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라면 먹으며 버텼다...K9 이집트 '2조' 수출의 주역은

세계가 선택한 명품 자주포 K9 <2>
K-방산의 역사를 돌아보면 유독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단순한 무기 수출이나 방산 협력을 넘어, 국가 전략과 산업, 외교와 안보, 그리고 현장의 사람들까지 하나로 움직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순간들이다. 필자에게 K9 자주포의 이집트 수출은 바로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20년 12월 말, 필자는 방위사업청 내부 직원 출신으로는 최초로 방사청장에 임명되었다. 당시 방사청은 오랜 시간 방산비리 낙인에 시달렸고, 각종 수사·감사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실무자들조차 언제든 감사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부 출신 청장의 등장은 직원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으리라.
방사청장 임명 후 제시한 도전적 목표 "방산 세계 5위권 진입"
방사청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축적의 시간이기도 했다. 2006년 방사청 개청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혹독한 감사와 수사를 거치며 방산 분야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투명성·전문성과 사업관리 역량이 축적되고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방산기업, 방사청의 사업관리·정책 부서 모두가 오랜 시간 현장에서 부딪히며 내공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한번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직 내부에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필자는 청장 취임 이후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조직 전체의 방향은 청장이 제시하되 실행 방법은 현장의 집단지성을 통해 찾는다. 둘째, 중요한 의사결정은 청장이 책임진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실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다. 셋째, 성과를 낸 직원은 반드시 보상한다. 30여 년 공직생활 동안 현장에서 얻은 결론이었다. 결국 강한 조직은 몇몇 뛰어난 사람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집단지성이 움직이는 조직이었다.

취임 직후 필자가 제시한 슬로건은 ‘방위산업 일등 전략’이었다. 그리고 매우 도전적인 목표를 던졌다. 향후 5년 이내 방산 기술력과 수출 경쟁력에서 세계 5위권에 진입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방산은 기술 수준 세계 11~12위권, 수출 규모는 16~17위권 정도로 평가받고 있었다. 대부분 무리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필자는 K9 자주포 개발 주역인 고 김동수 박사의 ‘항아리론’을 원용하였다. 방산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기술·생산 부문에서 실패와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항아리가 가득 차오르면 작은 계기 하나만으로도 폭발적인 성과가 나온다. 2021년 초의 K-방산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2021년 2월 실무자들까지 참여한 부서별 실행 전략 보고가 이어졌다. 보고서마다 자기 분야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기 위한 창조적이면서도 실행 가능한 전략들이 담겨 있었다. 단순한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 방위산업의 장단점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향후 조치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그 보고를 들으며 필자는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K-방산이라는 항아리에는 이미 기술력과 제조 역량, 사업관리 경험이 차고 넘칠 만큼 축적되어 있었다. 수많은 시련 속에서 다져진 힘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행동이었다.

연간 수출액 100억 달러 목표 잡자, 내부에서도 "40억 달러도 쉽지 않다" 우려
곧바로 움직였다. 우선 방산 기술력 강화를 위해 전력 첨단화와 미래기술 개발 예산 확대를 추진했다.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 개발에 도전하고, 민간 부문의 앞선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정교하게 손보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예산 확보 등 필요한 조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방산 수출 목표를 수주액 기준 100억 달러로 제시했다. 당시 연평균 방산 수출액은 약 28억 달러 수준이었다. 방사청 내부에선 “40억 달러만 달성해도 대단한 성과”라는 우려 섞인 말이 나올 정도였다. 국방 연구기관에서도 향후 10년 내 40억 달러 수출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필자는 30여 년간 지켜본 현장에서 축적된 K-방산의 힘을 믿었다. 2021년 3월부터 약 두 달 동안 ADD와 방산기업들을 직접 방문해 수출 목표를 공유했다. 연구실과 시험장, 방산업체 생산라인을 돌아 보면서 방산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견고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 방산은 이미 기술적 도약대 위에 서 있었다.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자신감과 전략, 그리고 국가 차원의 총력 지원이었다.
이를 위해 방산 협력 시스템에 변화를 줬다. 외교부 출신 인사를 방사청 국제협력국장으로 영입했고, 대신 방사청에서는 해외 공관에 방산협력관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해외 공관을 단순 외교 거점이 아니라 방산 수출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조치였다. 국제협력국은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국 공관에서 올라오는 정보와 아이디어를 종합해 국가별 수출 전략을 정교화했고, 주말에는 방사청·ADD·방산업체가 함께 참여하는 집중 토론이 이어졌다.
윈-윈 협력 전략의 첫 시험대...K9 자주포의 이집트 수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립된 것이 '윈-윈 협력 전략'이었다. 방산 수출은 단순히 무기만 판매해선 될 일이 아니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장기적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윈-윈 협력 전략’의 첫 적용대가 K9 자주포의 이집트 수출 사업이었다.
2021년 5월 필자는 첫 번째 이집트 출장길에 올랐다.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현지에서 한화디펜스 수출 담당 임직원들과 새벽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오늘부터 이집트와의 실무 협의에는 반드시 업체 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협상 과정을 직접 보고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당시만 해도 정부와 기업이 이처럼 밀착해 움직이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방산 수출은 현장에서 정부와 기업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국제협력국장에게는 독일과 프랑스가 이집트에 제시한 조건과 그들의 장단점을 다시 정밀하게 파악해 보고해달라고 지시했다. 당시 우리의 경쟁국은 독일과 프랑스였다.
정부와 기업 '원팀'으로 진행한 수출 협상
필자는 이집트 국방부 장관과 방산물자부 장관 등 최고위직들과 면담을 가졌고, 계약을 담당하는 전략총국장과 이집트 군의 장성급 인사 10여 명의 합동 회의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실무회의에는 한화디펜스, 현대 로템 등 우리 방산기업 관계자들도 함께 참석하도록 했다. K9 자주포 뿐 아니라 향후 K2 전차 협력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조치였다.
첫 실무 회의부터 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이집트 측에서는 에잣 오사마 전력총국장을 비롯한 장성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우리 측에서는 필자가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통상 방사청장은 고위급 면담만 하고 실무 협상에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회의는 4시간 넘게 이어졌다. 정부 차원에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필자가 직접 답했고, 기술과 가격, 생산 관련 사항은 기업 측이 설명한 뒤 다시 정부 차원에서 보증하는 방식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이집트 측의 진짜 관심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순히 K9 자주포를 구매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K9 자주포 도입을 계기로 자국 생산시설을 다시 가동시키고 싶어 했다.
단순한 무기 구매가 아니라 산업 재건을 원했던 이집트
카이로 외곽의 ‘팩토리 100’과 ‘팩토리 200’은 과거 미국 M계열 전차를 생산하던 거대한 시설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실상 가동이 멈춰선 상태였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과 독일·프랑스의 접근 방식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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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의 결정적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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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방위사업청 20주년...'K방산'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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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세계가 선택한 명품 자주포 K9
강은호 전북대 교수(전 방위사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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