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기업사] 땅도 기술도 없던 '현대전자'... 1조 달러 SK하이닉스가 되기까지
최근 SK하이닉스가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한화 약 1,600조 원)를 돌파하며 글로벌 '트릴리언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주가 폭락과 청산 위기 속에서 눈물 젖은 붕어빵을 먹던 기업이 이제는 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 시장의 독보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선도 기업이자 가격과 표준을 주도하는 '룰 세터(Rule Setter)'로 우뚝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늘날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45년에 걸친 처절한 생존 투쟁과 대담한 결단의 역사가 숨어 있다. 기술도 땅도 없던 현대전자 시절부터 부채의 늪에 빠져 하루 이자만 27억 원을 내야 했던 하이닉스 시절, 그리고 SK그룹 체제에서 미래를 바꾼 빅딜에 이르기까지 SK하이닉스가 걸어온 파란만장한 기업사의 전말을 되짚어본다.
"땅도 기술도 없다" 정주영의 무모했던 도전과 국도건설 인수
SK하이닉스의 뿌리는 1983년 설립된 현대그룹의 '현대전자'다. 현대그룹이 전자 및 반도체 산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중후장대(중공업·자동차·건설·조선)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지닌 현대그룹은 매출 규모에 비해 부가가치가 낮다는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특히 라이벌인 삼성그룹이 이병철 회장의 주도로 반도체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며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으로의 전환을 결심하게 된다.
1983년 현대그룹은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현대는 반도체 제조를 위한 원천 기술은커녕 공장을 지을 땅조차 없던 상태였다. 반도체 공장은 엄청난 규모의 부지와 함께 깨끗한 공업용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었다. 현대 종합기획실 신규사업팀이 찾아낸 최적의 장소는 경기도 이천이었다.
문제는 공장 건설에 최소 32만 평의 대지가 필요했으나, 당시 현대가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는 땅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조사 끝에 이천 부지에 무려 23만 평의 토지를 보유한 '국도건설'이라는 회사가 포착됐다. 1949년에 설립된 이 건설 회사는 기술력이나 반도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땅'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전자는 국도건설을 전격 인수하게 된다.
'150 작전'…전투처럼 치러진 기술 축적
부지는 확보했으나 행정적 규제가 또 발목을 잡았다. 이천 부지 중 일부가 개간 농지와 초지로 묶여 있어 농림부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이 규제를 해결하느라 경쟁사인 삼성에 비해 공장 착공이 6개월가량 늦어졌다.
자체 기술이 전무했던 현대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먼저 설계와 기술을 다루는 소규모 공장을 짓고, 이를 그대로 카피해 한국 이천 공장에 이식하는 전략을 취했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며 사활을 건 투자가 시작됐으나, 반도체의 핵심인 '수율(양품 비율)'을 올리는 것은 또 다른 난제였다. 초기에 야심 차게 도전했던 에스램(SRAM) 사업이 수율 저하로 실패로 끝나자, 현대전자는 디램(DRAM)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빠른 시간 내에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마치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적 개발에 돌입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85년 5월에 시작된 '150 작전'이다. 8월 15일 광복절까지 딱 100일 동안 디램 수율을 50%까지 끌어올리자는 의미에서 명명된 이 작전은 전 직원을 현장에 갈아 넣는 압축 성장의 전형이었다. 현대전자 임직원들은 놀랍게도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수율 50%를 달성하며 조기 졸업을 선언했다.
이 시기 현대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거물이었던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사와 64K 디램 위탁 생산(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한다. 오늘날 애플과 TSMC의 관계처럼, 안정적인 대량 생산을 반복하며 공정 노하우를 축적한 현대전자는 1989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위권 진입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이어 1996년에는 삼성을 필두로 한 메모리 호황기 속에서 글로벌 디램 시장 점유율 4위까지 치솟으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루 이자 27억 원'과 눈물의 장비 개조
그러나 영광은 길지 않았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IMF)가 한반도를 덮쳤다. 정부 주도의 대기업 구조조정(빅딜) 과정에서 현대전자는 6위 업체였던 LG반도체를 강제로 떠안게 되었다. 동종 업계의 거대 두 기업을 합쳐 세계 2위 규모의 경제를 이루겠다는 구상이었으나, 이는 재앙의 서막이었다.
서로 다른 조직 문화의 결합 실패는 물론, 부채를 안은 기업끼리의 결합은 엄청난 채무 폭증으로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초 IT 버블이 붕괴하면서 디램 가격이 폭락했다. 통합 실패에 따른 비용 누적과 매출 급감으로 인해 당시 하이닉스가 지불해야 했던 하루 이자만 무려 27억 원에 달했다. 1년으로 환산하면 1조 원에 육박하는 막대한 돈이 이자로만 증발하는 상황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 속에서 현대그룹은 결국 반도체 사업을 잘라내기로 결정했다. 2001년 3월, 현대라는 이름을 떼고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하며 채권단 공동 관리(워크아웃) 체제에 들어갔다.
생존이 유일한 목표였던 이 암흑기에 하이닉스 임직원들은 임금 동결과 순환 휴직을 감내하며 뼈를 깎는 비용 절감에 나섰다. 돈이 없어 ASML의 차세대 노광장비 등 신규 설비를 전혀 살 수 없게 되자, 엔지니어들은 기존에 있던 노후 장비를 분해하고 뜯어고쳐 미세 공정을 구현하는 무모한 시도를 했다.
이것이 바로 하이닉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신으로 꼽히는 '블루칩(Blue Chip) 프로젝트'다. 장비를 새로 사지 않고 개조 기술만으로 미세화를 달성해 웨이퍼당 칩 생산량을 1.7배나 끌어올렸고, 결과적으로 약 9,500억 원의 투자비를 절감했다. 장비 중심의 치킨 게임 구도를 공정 프로세스와 수율 중심의 경쟁으로 뒤바꾼 이 눈물의 혁신 덕분에 하이닉스는 오히려 이 시기 엄청난 공정 노하우를 축적하게 된다.
최태원과 모리스 창의 만남… 반도체를 인프라로 정의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혹독한 치킨 게임을 견뎌내며 살아남은 하이닉스는 채권단 체제에서 벗어날 준비를 한다. 효성, STX 등이 인수를 타진했으나 거대한 자금 부담과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로 중도 하차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곳이 바로 SK그룹이었다.
당시 SK그룹 내부와 이사회, 경영진은 하이닉스 인수를 격렬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유(에너지)와 통신 중심의 SK 비즈니스 모델은 한 번 설비를 지어놓으면 꾸준히 돈이 들어오는 캐시카우형 사업이었던 반면, 반도체는 매년 수조 원의 천문학적인 케펙스(시설 투자)를 쏟아붓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이클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인수의 결정적 도화선이 된 것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결정이었다. 2010년 다보스 포럼 등을 거치며 반도체 산업의 미래 가능성을 공부하던 최 회장은 당시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張忠謀) 회장과 만났다. 모리스 창 회장은 "반도체 사업은 앞으로도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글로벌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과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 조언에 힘입어 최 회장은 반도체를 단순한 '제조업 부품'이 아닌, SK텔레콤이나 SK이노베이션처럼 국가와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정보기술(IT) 인프라'로 정의했다. 인프라 사업이라면 이미 SK가 가장 잘하는 영역이라는 확신이었다. 결국 SK그룹은 내부의 반대를 꺾고 치열한 가격 협상 끝에 3조 3,747억 원이라는 가격에 하이닉스를 인수하게 된다. 오늘날 시총 1조 달러(1,600조 원) 규모로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무려 470배 넘는 수익률이다.
만년 2등의 반란, HBM의 탄생
SK텔레콤의 막강한 현금 창출력과 자금 조달 능력으로 SK하이닉스는 인수 직후부터 공격적인 선제 투자에 나섰다. 매출 대비 R&D 비중을 최대 12%까지 끌어올리며 과거 채권단 시절에는 꿈도 꾸기 어려웠던 기술 투자를 감행했다. 또한 사내 대학인 'SK하이닉스 유니버시티(SKHU)'를 설립해 외부 수혈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인 기술 내재화를 이룰 수 있는 인재 육성 시스템인 소프트웨어 투자도 병행했다.
모두가 삼성전자에 이은 '만년 2등'으로 기억하던 SK하이닉스가 판을 뒤집은 결정타는 최근 전 세계를 뒤흔든 인공지능(AI) 반도체, 즉 고대역폭메모리(HBM)였다. 다만 이는 결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아니다.
그 역사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이닉스 연구진은 평면 미세공정 기술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것을 직감하고, 칩을 아파트처럼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적층 구조 연구에 착수했다. 실리콘 웨이퍼에 머리카락 굵기의 수천 분의 일 크기로 미세한 구멍을 뚫어 상하 칩을 관통하는 통로를 만드는 TSV(관통전극) 기술이 그 시초였다.
지속적인 R&D 끝에 2013년 세계 최초로 1세대 HBM을 출시했으나, 당시에는 이 비싼 메모리를 사줄 시장이 없었다. 게임용 GPU 등 극히 일부에만 납품될 뿐,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기엔 가성비가 맞지 않아 사내외에서 적자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경쟁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HBM 연구를 축적하지 않거나 사업을 접을 때도, SK하이닉스는 묵묵히 기술을 개량했다.
특히 칩을 쌓을 때 발생하는 물리적 불안정성과 극심한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간 사이에 액체 보호재를 흘러넣어 굳히는 독자적인 MR-MUF 공정을 완성한다. 이 축적된 십수년의 시간이 2020년대 인공지능 시대를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 것이다.
과거 메모리 기업들은 글로벌 거대 기업들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프라이스 테이커’였다. 하지만 이제는 엔비디아와 파트너십을 맺고 GPU와 이에 맞는 메모리를 제시할 수 있는 ‘룰 세터(Rule Setter)’로 거듭나고 있다.
맨땅의 23만 평 이천 농지에서 시작해 전쟁 같은 수율 작전과 부채의 터널을 지나 글로벌 시총 1조 달러의 인프라 기업이 되기까지, SK하이닉스의 드라마틱한 여정은 대한민국 제조업이 가야 할 '기술 축적과 혁신'의 이정표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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