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은 왜 어릴 때 미술 학원을 다녔을까?

칼럼니스트 이연지 2026. 6. 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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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지의 문해력 미술로 여는 아이의 미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공통점

"미술 학원 다니면 공부 시간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요?"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대부분의 부모는 미술을 '정서 활동' 정도로 생각한다. 공부를 위한 시간 배분에서 우선순위가 밀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조사와 인터뷰를 살펴보면, 어린 시절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 교육을 장기간 경험한 비율이 일반 학생들보다 유독 높게 나타난다. 중요한 건 이들이 미대 입시를 준비했던 학생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대, 공대, 경영대, 법대에 진학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왜일까. 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유독 예술 경험이 많을까.

우리는 흔히 공부를 '지식의 양'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상위권 학생들의 차이는 암기량보다 '연결 능력'에서 나온다. ⓒ이연지

우리는 흔히 공부를 '지식의 양'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상위권 학생들의 차이는 암기량보다 '연결 능력'에서 나온다. 국어와 수학, 과학과 사회를 따로 배우는 것 같지만, 결국 공부는 서로 다른 정보를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는 힘이다. 그리고 이 연결 능력은 예술 활동 과정에서 강하게 자극된다. 2016년 하비비(Habibi) 교수 연구에서는 예술 훈련을 받은 아이들의 뇌 백질(White Matter)이 더 활성화되어 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백질은 쉽게 말해 뇌의 정보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영역이다.

즉, 예술 활동은 단순히 감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고 통합하는 뇌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같은 내용을 배워도 더 빨리 이해하고, 더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아이들. 공부 머리는 결국 여기서 갈린다.

흥미로운 건 이런 현상이 실제 학업 성취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미국 대학입시기관 College Board가 발표한 SAT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예술 교육을 4년 이상 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약 100점 높게 나타났다. 언어 영역과 수학 영역 모두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많은 부모는 "미술하면 공부 시간이 줄어든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예술 활동을 꾸준히 한 학생들이 문제 해결력과 사고 확장 능력에서 더 강한 결과를 보인 셈이다. 이는 단순히 IQ 문제가 아니다. 예술은 아이에게 '생각하는 방식'을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정답 없는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수학 문제는 정답이 하나지만, 미술에는 정답이 없다. 아이는 빈 종이 앞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구성하고 완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바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내 생각에도 가치가 있다."

이 감각은 단순한 자존감과 다르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드는 힘이다.

실제로 예술 참여 경험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학습 동기와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상위권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를 오래 붙들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끈기가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 본 경험의 축적일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문해력'이다. 요즘 교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능력이 아니다. 맥락을 읽고, 구조를 파악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힘이다.

그리고 미술은 본질적으로 '이미지 언어'를 읽는 활동이다. 한 장의 그림 안에는 작가의 시선, 시대 배경, 감정, 상징이 모두 담겨 있다. 아이들은 그림을 보며 의도를 추론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표현한다. 이 과정은 수능 국어 비문학 지문을 읽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꾸고, 이미지를 다시 논리로 변환하는 능력. 교육학에서는 이를 '이중 부호화(Dual Coding)'라고 부른다.

결국 미술은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AI 시대 핵심 역량인 시각적 문해력을 훈련하는 과정인 셈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미술을 "공부 잘하고 남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질문해야 한다. 왜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예술 경험이 반복적으로 발견되는가. 그 답은 단순하다. 미술은 그림 기술을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훈련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뇌를 연결하고, 질문하는 힘을 만들고, 자기 효능감을 키우고, 문해력을 확장하는 과정. AI가 그림은 대신 그려줄 수 있어도, 관찰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만드는 힘은 대신할 수 없다. 그래서 앞으로의 미술 교육은 "얼마나 예쁘게 그리느냐"보다, "아이의 사고가 얼마나 깊어졌느냐"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결국 미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고력이다. 그리고 그 사고력의 시작점에, 의외로 미술이 놓여 있다.

*칼럼니스트 이연지는 홍익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으며, 교육과 예술을 융합한 창의적 인재 양성에 주력해온 교육 전문가다. 2017년 9월부터 ㈜책읽는미술관 프랜차이즈 대표를 맡아 교육 콘텐츠 개발과 운영을 이끌어왔다. 현재 ㈜책읽는미술관 기업부설연구소를 운영하며 교육과 예술을 접목한 프로그램 연구에 힘써왔으며, ㈜인터불고 뮤즈랩 대표로도 활동해왔다. 또한 (사)한국휴먼이미지디자인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으로 학술 활동을 병행해왔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수상 작가로서 공공기관과 대기업 미술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예술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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