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 피우기 시작한 담배가 평생 장 건강 위협한다
치주염,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주요 원인
산모 흡연이 자녀 자폐·ADHD 가능성 ↑
"혼자 금연 힘들 땐 병원 도움받으세요"

“아이와 공원에서 축구하다 금세 숨이 차 주저앉았어요. 초등학생인 아이는 멀쩡한데 저는 가슴이 답답하고 기침까지 나더군요. 아이가 ‘아빠는 왜 이렇게 체력이 약해?’라고 묻는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담뱃갑을 버렸어요.”
10년 넘게 담배를 피워온 공무원 김모(44)씨는 최근 금연을 결심했다. 건강검진에서 폐 기능 저하 소견을 받은 데다, 일상생활에서도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흡연은 폐암의 대표적인 원인이지만, 실제 피해는 그보다 훨씬 넓다.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담배 연기에는 화학물질 7,000종 이상과 발암물질 수십 종이 포함돼 있어 폐뿐 아니라 심장과 혈관, 뇌, 위장관 등 인체 거의 모든 장기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5월 31일을 '세계 금연의 날'로 지정하고 흡연의 해로움과 금연의 중요성 알리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흡연의 악영향은 구강 건강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담배 속 니코틴과 타르 성분은 구취와 치아 변색을 일으키고 치석이 쌓이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2023년 국제학술지 연구에 따르면 흡연은 치주염 발생 위험을 85% 높인다. 치주염은 치아 주위 조직의 염증 때문에 잇몸과 치아를 지지해 주는 뼈(치조골)가 파괴되는 질환으로, 치아 상실의 주요 원인이다.
'침묵의 장기'라 불리는 간도 담배의 독성을 피할 수 없다. 조현 순천향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성인 남성 1만2,241명을 분석한 결과, 과거 담배를 피운 사람은 비흡연자보다 비알코올성 지방간 발생 위험이 평균 1.19배 높았다. 하루에 한 갑씩 10년 넘게 피운 사람은 비흡연자보다 비알코올성 지방간 발병 가능성이 약 1.29배 컸다. 알코올성과 비알코올성으로 구분되는 지방간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간부전, 간암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른 나이에 시작한 흡연은 평생의 장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윤혁, 전유경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연구팀이 국내 건강검진을 받은 650만 명 이상을 분석한 결과, 20세 이전에 흡연을 시작한 사람은 비흡연자보다 궤양성 대장염 발병 위험이 약 2배 높았다. 20~24세에 흡연을 시작한 경우에는 1.73배, 25~29세에 시작한 이들은 1.68배 발병 위험이 컸다.
가장 치명적인 건 흡연의 폐해가 당사자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대물림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문영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2009~2018년 출생한 아이 중 86만1,876쌍의 모자(母子)를 분석한 결과다. 연구팀은 출산 전 2년 이내 건강검진 자료로 산모를 비흡연군과 과거 흡연군, 현재 흡연군으로 나눈 뒤 자녀의 신경발달장애 발생 여부를 평균 8년 이상 추적 관찰했다.
그랬더니 현재 흡연군으로 분류된 산모의 자녀는 비흡연군 산모 자녀보다 자폐스펙트럼장애(ASD) 발생 위험이 52% 높았다. 지적장애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가능성도 각 44%, 35% 컸다. 과거 흡연군 자녀 역시 ASD 위험이 29% 높았다. 장 교수는 “적은 양의 흡연 이력만으로도 자녀의 신경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진 만큼 임신 전 단계부터 금연할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흡연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천식 악화, 위궤양, 골다공증, 성기능 장애 등 다양한 질환과 연관돼 있다. 김 교수는 “흡연은 폐암 외에도 후두암과 식도암, 췌장암 등 각종 암 발생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심뇌혈관질환 위험도 증가시킨다”며 “니코틴 의존도가 높은 경우 혼자 힘으로 금연에 성공하기 쉽지 않은 만큼 금연클리닉이나 전문 진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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