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암벽 글씨 다시 읽어보니… “우리 수령 서쪽서 와 백성 살펴”
19세기 수색軍 선박 함장 이름 등 돌에 새긴 글들 발견해 탁본 작업
조선이 공식 영토로 관리한 증거
“우리 영토주권 지키는 학술적 방패”
‘沙工(사공) 朴明淂(박명득) 蔣(?)今男(장금남)’.
동북아역사재단의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를 통해 최근 확인된 19세기 초 조선의 울릉도 수토군(搜討軍·수색과 토벌군) 선박의 함장 이름들이다. 이를 포함해 조선이 울릉도 등을 공식 영토로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각석문(刻石文·돌에 새긴 글)들이 울릉도에서 새롭게 발견됐다.

특히 ‘울릉 태하리 각석’에서 새로운 글자가 다수 발견됐다. 수토관이 남긴 태하리 각석문은 30m 넘게 이어지는 암벽에 산재해 있다. 모두 11건가량으로 파악됐다. 조사단에 참여한 고광의 재단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그중 ‘이보국(李輔國) 각석’에서 ‘사공’의 이름 2개가 새로 발견됐다. 이보국은 1804년 강원 삼척영장(營將)으로 부임해 이듬해 울릉도를 수토한 인물. ‘사공’은 함선의 최고 책임자를 가리키는 말로, 수토에 배가 2척 이상 동원됐다는 걸 시사한다. 수토단 규모가 적어도 100명 안팎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이 명문 옆에서 ‘軍O 鄭OO 李OO’라고 쓰인 글도 새로 확인됐다. 군 관련 직책을 가진 인물들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태하리 각석에선 이 밖에도 ‘金(김)’자와 또 다른 ‘金’자, ‘江陵(강릉)’ 등의 자획이 새로 확인됐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이번엔 일정 문제로 여기까지 탁본을 하진 못했지만, 추후 수토 활동 관련 인명 등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조선 조정은 17세기 말부터 약 200년간 수토관이 정기적으로 울릉도를 방문해 실태를 조사하고 보고하도록 했다.
재단의 이번 조사에선 각석문을 명확하게 판독하는 성과도 있었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태하리 ‘광서명 각석’(1890, 1893년)에서 기존 ‘使(사)’ 등으로 읽던 글자는 ‘侯(후)’로 봤고, ‘功(공)’이라는 의견이 있던 글자는 ‘切(절)’로, ‘蕩(탕)’으로 읽던 글자는 ‘蒭(추)’로 판독했다.
이에 따라 ‘聖化東漸我侯西來誠切祝華惠深求蒭(성화동점아후서래성절축화혜심구추)’ 문구는 “성스러운 임금의 교화가 동쪽 울릉도에까지 미쳤고, 우리 수령은 서쪽 육지로부터 부임해 왔도다. 왕화(王化)를 받들고자 하는 정성은 지극하였으며, 백성을 기르고 돌보는 은혜는 깊고도 컸도다”는 뜻으로 파악됐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조선 말 울릉도의 통치와 주민들의 인식이 드러나는 구절”이라고 평가했다.

학술회의에선 해당 유적들의 재정비 필요성도 제기됐다. 태하리 각석은 관람용 데크가 오히려 수토 관련 각석을 가리거나 훼손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됐다. 문상명 재단 연구위원은 “지질환경과 역사문화 콘텐츠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함께 지정되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재단은 향후 각석문을 추가 탁본하고 수토 관련 지역인 경북 울진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철저한 고증을 통한 진실 규명이야말로 우리 영토주권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학술적 방패이자 무기”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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