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료기기 성장 조건②] '해외 성공→국내 입성'...'외산 선호'가 만든 역진입 구조

이재아 기자 2026. 6. 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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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료기기 수출 7조원' 시대에도…대형병원 여전히 외산 중심
가격보다 임상 데이터·유지보수·브랜드 신뢰가 구매 결정 좌우
"내수 레퍼런스 부족이 글로벌 진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편집자주] AI(인공지능)와 디지털 기술을 앞세운 K-의료기기는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산업의 화려한 성장세 뒤에는 허가 이후 멈춰선 혁신, 수출과 내수의 격차, 그리고 수익화에 대한 고민이 공존한다.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도 시장을 만들지 못하는 성장의 역설은 왜 반복되고 있을까. 본지는 'K의료기기 성장 조건' 시리즈를 통해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마주한 구조적 과제를 짚어보고 지속 가능한 성장 조건을 살펴본다.
디지털 의료기기 수출 역시 전년 대비 45.4%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런데 정작 업계 내부에서는 다른 고민이 나온다. 수출은 늘고 있는데 국내 대형병원 시장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출처=오픈AI]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이제 명실상부한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진단기기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초음파 장비와 치과용 임플란트, 디지털 의료기기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 규모만 놓고 보면 K-의료기기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 의미 있는 존재감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료기기 수출액은 7조1700억원을 기록했다. 디지털 의료기기 수출 역시 전년 대비 45.4%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런데 정작 업계 내부에서는 다른 고민이 나온다. 수출은 늘고 있는데 국내 대형병원 시장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산업 성장과 병원 현장 확산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검증 없이는 안 써"…의료기기 시장의 구조적 보수성

의료기기 시장은 일반 제조업과 구조가 다르다. 제품 성능이 우수하다고 해서 곧바로 시장 점유율로 연결되지 않는다. 병원은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 데이터와 유지보수 체계, 의료진 경험, 시스템 안정성까지 함께 구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의료기기는 단순 구매재가 아니라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의료 행위의 일부로 간주되기 때문에 의료사고 리스크와 보험 수가 적용 여부, 장비 교체에 따른 책임 부담까지 함께 고려되는 구조다.

특히 자기공명영상(MRI)와 컴퓨터단층촬영(CT), 혈관조영장비 같은 고가 장비 시장에서는 지멘스 헬시니어스, GE헬스케어, 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오랜 기간 구축한 레퍼런스(사업 수행 이력)를 바탕으로 강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장비 가격보다 안정성과 서비스 체계가 구매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병원업계 설명이다.
자기공명영상(MRI)와 컴퓨터단층촬영(CT), 혈관조영장비 같은 고가 장비 시장에서는 지멘스 헬시니어스, GE헬스케어, 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오랜 기간 구축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강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이들 글로벌 기업은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 전 세계 병원에 구축된 설치 기반(installed base), 표준화된 임상 프로토콜, 24시간 서비스 네트워크, 의료진 교육 체계까지 포함한 통합 의료 시스템을 제공하며 시장을 형성해왔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고가 장비는 한 번 도입하면 수년 이상 사용하기 때문에 단순 가격 경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며 "유지보수와 교육, 임상 경험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검증된 브랜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레퍼런스가 해외 경쟁력 좌우"…역진입 고착화

이로 인해 의료기기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내수 시장 문제가 해외 경쟁력과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국내 상급종합병원 도입 사례는 해외 시장에서 중요한 신뢰 지표로 활용된다. 반대로 국내 레퍼런스가 부족하면 의료기기 입장에선 해외 영업 과정에서 설명해야 할 부분이 늘어난다.

특히 의료기기 산업에서는 '어디에서 먼저 쓰였는가'가 기술 성능만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의 사용 경험 부족은 글로벌 시장 진입 시 검증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료기기 산업에서는 '어디에서 먼저 쓰였는가'가 기술 성능만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의 사용 경험 부족은 글로벌 시장 진입 시 검증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출처=픽사베이]

결국 일부 기업들은 할 수 없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성과를 입증한 뒤 이를 기반으로 다시 국내 병원을 공략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한 기술이 해외에서 먼저 검증을 받은 뒤 국내로 역진입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기업의 전략 선택이라기보다, 국내 시장에서 초기 도입 이후 확산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상대적으로 좁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적 현상으로 해석된다.

업계 전문가는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이미 수출 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산업의 다음 단계는 수출 실적 자체가 아니라 국내 의료현장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활용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이 시장이 말하는 내수 딜레마 역시 단순 점유율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과 연결된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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