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 물에 녹아 안전한데 왜 폭발했나... 8년간 13명 숨진 한화 법 위반 586건
수사당국, 2일 합동감식·참고인 조사
"화약, 분진·정전기 만나면 폭발 위험"
과거 사고 이후 법 위반 586건 적발
정부 집중안전점검 대상서도 제외돼
노조 "한화, 안전 불감증이 참사 초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폭발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경찰 수사가 2일 본격 시작됐다. 같은 사업장에서 8년간 세 차례나 폭발 사고가 발생해 13명이 숨져 안전 관리 부실이 도마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동일한 사업장 안에서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재발 방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다른 유사 사업장에 대한 안전 점검도 서둘러 달라"고 주문했다.
한화 관계자 2명 참고인 조사... 합동 감식 진행

대전경찰청 전담 수사팀은 이날 오전 대전 유성구 외삼동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에서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유족이 참여해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합동감식팀은 사고가 발생한 56동 세척실을 중심으로 발화 원인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화약 성분이 폭발을 일으킨 원인과 내부 화재 확산 경로, 인화 물질 존재 여부 등을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승식 대전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정밀 수집한 증거물을 국과수에 감정 의뢰할 계획"이라며 "희생자가 많은 만큼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객관적인 증거에 기반해 감식하겠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사업장 관계자 2명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수사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경찰은 한화 측에 사고 원인과 안전 관리 실태 규명에 필요한 자료를 임의제출 형태로 일부 확보했다.
"화약 용제 가연성 높고, 분진 등 폭발 위험 커"

한화 측에 따르면 사고 당시 근로자 7명이 세척실에서 로켓 추진제(연료)를 만드는 작업을 마친 뒤 공구에 묻은 화약을 세척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과 세제를 섞은 세척액을 뿌려 화약을 씻어내는 마무리 작업이다. 한화 측은 "화약이 물에 닿으면 무력화돼 화약이 묻은 장비를 물로 세척하는 과정은 위험한 작업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기존에는 안전하게 잘 진행된 작업"이라고 밝혔다. 과거 추진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두 번의 폭발 사고와 다르게 세척 작업은 폭발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폭발성이 높은 화약 성분이 세척실 내부에 많은 상태였다면 가벼운 충격이나 마찰로 인한 정전기 등이 점화원으로 작용해 큰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은 "고체 추진제(화약)는 점성이 꿀보다도 높아 물만으로는 씻기 어렵다"면서 "세척 과정에서 물과 함께 용제를 사용했을 텐데 이는 대부분 가연성이 높은 물질"이라고 했다. 이어 "용제와 세척실에 모인 추진제 잔류물, 공중에 떠다니는 분진 등이 정전기를 비롯한 전기적 요인 등에 의해 폭탄이 돼 상당한 규모의 폭발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 다른 화공 분야 소방전문가도 "상당 기간 세척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실내에 추진제 잔류물과 분진이 많이 쌓인 상태에서 공구 세척을 위해 이동하다가 가열이나 충격, 마찰 등으로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586건 법 위반... 안전 불감증 도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안전 관리 부실도 드러났다. 사고가 난 사업장은 고용노동부가 2018년과 2019년 사고 직후 실시한 특별근로감독에서 586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노동부는 당시 근로자 안전과 보건 총괄 관리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화약 및 추진체를 생산하는 고위험 사업장임에도 공정 안전 관리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고위험 시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집중안전점검(옛 국가안전대진단)에서도 지난 7년간 빠졌다. 2019년 사고 직후 점검에서는 80여 건의 불량 사항이 적발돼 벌금과 과태료가 부과됐고, 시설물 보완 등의 조치 명령도 받았다. 하지만 2020년부터는 단 한 차례도 점검을 받지 않았다.
수사당국과 노동당국은 폭발 사고 재발에 대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안전 관리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적용을 검토할 예정이다.
1일 폭발 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친 대전사업장은 2018년과 2019년에도 폭발 사고가 발생해 각각 5명, 3명이 숨졌다. 2018년에는 로켓 추진연료 주입 과정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고, 2019년에는 추진체 연료 제거 작업 중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과거 두 사고로 기소된 한화 관계자 5명은 징역·금고형의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법인인 한화에는 벌금 3,000만~5,000만 원만 부과됐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지난 8년간 노동자들의 목숨을 빼앗고도 별다른 처벌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죽음 행렬이 멈추지 않는 것"이라며 "노동자의 목숨을 팔아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도록 지시한 한화 자본의 맨 꼭대기까지 기업 살인의 책임을 물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대전=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대전= 나민서 기자 iam@hankookilbo.com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대 희생자 2명, 입사 석 달 된 계약직이었다... 신원 확인 차질에 빈소도 못 차려-사회ㅣ한국일
- 46번 흉기 휘둘러 아버지 살해한 아랫집…"집에 없을 때도 시끄럽다 했다"-지역ㅣ한국일보
- 대통령 직함도 '생략'… 장동혁 "이재명 정권 폭주 막아달라"-정치ㅣ한국일보
- 황정음 "항상 싫었다"… 이혼 전 심경 고백-문화ㅣ한국일보
- 최태원과 어깨동무한 젠슨 황, 5일 방한해 '삼겹살 회동'… 이재용은 불참-경제ㅣ한국일보
- 삼전 61만·하이닉스 400만원 가나… 증권가서 '여전히 저평가' 말 나온 이유-경제ㅣ한국일보
- 장윤기 집서 훼손된 성인용품 발견… 광주 여고생 "성적 동기의 계획 살인" 결론-지역ㅣ한국일보
- '한국 로봇' 콕 집은 젠슨 황… 관련주 뛰고 동선 지도까지 나왔다-경제ㅣ한국일보
- 이름 없이 "1번, 2번, 3번"...한화에어로 희생자 시신 훼손으로 신원 확인 어려워-지역ㅣ한국일보
- 유통기한 지난 라면 먹으며 버텼다...K9 이집트 '2조' 수출의 주역은-정치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