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값 두 배 뛰고 공급까지 막혔다”…중소기업 덮친 중동발 공급망 쇼크
재고 1개월도 못 버티는 기업 36.1%…“대기업 일방 인상에 생산 차질 우려”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이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포장재·플라스틱 등 기초 소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식품·생활용품 등 전방 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5월 15일부터 31일까지 원부자재를 수급 중인 중소기업 41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동 관련 중소기업 원부자재 수급 애로 설문조사’ 결과를 2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석유화학 원료, 비철금속, 건설·토목자재, 전기·전자부품 소재 등을 사용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중동 정세 이후 생산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는 ‘원가 부담 증가’가 94.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원부자재 물량 부족’도 80.7%에 달해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원부자재 가격 상승 폭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기업들의 71.9%는 올해 2월 말 대비 주요 원부자재 매입단가가 20% 이상 상승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포장재·필름·종이 사용 기업군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해당 업종 기업 가운데 31.4%는 관련 원부자재 가격이 80% 이상 폭등했다고 답해 전체 평균(15.1%)을 크게 웃돌았다.
재고 상황도 불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기업의 65.9%는 현재 보유 재고가 평상시 적정 수준의 70% 미만이라고 답했다. 또 현재 재고로 버틸 수 있는 기간에 대해서는 36.1%가 ‘1개월 미만’이라고 응답해 공급 차질 장기화 시 생산 중단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중동 정세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대응 계획으로는 ‘조업 축소’가 39.8%에 달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기타’ 응답 기업 가운데 대부분이 사실상 별다른 대응책이 없다고 답한 점이다.
‘기타’를 선택한 222개사 중 204개사는 ‘별도 계획 없음’이라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 기업의 절반에 가까운 49.7%가 중동발 공급망 위기에 대한 뚜렷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셈이다.
현장에서는 대기업 공급사의 일방적인 가격 인상과 공급 제한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필름·포장재 제조업체 관계자는 “대기업 공급사들이 구체적인 산정 기준이나 사전 협의 없이 가격 인상을 통보하고 있다”며 “LLDPE 등 일부 원료 가격은 톤당 150만원 수준에서 28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금력이 부족한 영세 중소기업들은 원료 확보 경쟁에서 밀리면서 생산 차질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 요구도 이어졌다. 중소기업들은 원부자재 수급 안정을 위해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 ‘원부자재 가격 및 공급상황 모니터링 강화’(30.0%)를 꼽았다.
이어 △납품단가 조정 및 납품대금 연동제 활용 지원(23.7%) △대체 원부자재 및 수입처 발굴 지원(17.3%)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12.4%) 등이 뒤를 이었다.
김희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동발 공급망 충격 속에서 대기업 공급사의 일방적인 가격 인상과 공급 제한으로 중소기업들이 생산 차질과 자금난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포장재와 플라스틱 등 기초 원부자재 공급 차질은 식품·생활용품 등 전방 산업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가격 결정 구조와 공급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공급 안정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가 집계한 중동전쟁 관련 중소기업 피해·애로 접수 건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부터 5월 27일까지 접수된 피해·애로 사례는 총 866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실제 피해·애로 사례는 658건에 달했다.
주요 사례로는 건강차 제조업체의 포장재·테이프·본드 등 패키징 부자재 가격 급등, 운송 지연에 따른 계약 차질, 중동 바이어들의 주문 보류, 현지 출장 및 수출 계약 연기 등이 포함됐다.
화장품 제조업체의 경우 중동 바이어가 대외 불확실성을 이유로 신규 발주를 연기했고, 중고차 수출업체는 두바이 출장과 바이어 방한 일정이 모두 취소되면서 수출 계약 자체가 미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욱 기자 east@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