트너십 형태입니다. 농구화와 의류뿐 아니라 골프, 라이프스타일, 스포츠 문화 확산까지 포함하는 구조입니다. 커리는 이번 계약을 두고 "일생일대의 파트너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리닝은 1990년 중국 체조 영웅 리닝이 세운 스포츠 브랜드로,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용품 기업입니다.
계약 규모도 눈길을 끕니다. ESPN과 미국 스포츠·패션 매체들은 이번 계약이 10년, 4억 달러(약 6060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규모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대목은 커리의 나이입니다. 커리는 1988년생입니다. 이미 선수로서는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는 나이입니다. 4차례 NBA 챔피언, 2차례 정규리그 MVP, NBA 역대 최고의 3점 슈터라는 이력은 더 보탤 것이 없을 만큼 화려합니다. 보통 38세 선수에게 10년 장기 계약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현역 경기력만 따진다면 위험한 투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이번 계약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리닝이 산 것은 앞으로 10년 동안 커리가 코트에서 넣을 3점 슛만이 아닙니다. 리닝이 베팅한 것은 커리가 은퇴 이후에도 유지할 이름값, 팬덤,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커리 브랜드'의 장기 생명력입니다. 코트 위 커리는 언젠가 멈추겠지만, 커리라는 이름이 가진 브랜드 가치는 그 뒤에도 계속 움직일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운동화 계약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스포츠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리닝이 커리의 '발'을 산 것이 아니라, 커리라는 이름이 앞으로 만들어 낼 시장을 산 것에 가깝습니다. 과거 농구화 시장의 공식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스타 선수를 영입하고, 선수 이름을 딴 시그니처화를 출시한 뒤, 코트 위 성과와 이미지로 제품 판매를 끌어 올리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커리와 리닝의 계약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리닝이 커리를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커리 브랜드라는 독립 자산을 리닝의 제조·유통·중국 시장 플랫폼 위에 올려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구조입니다.
커리는 일반적인 노장 스타와 다릅니다. 그는 한 시대의 농구 문법을 바꾼 선수입니다. 3점 슛을 보조 무기에서 주 무기로 끌어올렸고, 어린 선수들에게 "키가 아주 크지 않아도, 폭발적인 덩크가 없어도 농구의 중심이 될 수 있다"라는 상징을 남겼습니다. 이 이미지는 은퇴와 함께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소년 농구, 훈련 프로그램, 농구화, 골프, 가족적 이미지,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리닝이 이처럼 큰 베팅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만만치 않은 기업 규모가 있습니다. 리닝의 2025년 연 매출은 약 6조6000억 원대입니다. 순이익도 약 6500억 원대에 이릅니다. 리닝은 농구, 러닝, 배드민턴, 탁구, 트레이닝, 스포츠 캐주얼을 핵심 카테고리로 키우고 있고, 2025년 말 리닝 브랜드 관련 매장과 판매 거점은 7600개를 넘습니다.
이 숫자는 커리 계약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리닝은 이미 중국과 아시아권에서 막대한 유통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농구화 시장에서는 나이키, 조던 브랜드,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에 비해 존재감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커리는 그 약점을 단번에 보완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NBA 팬에게 리닝은 이제 단순한 '중국 브랜드'가 아니라 '커리가 선택한 브랜드'로 다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스포츠마케팅에서 이보다 강한 신뢰 이전 효과는 흔치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긴장 국면 속에서 이번 계약은 더 흥미로운 장면을 만듭니다. 최근 미·중 관계는 기술, 반도체, 관세, 안보, 대만 문제 등을 둘러싸고 긴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권과 소비시장에서는 중국 기업에 대한 경계감이 커졌고, 중국 역시 자국 브랜드와 자국 산업의 자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 NBA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중국 스포츠 브랜드와 10년 장기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입니다.
물론 커리와 리닝의 계약을 정치적 선택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계약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상업적 판단입니다. 커리는 자신의 브랜드를 세계 시장으로 키울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고, 리닝은 미국 농구 문화권에 진입할 얼굴이 필요했습니다. 국가 간 긴장은 높아져도, 스포츠 스타와 브랜드, 팬덤과 소비시장은 여전히 연결을 원합니다. 정치적으로는 경계가 높아지는 시대지만, 스포츠 비즈니스에서는 서로의 시장과 상징 자본을 빌려야 하는 역설이 나타난 셈입니다.
한국 시장에서도 리닝은 낯선 이름만은 아닙니다. 리닝은 일찍부터 배드민턴용품을 중심으로 국내에 소개됐고, 최근에는 LN-KOREA(대표 서윤영) 등을 통해 라켓, 신발, 의류, 가방, 셔틀콕 등 배드민턴용품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공식 유통사는 배드민턴뿐 아니라 농구, 피트니스, 피클볼 등 다양한 스포츠용품을 국내에 소개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 농구화 브랜드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커리 계약은 한국 시장에서도 리닝의 농구 카테고리를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배경에는 언더아머와의 결별이 있습니다. 커리는 2013년 나이키를 떠나 언더아머와 계약했고, 언더아머 농구화 사업의 상징이 됐습니다. 2015년 커리 원과 커리 투가 인기를 끌면서 언더아머는 농구화 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얻었습니다. 2020년에는 언더아머 안에서 커리 브랜드가 출범했고, 2023년에는 커리가 브랜드 사장까지 맡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양측의 방향은 달라졌습니다. 커리는 커리 브랜드를 단순한 언더아머 하위 라인이 아니라, 조던 브랜드처럼 독립성과 확장성을 지닌 스포츠 브랜드로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반면 언더아머는 매출 부진과 경영 재정비 속에서 본체 브랜드의 수익성 회복과 구조조정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결국 언더아머와 커리는 2025년 11월 결별했습니다. 로이터는 언더아머가 구조조정 확대 속에 커리 브랜드를 분리하기로 했고, 커리 브랜드는 언더아머에서 독립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결별은 단순한 계약 종료가 아니었습니다. 커리가 '브랜드 모델'에서 '브랜드 주체'로 이동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언더아머 시절 커리는 브랜드의 간판이었습니다. 이제 리닝과의 계약에서 커리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직접 키우는 사업가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리닝은 이미 NBA 스타 마케팅의 경험이 있습니다.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웨이 오브 웨이드'를 성공적으로 키웠고, 지미 버틀러도 리닝 계열의 주요 얼굴입니다. 그러나 커리는 웨이드나 버틀러와는 또 다른 차원의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4차례 NBA 챔피언, 2차례 정규리그 MVP, 그리고 3점슛 혁명이라는 농구사의 변화를 대표하는 선수입니다. 리닝이 기대하는 것은 커리의 다음 시즌 평균 득점만이 아닙니다. 은퇴 이후에도 지속될 커리 생태계입니다.

이번 계약에는 커리 브랜드의 선수 영입, 골프 라인 확장, 미국과 중국 내 커리 브랜드 매장 구상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는 커리가 단순히 리닝 신발을 신고 뛰는 선수가 아니라, 리닝 플랫폼 안에서 별도의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하는 파트너라는 뜻입니다. 농구화, 의류, 골프, 라이프스타일, 유소년 스포츠 문화까지 연결된다면 커리 브랜드는 현역 선수 후원 계약을 넘어 은퇴 이후에도 작동하는 스포츠 IP가 될 수 있습니다.
커리에게도 리닝은 필요한 파트너였습니다. 언더아머와 결별한 뒤 커리는 한동안 여러 브랜드 농구화를 번갈아 신으며 사실상 '스니커 프리 에이전트' 상태였습니다. 나이키, 리닝, 안타 등 여러 선택지가 거론됐습니다. AP통신은 커리가 드웨인 웨이드와 팀 동료 지미 버틀러의 리닝 농구화를 신어 보며 제품을 테스트했다고 전했습니다. 커리는 리닝의 착화감과 성능, 혁신성에 만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리스크도 있습니다. 미국 스포츠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를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복잡합니다. 또한 커리의 기존 팬들이 리닝 제품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도 관건입니다. 언더아머 시절 커리 농구화는 기능성 면에서는 평가받았지만, 디자인과 문화적 파급력에서는 나이키나 조던 브랜드에 비해 아쉬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리닝이 커리의 경기력과 이미지를 얼마나 매력적인 제품과 스토리로 연결하느냐가 승부처가 될 전망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계약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커리는 더 이상 단순한 농구화 모델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브랜드 자산으로 키우려는 선수이자 사업가입니다. 리닝은 그 가능성에 10년을 걸었습니다. 6000억 원대 초반의 거액을 베팅한 셈입니다.
마이클 조던 이후 수많은 농구 스타가 '선수 이름을 넘어선 브랜드'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길에 오른 선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커리는 언더아머와 함께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제 리닝과 함께 독립 브랜드의 세계 시장 진입을 시도합니다.
코트 위에서 3점슛의 거리를 바꿨던 커리가 이번에는 코트 밖에서 선수와 브랜드의 관계를 다시 바꾸려 합니다. 리닝이 산 것은 커리의 발이 아닙니다. 커리라는 이름이 앞으로 만들어 낼 시장입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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