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임우선]소셜미디어 타고 미국 삼킨 합성 마약… “한국도 안전지대 아냐”

뉴욕=임우선 특파원 2026. 6. 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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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닐과의 전쟁’ 심장, 뉴욕 마약단속국(DEA) 가보니
중국산 원료로 제조해 남미 통해 유입…대충 만든 합성 마약에 연 10만 명 사망
모르핀 100배 중독성에 ‘비즈니스화’…벽돌 하나 크기 원재료로 수십억 수익
단속 강화된 미국 대신 타 외국 확산…“한국도 위험… 학생-젊은층 지켜야”
지난달 7일 미국 뉴욕 맨해튼 마약단속국(DEA)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단속에서 압수돼 연구실로 온 펜타닐을 들어 보이고 있다. DEA 연구원들은 적발된 마약의 성분을 분석하고, 마약류의 진화 양상을 알아내며, 선제적 대응법을 연구한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미국 뉴욕 맨해튼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하이라인’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산책로가 끝나갈 때쯤 오른편으로 노란색 건물이 나타난다. 뉴욕의 여느 건물들처럼 낡고 세월이 묻은 느낌이 나는 이 건물은 겉보기엔 특별할 게 없다. 하지만 이곳은 ‘펜타닐과의 전쟁’을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마약 단속을 총괄하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북동부 지역본부 건물이다. 뉴욕시와 뉴욕주뿐 아니라 12개 주와 워싱턴의 마약 단속 작전까지도 이곳의 지휘를 받는다. 지난달 7일(현지 시간) 찾은 DEA 본부에서는 미국이 벌이고 있는 ‘마약 비즈니스’와의 사투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DEA 본부를 취재하는 과정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방문일 20여 일 전에 신원조회를 위한 신상 정보를 제출해야 했고, 건물 입구에서 신원 확인과 엑스레이 검사 등을 받아야 했다. 또 건물 내 모든 층과 방들을 이동할 때 반드시 요원의 동행하에 움직여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미 북동부 지역의 마약 단속 지휘부일 뿐만 아니라 수거해 온 각종 마약류가 모아진 뒤 분석되고 폐기되는 연구실이 함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본 펜타닐 등 마약류만 해도 수십만 명에게 투약할 수 있는 수백억 원대 분량이었다. 말 그대로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는 곳이었다.

● “헤로인은 옛말” 중국발 펜타닐에 잠식된 미국

이날 만난 프랭크 타렌티노 DEA 북동부 지역본부장은 마약 단속 요원으로서 자신의 28년 경험을 집약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멕시코를 대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펜타닐과 그 핵심 원료(전구체)를 ‘대량살상무기(WMD)’로 지정하고 두 국가를 특정해 강력한 마약 유입 차단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는 “현재 미국의 마약 시장 상황은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에 보던 상황과 완전히 다르다”며 “당시엔 사람들이 오피오이드나 헤로인을 찾아다녔지만 2015년 전후로 펜타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지금은 이러한 합성 마약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본래 펜타닐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강력한 합성 오피오이드 계열 약물로 병원에서 진통제나 마취제로 쓰던 것이다. 진통 효과가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약 100배에 달하는 초강력 합성 마약이다.

이런 합성 마약은 몇 가지 재료만 있으면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보니 중국과 남미의 범죄 조직들이 이를 ‘마약 비즈니스화’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타렌티노 본부장은 “이들이 만든 펜타닐은 제약사의 (진짜) 펜타닐과 달리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시설에서 대충 섞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펜타닐은 연필심에 올릴 정도 분량인 단 2mg만 먹어도 목숨을 잃는데, 어떤 알약엔 많이, 어떤 알약엔 적게 성분이 들어가다 보니 많은 양이 함유된 알약을 먹는 이들이 목숨을 잃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DEA가 검사한 펜타닐은 알약 10개 중 4개꼴로 치사량이었지만, 2022년에는 10개 중 6개로 늘어났다. 펜타닐 과다 복용에 따른 사망자 수도 2021년 10만 명에서 2022년 11만 명으로 늘었다. 2023년 치사량 알약 비중은 10개 중 7개로 늘었다. 당시 뉴욕시에서 사망한 사람만 3000명이 넘을 정도였다.

특히 DEA는 펜타닐의 원료 공급부터 유통, 자금 세탁까지 전 과정에 중국의 범죄조직이 개입돼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마약 판매 자금을 세탁하는 과정에선 가상화폐가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필심 위에 올려진 펜타닐 가루 2mg의 모습. 바로 이만큼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치사량이다. 사진 출처 DEA

● 소셜미디어 무기화… 최대 수익 노리는 마약 카르텔

미국의 마약 인구는 약 5000만 명에서 8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뉴욕은 미국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라 마약 유통의 중심 거점 중 하나로 꼽힌다.

이날 타렌티노 본부장 사무실의 지역 내 작전 현황을 보여주는 모니터에는 요원들의 위치와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그는 “마약 판매상들이 주로 활동하는 밤 시간에는 수십 개의 작전팀이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DEA 요원들은 때로 마약 재판매상을 가장해 일명 ‘물건 사고 빠지기(buy and walk)’ 전략을 쓰기도 한다. 마약 밀매범과 거래하며 잠입 수사를 하되, 더 큰 총책을 찾기 위해 검거를 미루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최근 마약 수사에서 또 하나의 핵심은 ‘소셜미디어’다. 예전처럼 늦은 밤의 구석진 거리 모퉁이에서 헤로인을 사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이에 DEA는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빅테크들과 협력해 마약 거래 차단을 위한 정책을 도모하고 있다. 또 DEA 홈페이지에 마약 거래 시 자주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나 은어들을 게시해 마약 거래자의 친구나 가족들이 미리 위험 신호를 감지하도록 안내한다.

DEA는 올 4월 펜타닐 단속에서 뉴욕시에서만 200kg의 펜타닐을 압수했다. 이는 치사량 1000만 회분이다. 특히 최근에는 새로운 합성 마약도 등장하고 있다. 일부 마약 판매상들 사이에선 펜타닐보다 100배 강력한 합성 마약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이러한 ‘마약 트렌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게 DEA 안에 있는 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압수해 온 모든 마약을 분석하고, 성분의 변화 동향을 파악하는 한편으로 작전 계획을 조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구글리엘모 DEA 연구소장은 “전국적으로 360명의 화학자가 DEA 연구소에서 마약을 분석하고 있다”며 “최근의 합성 마약들은 연구진들이 봐도 외관상으로는 진짜 약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성분은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이날 한 연구원은 최근 단속에서 수거된, 비닐로 포장된 벽돌 크기의 가루 덩어리를 분석하고 있었는데 약 1kg 분량의 펜타닐 원료라고 했다. 그는 “순도에 따라 다르지만 이는 10만∼15만 회의 치사량에 해당한다”며 “가격으로 치면 최대 약 75억 원어치”라고 설명했다. 국제 범죄 카르텔들이 펜타닐 유통과 확산에 올인하는 이유다.

● “한국도 안전지대 아니야…십대 젊은층 각별히 지켜내야”

DEA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뒤 미국의 마약 단속이 크게 강화되면서 국제 마약 카르텔들이 다른 나라로의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DEA는 한국을 포함해 63개국에 86개의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전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마약 카르텔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한다.

특히 소셜미디어 사용이 빈번하고 정서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학생이나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큰 경각심이 요구된다. 실제 미국에서도 펜타닐 등 합성 마약의 주된 희생 연령대가 10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학생 운동선수가 많은 것이 특징인데, 경기력 향상이나 부상 통증 완화 등을 목적으로 약에 의존하다가 펜타닐에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또 집중력이 좋아진다는 유혹에 친구나 지인이 준 ‘샘플’을 받았다가 단 한 번에 치사량에 노출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한편, DEA는 최근 한국에서 일명 ‘물뽕’으로 불리는 다량의 감마하이드록시부티르산(GHB)이 밀수돼 온 것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전했다. 타렌티노 본부장은 “GHB는 미국에서 가장 엄격히 규제되는 마약 중 하나”라며 “한국으로부터 뉴욕뿐 아니라 볼티모어 등 북동부 지역에 불법 밀매한 것을 적발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워싱턴 연방검찰청은 한국인을 포함한 관련자 11명을 기소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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