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환경보다 개발”...기후위기 대응 미룬 선거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기자가 가장 많이 목격한 단어는 성장이었고 가장 보이지 않았던 단어는 기후였다.
후보들의 공약은 대체로 비슷했다. AI 산업 유치, 데이터센터 건립, 반도체 산업단지 확대, 기업 투자 유치, 광역교통망 구축. 여야를 막론하고 성장과 개발이 공약의 중심에 섰다. 반면 기후위기와 생태보전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뉴스펭귄>은 선거를 앞두고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에게 온실가스 감축, 미세먼지, 생활폐기물, 기후취약계층 보호, 개발과 생태보전, 환경 거버넌스 등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러나 유력 후보 상당수는 답하지 않았다.
환경단체와 연구기관들이 별도로 진행한 기후·에너지 정책 질의에서도 수도권 거대 양당 후보들의 침묵은 반복됐다. 시민사회 차원의 정책 검증 시도에서도 무응답이 이어진 것이다. 이에 "정치인은 공적 질의에 답변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필요한 시점에 정책 설명을 하지 않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공약집을 들춰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후위기 대응은 주변부에 머물렀고, 생태보전은 사실상 실종됐다.
이상한 일이다. 수도권은 전국에서 온실가스 배출과 자동차 통행량, 생활폐기물 발생이 가장 집중된 곳이다. 폭염과 집중호우는 해마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수도권매립지 갈등과 반도체 산업단지 확대에 따른 전력·용수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답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선거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후보들은 AI를 이야기했다. 데이터센터를 약속했다. 기업 유치를 외쳤다. 하지만 그 성장이 얼마나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는지, 얼마나 많은 물을 소비하는지, 지역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 후보는 찾기 어려웠다. 성장의 청사진은 있었지만 비용 계산서는 없었다.
김양희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지난 1일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이번 지방선거 주요 공약은 경제성장과 지역개발을 위한 AI 신산업 유치로 요약된다"며 "데이터센터만 해도 전기와 물 사용 문제 등 우려가 많은데 그런 이야기는 없고 유치 이야기만 나온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선거는 기후는 말해도 생태는 말하지 않는 선거에 가까웠다. 재생에너지 확대나 RE100 같은 공약은 일부 등장했다. 그러나 성장 이면의 갯벌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생물다양성 감소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난개발을 어디까지 멈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육감 선거 공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AI 교육과 디지털 전환, 기초학력과 교권 회복은 주요 공약으로 반복됐지만 환경교육과 생태전환교육은 일부 후보를 제외하면 중심 의제가 되지 못했다. 폭염으로 운동장 수업이 취소되고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닫고 생활하는 시대에 기후위기는 학생들의 현재이자 미래의 문제다. 그런데도 교육 공약에서조차 후순위로 밀렸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정치권의 판단이 현실과 어긋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사무처장은 "기후위기는 유행처럼 지나가는 이슈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라며 "시민들은 기후정책을 원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여전히 이를 중요한 의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후정치바람이 지난 3월 발표한 '기후위기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절반 이상이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들면 투표를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다. 2024년 제22대 총선 전 진행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기후위기가 표가 안 된다는 정치권의 오래된 믿음과는 다른 결과다.
이번 지방선거는 기후위기가 중요하지 않아서 침묵한 선거가 아니다. 너무 중요해서 답해야 했지만 유력 후보들이 끝내 답하지 않은 선거에 가깝다.
선거는 끝난다. 하지만 폭염은 끝나지 않는다. 집중호우도, 쓰레기 갈등도, 전력과 용수 문제도 투표함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후순위로 미룬 선거의 대가는 결국 시민들이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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