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진 선명성’ 제주 첫 60년대생 3파전
차별화↓ 인물보다 정치구도 싸움

1995년 지방자치시대 출범 이후 제주도지사 선거(본선)에 나선 인사는 총 29명이다. 이중 5명이 무려 31년간 도지사직을 수행했다. 관선을 포함하면 35년이다.
민선 출범 직전인 제29대 제주도지사는 故 신구범 지사였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신 전 지사는 무소속 신분으로 초대 민선 1기 도정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우근민 지사와 김태환 지사가 줄줄이 재선에 성공하며 장장 30년간 '제주판 3김 시대'의 막이 올랐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주민등록상 1942년생 동갑내기다.
2014년 원희룡 지사가 고향인 제주로 향하면서 정치판은 요동쳤다. 당시 나이는 만 49세였다. 이에 우 지사가 불출마를 선언하며 탄탄했던 3김 시대도 막을 내렸다.
재선에 성공한 원 지사는 대선의 꿈을 품고 중앙정치로 향했다. 무주공산이 된 도정은 오영훈 지사가 꿰찼다. 2002년 이후 20년 만에 민주당 도지사의 탄생이었다.
현역 프리미엄을 내세워 재선에 도전했지만 민심은 냉혹했다. 당내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정치 인생에도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동시에 제주도지사 재선의 법칙도 깨졌다.
#60년대생끼리 첫 대결 사라진 선명성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968년생, 문성유 국민의힘 후보는 1964년생, 무소속인 양윤녕 제주도지사 후보는 1961년생이다.
소속 정당과 정치적 이념을 떠나 1980년대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시대적 공통점이 있다. 각자의 역할에서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한 386세대라는 점도 유사하다.
지난 선거에서는 70년대생 부순정 녹색당 후보와 50년대생인 허향진 국민의힘 후보가 출마했다. 8년 전에는 80년대생인 고은영 후보가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당시 만 32세였다.
세대 간 차이는 지방선거에서 정책 대결의 다양성을 불러왔다. 양당 정치에서 소수를 대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선거에서도 차별화된 정책으로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반면 이번 선거는 후보 간 선명성이 희미해진 모습이다. 세 명의 후보는 기존 토목 중심의개발을 지양하는 대신 환경을 보존하며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관광과 1차산업에 편중된 경제구조를 미래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도 큰 이견이 없다. 청년을 포함해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진단과 대응책 마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 최대 현안이 제2공항 건설도 나란히 '도민 결정'에 방점을 찍었다. 이에 위 후보가 내건 10GW 해상풍력의 실현 가능성 외에 후보 간 치열한 정책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책적 차별성이 희미해지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결국 인물로 향했다. 세 명의 후보 중 인지도 측면에서는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위 후보가 앞서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공직자 출신인 문 후보는 직전 지방선거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직을 던지고 출마를 결심했다. 반면 당내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첫 정치 도전을 마무리했다.
4년간 절치부심한 끝에 단수공천을 받았지만 정당의 후광을 누리지 못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으로 당 지지도가 추락하면서 지지세 결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무소속인 양 후보는 1987년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을 시작으로 정당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40년 가까이 정치에 몸담았지만 잦은 당적 이동으로 인지도에는 한계를 보였다.
민선 1기 신구범(1995년) 지사를 시작으로 김태환(2006년), 우근민(2010년), 원희룡(2018년) 지사는 모두 무소속 신분으로 도지사에 당선됐다.
중앙정치에 얽매이지 않고 인물론을 내세워 저마다 도백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세대교체와 정치 지형 변화로 중앙의 정당 바람이 제주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희미해진 선명성과 진보가 강세를 보이는 중앙정치의 구도 싸움에서 제주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또다른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 '정치가 vs 행정가' 제주의 지도자는 누구
위 후보는 2006년 이후 6차례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민선 9기 지사직에 오르면 오영훈 지사에 이어 광역의원-국회의원-광역단체장 타이틀을 얻는 두 번째 인사가 된다.
지방의회를 거쳐 국회까지 폭넓은 정치 경험은 그 자체로 장점이다. 이재명 정부의 높은 국정 지지도 덕에 집권 여당 후보의 프리미엄까지 더해졌다.
위 후보도 선거기간 본인을 '이재명 정부의 국정 설계자'라고 소개하며 대통령 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이를 '제주 미래의 설계'로 연결하며 정치력을 부각시켰다.
반대로 문 후보는 기획재정부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경제와 재정을 직접 다뤄 온 실무형 경제 전문가다. 유세에서도 '경제도지사'를 내세우며 차별화를 뒀다.
선거 초반 위 후보가 AX(인공지능) 대전환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을 때도 문 후보는 시종일관 민생경제 회복과 실행력을 언급하며 행정 전문가 이미지에 공을 들였다.
다만 선거 막판 위 후보의 전북 방문을 두고 '전라의 부속섬'이라고 평가하며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2년 전 부상일 후보의 '제주도의 전라도화' 발언까지 소환되며 논쟁이 커졌다.
1강 1중 1약 평가 속에 세 후보 모두 저마다 적임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민생을 책임지고 제주의 미래를 이끌 지도자가 누군인지는 유권자인 도민의 손으로 곧 판가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