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견제 손잡은 베트남·필리핀 “남중국해 항행 자유는 협상 불가”

남중국해를 사실상 자국 앞바다처럼 만들려는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과 필리핀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했다.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은 지난달 31일부터 1일까지 이틀간 필리핀 마닐라를 국빈 방문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기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양국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또 2010년 체결한 국방 협력 양해각서(MOU)를 갱신하고 해안 경비대 합동 훈련과 해양 순찰을 확대하는 등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의 해양 패권 확대에 맞서 안보 공조를 본격화한 것이다.
◇50년 만 첫 최고 지도자 국빈 방문
베트남 최고 권력자인 공산당 서기장이 필리핀을 국빈 방문한 것은 1976년 양국 수교 이후 처음이다. 양국 관계가 오랫동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 필리핀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었고, 베트남은 소련·중국과 가까운 사회주의 국가였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필리핀이 미군 지원 기지 역할을 하면서 양국 관계는 긴밀해지기 어려웠다.
이후에도 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필리핀명 칼라얀군도) 일부 영유권을 서로 주장해왔다. 양국 해군이 해당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대치한 적도 있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베트남 최고지도자의 외교 일정은 중국·러시아·라오스·캄보디아 등 사회주의 우호국이나 미국·일본 등 주요 강대국 중심으로 이뤄졌고, 필리핀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핵심 변수는 중국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경과 해상민병대 활동이 거세지면서 베트남과 필리핀이 동시에 압박을 받게 됐고, 자연스럽게 안보 협력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올해는 양국 수교 50주년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10주년이 겹친 데다 필리핀이 아세안(ASEAN) 의장국을 맡으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평가다.
양국 협력의 핵심은 전 세계 해상 교역량의 3분의 1이 지나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압박에 공동 대응하는 데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선인 ‘9단선’을 무효로 판단한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을 거론하며 국제법에 따른 해결을 촉구했다. 베트남 역시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등 국제법 준수 원칙을 재확인하며 필리핀 입장에 힘을 실었다.
◇中 견제엔 공감대…접근법은 달라
다만 중국을 상대하는 두 나라의 전략적 계산은 다소 다르다. 필리핀이 중국과 정면 대치에 가까운 대응을 하고 있다면, 베트남은 갈등과 협력을 병행하는 이른바 ‘대나무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평가다. 뿌리는 단단히 내리되 가지는 유연하게 움직인다는 뜻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과 실용을 중시하는 베트남식 외교 노선을 말한다.
필리핀은 최근 중국 해경의 물대포 공격 등 물리적 충돌 장면을 공개하며 국제 여론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동시에 미국·일본과의 안보 협력도 빠르게 확대하는 분위기다. 반면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겪으면서도 중국과의 경제·정치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은 지난 4월 중국과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공급망·인프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이번 양국 관계 격상은 강력한 군사동맹의 탄생이라기보다 중국의 일방적 행동을 견제하려는 동남아 국가들의 ‘균형 전략’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나라 모두 중국과 정면 충돌하기보다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어렵도록 외교적 압박을 함께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필리핀으로서는 중국에 홀로 맞서는 부담을 덜 수 있고, 베트남은 중국과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회담 후 “이 파트너십은 지역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환경을 헤쳐 나가는 지금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두 나라의 밀착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다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국에도 영향을 미쳐 아세안 내부의 공동 대응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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