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제주-한국 향한 日 호스피스 의사의 진심
존엄한 죽음 위한 준비 “죽는 과정 아닌 편안한 삶 돕는 일”

생의 말기 환자들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가정 호스피스 의료. 30년은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 분야 일본 의사가 한국을 찾아 귀담아들을 만한 진심 어린 조언을 꺼냈다.
그에게 호스피스는 죽어가는 과정을 돕는 의료가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을 돕는 일'이었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초고령-다사(多死) 사회를 맞이한 일본은 생의 말 환자의 존엄한 죽음, 그리고 장기요양보험 제도인 개호보험 재원 고갈 위기 속에서 '호스피스'라는 해법을 찾았다.
우리나라도 필연적으로 겪게 될 문제를 앞서 헤쳐 나가고 있는 일본은 호스피스 의료를 통한 재택 임종 비율을 5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환자 자신이 살아온 편안한 공간인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생의 말, 막대한 병원비 지출을 줄여 환자와 가족, 국가 부담을 줄인다는 구상이다.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존중하기 위해 시작된 호스피스 제도는 이처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혜안으로도 떠올랐다. 그러나 제주는 가정형 단독 호스피스 의원을 운영 중인 의사가 1명뿐일 정도로 이제야 걸음마 단계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확대'를 천명한 호스피스 의료와 관련해 [제주의소리]는 90년대부터 일본에서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활동 중인 의사 나이토 이즈미(70) 선생을 서울에서 만났다.


"분명한 것은 집에서 생을 마무리하는 일은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다만, 재택 호스피스가 최고의 선택이라고 강요할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이를 이해하고 집에 있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이해해 주면 좋겠습니다. 아닌 경우 대부분 후회만 남게 되니까요."
나이토 선생이 '호스피스' 의료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22세 말기 암 환자를 돌볼 때였다. 환자에게 질병 이름도 잘 알려주지 않았던 시대, 나이토 선생은 집에서 지내겠느냐고 제안했고 이는 금기와도 같은 파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의사로서의 판단이 우선된 것이 아니었다. 죽기 전 집에 가서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고 싶다는 환자 본인의 생각에서 출발한 일이다. 나이토 선생은 환자의 신체적 통증을 완화하는 데 노력했고 환자는 100일간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며 가족 곁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100일간 삐삐를 들고 24시간 대기해야만 했던 일은 나이토 선생에게 무리였다. 이후 그는 결혼하며 영국 스코틀랜드로 이주했다. 하지만 운명처럼 그 무렵 꽃피운 호스피스 운동을 접하고 되려 호스피스에 대해 깊게 배우게 됐고 일본으로 돌아와 경험을 쏟았다.
그렇게 야마나시현 최초 가정 호스피스 의료를 시작한 나이토 선생은 고후시(市)를 중심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일본의 호스피스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간호사의 역할이 확대돼 있다. 간호사로만 구성된 독립적인 '방문 간호 스테이션'은 호스피스의 핵심이기도 하다.
스테이션 간호사들은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의사의 역할을 분담한다. 처음엔 우리나라처럼 역할이 제한적이었지만, 사회적 논의와 정책에 힘입어 확대됐다. 당연히 처방과 처치는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지만, 수평적 관계에서 환자 돌봄을 최우선한다.

고후시의 한 방문 간호 스테이션은 17명의 간호사가 연간 환자 200여명을 맡고 있다. 이곳의 간호사들은 연수를 받고 24시간 공백 없는 의료 및 종합 돌봄을 운영 중이다.
이때 방문 진료비는 약 10만원이며, 환자 부담은 9000원~2만원에 불과하다. 고비용 치료를 받으며 병실에 누워 있는 것보다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국내 통계에 따르면 환자의 사망 전 3개월에 전체 의료비의 약 40%가 쓰인다는 보고가 있을만큼 생의 말기 의료비 지출은 막대하다. 국제 연구에서도 임종 전 1년 이내 시기, 의료비 지출이 25~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나이토 선생은 "스테이션은 독립적으로 설립된 경우도 있고 병원이나 진료소에 소속된 경우도 있다. 방문간호사는 의사 지시에 따라 가정에 방문한다"며 "수시로 전화나 메일로 소통하며 환자의 변화가 생기면 즉시 지시가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또 돌봄 지원 정책이 충분하지 않다면 호스피스 제도 확대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본은 '의료·간호', '돌봄·재활', '예방·보건', '생활지원·복지서비스', '주거와 생활방식'이라는 다섯가지 요소로 구성된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가정 호스피스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의 역할과 부담을 덜어내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토록 받쳐주는 것이다. 호스피스는 물론 통합 돌봄 제도를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나아가 제주도가 눈여겨 볼만 한 정책 사례다.


우리나라는 올해 3월에서야 통합돌봄제도를 시행했다. 노인과 장애인이 살던 곳에서 의료나 요양,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로 한국 복지정책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예산 부족과 인력난은 물론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혼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나이토 선생은 "일본의 경험으로 볼 때 지역의 소규모 호스피스 의원이 역할을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건강보험을 통해 지급하는 진료 보수(수가)를 높이는 동시에 환자 부담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 방법과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돌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방문간호사를 양성하고 방문 간호 스테이션을 도입, 확대하는 일도 중요하다"며 "일본은 간병인 제도가 없이 간호사가 모든 역할을 수행한다. 돌봄 역시 의료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생명의 주인공인 환자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가족과 대화한 뒤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재택 케어에서 중요한 것은 삶의 공간 속에 머문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본인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함께 발견해 나가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가정 호스피스 실패 확률을 묻는 질문에 "5% 남짓"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는 가족이 절대적으로 반대하거나 가정에서 도저히 치료받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를 때라고 설명했다. 즉, 환자 본인의 선택과 가족의 존중만 있다면 선택을 되돌일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나이토 선생은 "환자가 집으로 돌아가면 암 때문에 죽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일상에서 에너지로 가득찬 삶을 살게 된다"며 "가족들은 환자 곁에서 시간을 보내며 마지막까지 추억을 쌓게 되고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고통보다 긍지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제도 확대에 대해서는 "가장 힘이 되는 것은 간호사다. 의사와 간호사가 평등한 관계에서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의료 수가를 올리는 일도 필요하다. 의사들을 바꾸기 위해 일본 정부는 여기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에서 단독 가정형 호스피스 의원을 운영 중인 황지현 메디오름가정의학과 원장의 사연을 소개하자 나이토 선생은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관련 기사 = "나는 차가운 병상이 아니라 내가 살던 집에서 죽고 싶습니다" 등 4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