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해독·낙지 원기회복, 한국은 藥食同源… 프랑스 와인 스파·체코 맥주 목욕 등도 유사한 전통[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2026. 6. 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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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식탁에서 화장대로
국내 식당에 걸려 있는 각종 음식 효능 안내판. 자료 사진

음식점 벽에 걸려 있는 각종 식품 효능 안내판,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꽤 흥미로운 발견인 모양이다. 얼마 전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 친구와 식당에 갔을 때, 그는 벽에 붙은 효능 안내판을 보며 “한국 사람들은 기능을 중시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각종 영양소를 알약으로 챙겨 먹는, 기능적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국인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은 기능적이라기보다 지극히 효율적인 게 아닐까? 음식 하나에 영양과 치유, 미용을 한 번에 담아내려 하니 말이다.

많은 식당에서 효능을 설명하는 메뉴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나리는 해독 작용” “낙지는 원기 회복” “추어탕은 기력 보충”. 심지어 술병에도 효능이 적혀 있다. 한국 식당은 음식의 맛만 설명하지 않는다. 무엇이 몸에 좋은지, 몸을 어떻게 회복시키는지를 함께 이야기한다. 음식은 단순한 칼로리 공급원이 아니라 몸의 상태를 조율하는 존재다.

이런 문화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중국 광둥의 약선 식당에서는 메뉴 자체가 작은 한의학 사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사고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금도 일상 속에 뿌리내려져 있다.

인도에서는 아예 의학 자체가 음식에서 출발한다. 수천 년 전통의 아유르베다 식당에서는 음식과 의학의 경계가 더욱 흐려진다. 강황과 생강, 향신료는 요리 재료이면서 동시에 몸의 균형을 조절하는 치유 수단이다. 특히 강황은 수천 년간 피부 치료제로 쓰여 왔고, 그 항염 효능은 전 세계 화장품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서양 역시 이 흐름에서 멀지 않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말로 널리 알려진 “음식을 약으로 삼고, 약을 음식으로 삼아라”는 격언과 클레오파트라가 우유 목욕으로 피부를 관리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음식을 몸의 회복과 아름다움에 연결하려는 믿음은 유럽의 웰니스 산업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와인 스파는 포도의 폴리페놀을 피부 관리와 연결하고, 체코의 맥주 스파는 홉과 효모를 활용한 목욕 체험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스페인의 올리브유와 그리스의 요거트(요구르트) 역시 건강한 피부와 몸의 균형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소비된다.

피부는 정직하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은 다음 날 얼굴에 바로 흔적을 남긴다. 피부는 신체 전반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인 셈이다. 뷰티 산업은 이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았다.

일본의 양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손이 유독 매끄럽다는 관찰에서 출발한 쌀 발효 성분은 고가의 화장품 병 속에 담겨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 두부 전문 기업이 대두의 이소플라본을 활용해 화장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연어에서 추출한 PDRN 성분까지 피부 재생 시장의 핵심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식탁 위의 재료들이 피부과학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장 안전하고 익숙한 대상인 음식에 투영해 왔다. “먹는 것이 그 사람을 말한다(You are what you eat)”는 표현처럼. 문화는 달라도 인간은 오래전부터 먹는 것에서 아름다움과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해왔다. 한국인이 음식에서 효능을 읽어내는 것도, 몸과 삶을 함께 돌보려는 생활의 지혜였는지 모른다. 그 세계관은 여전히 우리의 식탁과 화장대 위에 남아 있다. 주름이 부쩍 신경 쓰이는 요즘이다. 그래, 오늘 점심은 연어덮밥이다.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 한 스푼 더 - 먹는 화장품 ‘이너뷰티’

콜라겐 음료와 프로바이오틱스 캡슐, 강황 라테.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이 제품들은 먹는 화장품이라 불리는 ‘이너뷰티(inner beauty)’로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피부를 겉에서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으로 피부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개념이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트렌드라기보다 음식으로 몸을 돌봐 온 오래된 식탁의 철학이 현대 과학의 언어로 다시 돌아온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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