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의 고상한 인터뷰] 청년들은 정말 ‘정치’에 관심 없을까

박지윤 2026. 6. 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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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윤의 고상한 인터뷰]

‘박지윤의 고상한 인터뷰’는 수준이 높고 품격 있다는 뜻의 ‘고상(高尙)하다’와 ‘고민 상담’ 인터뷰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기획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하나의 ‘고민’으로 바라보고 인터뷰를 통해 그 속 이야기를 차분히 짚어본다.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1일 춘천의 한 마을회관에서 시민들이 선거 공보물을 살펴보고 있다. 방도겸 기자

정치인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돼 있다. 투입 대비 산출을 따질 수밖에 없는 정치 현실에서 20대 유권자는 종종 후순위로 밀려난다.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절벽 속에서 20대가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기성세대보다 낮다는 이유에서다. ‘머릿수’가 부족해 표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은 청년을 정책의 사각지대로 내몬다. 정치를 ‘그들만의 세상’으로 여기는 청년부터,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삶과 안위를 기준으로 정치적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한 청년까지. 20대 유권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 춘천의 한 아파트 단지 우편함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안내문 및 선거공보물이 꽂혀 있다. 방도겸 기자

■ ‘자발적 무관심’인가, ‘타의적 소외’인가

원주에 거주하는 직장인 권 모(25) 씨에게 선거는 ‘출근 안 하는 반가운 휴일’로 먼저 다가온다. 지지 정당도 없고 정치는 ‘그사세(그들만의 세상)’ 같다는 권 씨는 “누구를 뽑아도 내 삶에 영향이 없다고 느낀다”며 무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 권 씨에게도 바라는 정치는 분명했다. 어떤 후보가 반드시 지켜줬으면 하는 공약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원주시 교통 개선과 문화시설 확충”을 꼽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을지언정 지역 청년으로서 체감하는 현실의 불편과 부족함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동시에 권 씨는 “정치는 입문하는 것부터 알아가는 과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원하는 정책은 곧바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삶의 요구는 분명하지만, 그 요구를 실현하는 정치의 문턱은 청년들에게 여전히 높고 낯설다. 청년들이 정치를 어렵고 먼 이야기로 느끼지 않도록 눈높이에 맞춘 소통의 장을 넓히는 것 역시 정치의 책임이다. 결국 사회를 바꾸고 삶을 개선하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 정치라는 사실을 권 씨의 솔직한 답변이 보여준다.

지역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더 나은 교통과 문화, 안정적인 일자리와 정주 여건 속에서 지금 사는 지역에 계속 머물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곧 ‘이 지역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치인은 선거철에만 청년을 찾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 속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청년들의 숨은 요구를 발견하고 정책으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정치와 지방정부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다.
 
▲ 고유가 피해지원금 2차 지급이 시작된 5월 18일 춘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지원금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호 기자

■ 절망이 낳은 ‘의도적 무관심’

반면, 의도적으로 정치에 무관심을 택한 20대 청년도 있다. 강원도민 김 모(25) 씨는 최근 선거판을 보며 지독한 허탈감에 빠졌다.

김 씨는 “이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표를 얻기 위해 지원금이나 지역화폐 같은 1차원적인 돈풀기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내일부터 출산율이 2명대로 반등한다 해도 그 아이들이 자라 세금을 내기 전까지 수십 년간 축적된 부채와 화폐가치 하락, 부동산 버블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것은 결국 지금의 2030 세대”라며 “나라의 미래보다 당장의 표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을 보며 결국 기대를 접고 포기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김 씨가 정치를 외면하기로 한 것은 정치권을 향한 깊은 절망의 결과다. 머릿수가 적은 2030 세대의 표 계산은 정치권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뒷전이었다. 반면 정치권이 남긴 부채와 책임은 청년들에게 가중되는 모순적인 구조 앞에서 끝내 정치에 등을 돌리는 선택을 하고 있다.

청년들의 의도적 무관심은 단순한 기피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가 전무한 정치권을 향해 던지는 가장 차갑고 무거운 침묵의 저항인 셈이다.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월 29일 춘천시 신북읍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에 앞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서영

■ 선거는 곧 내 삶을 바꿀 ‘기회’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관심에서 점차 내 삶을 지키기 위한 주체적 실리주의로 진화하는 과도기에 놓여있는 청년도 있다. 춘천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송 모(24) 씨는 “정치에 관심이 크게 없는 사람으로서 부모님의 정치 성향을 따라가게 된다”고 전했다. 다만 “예전에는 수동적이었다면 요즘은 선거를 ‘내 생활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 씨는 “청년 적금과 같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약들을 우선시하고 싶다가도 막상 뽑고 나면 현실적으로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아 망설여진다”며 “그럼에도 서민들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나아지게 할 정책을 내놓는 후보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기성세대의 정치 성향을 복사하던 표심이 ‘나만의 기준’을 정립해가는 실리주의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6·3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인 5월 21일 춘천 만천리에서 관계자들이 선거벽보를 게시하고 있다. 방도겸 기자

■ 반쪽짜리 효능감

청년들이 선거를 ‘내 삶의 개선 기회’로 보기 시작한 배경에는 지방정부가 주는 특유의 효능감이 자리 잡고 있다. 춘천 시민 안 모(26) 씨는 과거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한 생활 민원이 지역 시청에 의해 수락되고 해결됐던 경험을 언급했다. 안 씨는 “타 지역에 거주하던 시기에 계곡 불법 설치 평상을 신고했고 해당 민원이 수락됐다”면서 “지방행정이야말로 내 삶에 가장 피부에 와닿는 정치라는 것을 몸소 체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처럼 행정의 강력한 효능감을 경험한 안 씨는 지방의회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방의회는 왜 존재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감시하는 일밖에 없는 것 같다”며 뼈아픈 무용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권 씨가 갈망한 교통 개선이나, 송 씨가 기대하는 청년 적금 신설처럼 막대한 재정이 지속해서 투입되는 대형 공약들은 결코 지방자치단체장의 독단적인 권한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 법적 근거가 되는 조례를 제정하고 수십·수백억 원에 달하는 예산안을 최종 심의·확정하는 결정적인 열쇠는 결국 지방의회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년들의 시야에서 의회가 철저히 소외돼 있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지방의회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청년들에게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소통하지 않는다면 20대의 정치 불신과 무용론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월 29일 양구읍 사전투표소가 마련된 양구문화복지센터에서 21사단 장병들이 투표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박재혁 기자

■ 미래 세대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20대 유권자들은 더 이상 ‘철없는 무관심 세대’가 아니다.

원하는 정책을 묻자마자 교통 개선, 청년 적금, 문화 시설을 단숨에 꼽아낸 청년들의 목소리는 내 삶에 밀착된 진짜 정치를 향한 갈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동시에 눈앞의 표를 위해 나라의 미래를 허무는 포퓰리즘 공세를 매서운 눈으로 주시하며 정치를 매섭게 심판하고 있기도 하다.

청년 유권자들은 내가 이 지역에서, 이 나라에서 안전하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정치를 원하고 있다. 당장의 표를 위해 미래 세대에게 무거운 빚과 부담을 지우지 않는 ‘지속 가능한 책임 정치’를 보여줘야 할 때다.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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