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관객 향해 발로 뛰는 독립영화 ‘3학년 2학기’ 신운섭 프로듀서

김성호 2026. 6. 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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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스크린… 청년들의 내일을 비추다

OTT 없이 10개월째 상영중… 현재까지 누적관객 2만5900명 돌파
오랜기간 연극계 몸담아… GV 행사·단체 관람 등 현장 배급 활동
출발 응원·평범한 이들 ‘연대 강조’… 올해 상영·현수막 캠페인도

직업계고 학생의 중소기업 현장실습을 그린 영화 ‘3학년 2학기’(이란희 감독)의 신운섭 프로듀서가 인천 주안 작업실 인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 프로듀서는 인터뷰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직업계고 학생들이 진심 어린 환대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2026.5.2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제작 목적, 자본의 규모, 작품의 주제 등등.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일 것이다. 이윤 추구가 최우선인 투자자로부터 독립해 무엇을, 왜 찍을지 온전히 창작자가 결정하면 독립영화이고, 그렇지 못하면 상업영화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반대로 창작자가 아닌 수용자인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보려고 크게 애쓰지 않아도 보게 되는 영화를 상업영화라고 하면, 간절히 보려고 해도 만나기 힘든 영화가 독립영화가 아닐까.


영화 ‘3학년 2학기’는 영락없이 독립영화였다. 평범한 범주의 영화는 극장 관람을 놓치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오티티(O.T.T) 플랫폼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난해 9월 정식 개봉 이후 그 어떤 OTT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급한 일부터 처리하느라 극장 방문을 미뤘던 것이 후회됐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영화는 지난해 9월 전국 개봉 이후, 대부분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독립·예술영화 상영관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관객과 만나며 10개월째 여전히 ‘상영중’이다.

이 영화가 자본의 법칙을 거스르고 관객과 만나고 있는 데는 인천을 기반으로 특유의 뚝심으로 작품을 제작해 온 신운섭 프로듀서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영화 ‘3학년 2학기’(감독 이란희)는 인천의 직업계 고등학교(특성화고) 현장 실습생들이 마주하는 거친 현실을 다뤘다. 2025년 9월 개봉 이후 2026년 현재까지 누적 관객 2만5천900명을 돌파했다. 1만명을 넘기기 힘들다는 독립영화계에서 기묘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온라인 공개를 미루고 프로듀서가 직접 전국의 극장과 학교,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스스로가 ‘배급망’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 영화 프로듀서로서의 그의 분투와 그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작업실은 영화 ‘3학년 2학기’의 배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인천의 산업단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주안 산단의 한 건물 지하에 있다.

“10개월 넘는 상영 기간이 좀 특이하긴 하죠(웃음). 사실 극장에 걸리는 상업 영화는 이런 방식을 잘 안 하죠. 왜냐하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거든요. 저처럼 이렇게 쓸 에너지를 오히려 막대한 마케팅비를 투여해 극장에서 보게끔 만들어내는 방식을 사용하죠. 그리고 ‘작품 값’을 쫙 올린 다음에는 이제 오티티에 비싸게 팔아 넘기는 방식이죠. 상업영화의 방식인데, 저처럼 발로 뛰는 ‘마케팅’은 품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영화 ‘3학년 2학기’는 지난해 개봉 전부터 독특한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왔다. 인천에서 시작된 ‘전국수학여행’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상영회였다. 인천에서 작품을 만들고 활동해 온 인천 감독이 만든 인천의 스토리인 만큼 인천 시민사회가 이 영화를 응원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신 프로듀서가 제안해 지난해 2월 26일 첫 상영이 이뤄졌다. 영화 정식개봉 전에 붐을 일으키고자 했던 방식이었는데, 광주·부산 등을 돌며 지난해 9월 3일 개봉 전까지 해서 2천여명이 관람했다.

영화를 감상한 관객과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는 GV 행사인 ‘전국수학여행’은 개봉 이후에도 이어졌다. 11월 13일 전국대학수학능력시험일을 기점으로는 다른 이름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사회초년생 응원 상영 with YOU’라는 타이틀로 전국을 순회했다. 지난해 9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경기 안산에서 특성화고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며 현장실습 제도와 관련한 고민을 나눴고 지난해 12월 말에는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현장실습생들과 함께 보며 관련 정책 개선을 약속하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극장이든, 학교든, 혹은 지역 공동체든 영화를 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고 있다. 지역 공동체나 단체들이 주체적으로 영화를 보고 싶어 작품을 초청하는 경우와 학교 등에서 극장 좌석을 통째로 구매해 관람하는 ‘단체 관람’, 제작자가 직접 기획해 찾아가는 무료 상영 방식도 일부 진행 중이다. 애써 만든 작품을 극장에서 틀어주지 않아 상업 영화에 밀려나는 구조에서 상영 기회를 스스로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인 것이다.

2026.5.2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신 프로듀서는 원래 영화 전문가가 아니었다. 대학 시절부터 오랜 기간 연극계에 몸담으며 극단 기획자와 무대 감독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는 2008년 그의 창작 파트너이자 아내인 ‘특수관계인’ 이란희 감독이 첫 단편 영화 ‘파마’를 찍게 되면서 우연히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엔 프로듀서라는 이름도 없이 동네 미용실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의 밥을 차려주고 심부름을 도맡는 ‘제작부 막내’이자 ‘밥순이’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소박한 영화가 전 세계 영화제를 돌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강력한 사회적 파급력에도 눈을 떴다. 영화 현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연극계에서 매달 붙잡고 씨름하던 기획 및 조율 업무와 본질이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전야’, ‘천막’, ‘휴가’를 거쳐 지금의 ‘3학년 2학기’까지, 그는 이란희 감독의 가장 든든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그가 정의하는 프로듀서란 영화의 기획부터 제작, 최종 배급과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존재다. 특히 독립 영화 프로듀서로 산다는 것은 자본의 유혹을 기꺼이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하는 역할이다. 그도 ‘3학년 2학기’를 처음 기획할 당시, 청소년 관객을 대거 유입시키기 위해 유명 아이돌이나 톱스타를 캐스팅하자는 제안을 고민했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 구조였다면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당연히 솔깃했을 카드였다. 하지만 신 프로듀서의 선택은 단호했다. 특성화고 아이들의 거친 삶의 궤적을 그리는데, 화면에 너무 익숙한 스타가 나오는 순간 극의 현실감이 깨지고 이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연출자의 철학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다. 결국 오디션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고 지금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애초 이 영화는 우리가 교복 입은 학생을 보면서 그 가운데 직업계 고교 학생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의 인식을 꼬집으면서 수능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학생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기획됐다. 독립 영화 흥행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1만명을 훌쩍 넘어 2만5천명을 넘겼지만, 그가 진짜 목표로 했던 우리나라 전체 고교 3학년 청소년 인구의 1%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4천명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어 주지도 않을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대신 관객을 직접 모으고 찾아 나서는 지금의 방식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킬링타임용 작품이 아닙니다. 관객이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오프라인 상영을 고집해야 영화의 진짜 생명력이 유지된다고 믿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순간, 독립 영화는 검색창에 제목을 직접 치지 않는 한 노출조차 되지 않는 무덤으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인 겁니다.”

그러나 거대 자본이 독점한 배급 생태계에 맞서는 일은 고됐다. 영화의 가치를 알아봐 줄 단체나 기관을 찾아가도 관성적인 현안에 치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였다. 지방의 한 교육청에서는 “이런 영화를 보여주면 직업계 고등학교에 신입생들이 지원을 안 한다”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영화를 만난 현장 관객의 생생한 반응 덕분이었다.

2026.5.2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신 프로듀서는 올해 수능시험 이전까지 새로운 상영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직업계고, 인문계고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청년의 출발을 응원하자는 것이 캠페인 취지다. 2학기 16주 응원 릴레이 캠페인은 ‘수능을 응원하던 사회에서 청년의 출발을 응원하는 사회로’가 모토다. 또 ‘수능 대박’ 현수막을 모든 출발을 응원하는 문구로 바꾸는 현수막 캠페인도 제안할 예정이다.

노동 환경이나 교육 제도를 단숨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거리에 걸리는 현수막 문구나 대중의 시선을 바꾸는 캠페인은 지금 당장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 영화의 진짜 힘이 평범한 이들의 연대에 있음을 강조했다.

“영화 속 창우 같은 평범한 존재들이 우리 사회에 대부분입니다. 누구나 다 서울대에 가는 건 아니잖아요. 누구나 다 대기업 임원이 되거나, 장관이 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우리 사회의 진짜 주인공들은 영화 속 창우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하루를 살아내는 대다수의 존재들인데, 그 평범한 존재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우리 어른들이 진심으로 환대하고 격려해 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신운섭 프로듀서는?
극단 한강에서 활동했다. 현재 인천에 거주하며 연극영화 창작활동 및 예술교육 활동 단체인 ‘작업장봄’을 운영하고 있다. 작업장봄에서 배우, 프로듀서, 예술교육기획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이란희감독 독립단편 ‘파마’제작을 시작으로 ‘결혼전야’, ‘천막’, 독립장편 ‘휴가’ 제작 및 프로듀서를 맡아 일했다.


/김성호 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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