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흑염룡이 깨어났다 ‘처음 보는 나’[퇴근 후, 만나요]

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 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지난주엔 사흘 연속 풋살을 했다. 다음날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을 것 같아 연차를 냈다. 이 사실을 팀원에게 말했더니 돌아온 말. “그거…뭔가 바뀐 거 아냐?”
2년 전까지는 잔디 위에서 공을 차는 내 모습을 상상도 못 했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도 싫고, 승부에 연연하기도 싫었다. “풋살장에 한 번만 나와보라”는 회사 풋살팀 선배의 제안을 거듭 거절했다. 대신 요가원에서 혼자만의 수련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새 매트라는 영역 안에서 혼자 움직이던 내가 풋살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뛰고 있다. 언제 누구한테 부딪혔는지 모르는 멍이 항상 들어있다. 요가 수련이 끝나면 옆 사람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나마스떼’ 인사를 건넸는데, 이제는 팀원들에게 “수비 비었잖아!” “헤이!(나 여기 있어!)”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이런 내가 낯설다.

이 모든 것은 한 영상에서 시작됐다. 2024년 초여름, ‘기자협회 여성 풋살대회 동영상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사내 게시판에 올라왔다. 한국기자협회 여성 풋살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했던 사내 풋살팀을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 속 경향신문 풋살팀 ‘KHFS’은 치열한 훈련 끝에 1차전에서 강호 연합뉴스를 만나 3대0으로 패한다. 선후배들이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탈한 표정, 분한 표정, 억울한 표정…몇몇은 눈물을 흘렸다. 궁금했다. 대체 풋살이 뭐길래.
그해 가을, 못 이기는 척 풋살 연습에 나갔다. 패스 하나, 볼 컨트롤 하나 제대로 했을 리 없다. 지레 포기할 만도 한데, 질투와 오기가 들어섰다. 그날로 풋살 강습에 등록했다. 주말 아침엔 회사 풋살팀 연습에 나가고, 평일 저녁엔 풋살 강습을 들었다. 초보의 장점은 더 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빠질 실력이 없으므로.

그간 해온 요가, 등산, 러닝 같은 운동과 풋살은 너무 달랐다. 시끄럽고 거칠었다. 나 여기 있으니 패스를 달라고, 수비가 없으니 좀 도와달라고 외쳐야 했다. 수비를 지나쳐 원하는 방향으로 전진하기 위해, 전진하려는 상대 선수를 막기 위해 몸싸움도 해야 했다.
결계를 친 것처럼 서로 몸이 닿지 않으려 노력하는 초보 강습생들에게 하루는 코치님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미는 연습을 시켰다. 풋살장에서는 서로 큰 소리로 ‘콜’을 하며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알려줬다. 이상하게도 시도할 때마다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 뒤로 드리블·패스·킥 실력보다 몸싸움과 소리 지르기 능력이 빠르게 성장했다.

우악스럽고 요란하게 풋살을 하고 있다. 깨어난 지 얼마 안 돼 사회화가 덜 된 승부욕이 마구 날뛴다. 풋살장을 나서면서부터 반성한다. 아까 너무 험하게 말해서 죄송해요. 아까 부딪힌 데 괜찮으세요? 매번 나를 용서해주는 팀원들 덕분에 이번 주말에도 공을 찬다.
지난해 경향신문은 기자협회 풋살대회에 다시 출전했고, 앞선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거둔 뉴스1을 1차전 상대로 만나 2대0으로 졌다. 올해 봄에는 첫 출전인 파이낸셜뉴스를 만나 2대0으로 승리했다. 이날 뒤풀이에서 나도 울었다.
개미
정책사회부 기자. 풋살하다 ENTP가 된 (구)INFP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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