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in 태국]⑥"한류만 믿었는데"…K뷰티, 의외로 부진한 이유
인지도는 높은데 성과는 부진
시장 이해와 현지화가 숙제

[방콕=김다이 기자] 태국은 동남아 뷰티 시장의 중심지로 꼽혀왔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높은 문화적 특성과 발달한 성형·미용 산업을 기반으로 화장품 시장도 함께 성장했다. 최근에는 태국 로컬 브랜드들이 주변 국가로 진출하며 영향력을 확대하는 등 자체적인 뷰티 생태계도 형성되고 있다.
방콕 시내 쇼핑몰을 둘러보면 한국 화장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K팝과 K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화장품은 이미 태국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존재가 됐다. 주요 한국 브랜드 대부분이 태국에 진출해 있을 정도로 인지도도 높다. 하지만 브랜드별 시장 영향력만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부 브랜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커지는 태국 뷰티시장
태국은 동남아시아 대표 뷰티 시장으로 꼽힌다. 특히 스킨케어 중심의 시장 구조와 빠르게 성장하는 색조 시장이 특징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태국 스킨케어 시장은 2024년 1004억 바트(약 4조6200억원)에서 2025년 1099억 바트(약 5조1000억원)로 약 9% 성장했다. 같은 기간 색조 화장품 시장은 306억 바트(약 1조4100억원)에서 347억 바트(약 1조6000억원)로 확대되며 1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태국 소비자들은 피부 건강과 기능성 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안티에이징과 자외선 차단은 물론 피부 진정과 민감성 케어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온다습한 기후와 미세먼지 문제로 피부 트러블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한류 영향도 여전하다. 한국 화장품은 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피부를 매끄럽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태국 가계 소득 증가와 함께 프리미엄 화장품 수요가 늘면서 K뷰티에 대한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무역 통계 플랫폼인 글로벌 트레이드 아틀라스(Global Trade Atlas)에 따르면 2024년 태국 화장품 수입시장에서 한국은 1억2709만달러(약 1770억원)를 기록하며 점유율 19.02%로 1위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16.0%로 전체 시장 성장률(14.5%)을 웃돌았다. 주요 경쟁국인 프랑스가 감소세를 보인 것과 달리 한국은 3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며 점유율을 확대했다.
브랜드는 유명한데
태국 시장에서 K뷰티의 인지도는 높지만 문제는 실제 판매 성과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이다. 태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한 뷰티업계 관계자는 "현지에서 K뷰티는 인기가 많다. 웬만한 브랜드는 대부분 들어와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작 잘되고 있느냐고 물으면 물음표가 붙는 브랜드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원인으로는 태국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낮은 전략적 관심도가 꼽힌다. 초기 한류 열풍에 힘입어 높은 기대 속에 시장에 진출했지만, 현지 시장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업을 전개하는 브랜드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태국은 유통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시장이다. 소비자 접점 대부분을 리테일러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뷰티 시장은 이브앤보이, 뷰트리움, 왓슨스 등 대형 리테일러가 주도하고 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입점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입점 이후에도 치열한 막대한 수수료와 판촉 경쟁을 감당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태국 유통 시장은 한국보다도 리테일러의 힘이 훨씬 강하다"며 "시장 지배력이 워낙 강해 브랜드가 협상력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브랜드 입장에서는 100억원 이상 판매를 기대하고 진출했는데 실제 매출은 30억~50억원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며 "유통사 역시 기대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해당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밀어줄 유인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제품 현지화도 숙제다. 기초의 경우 한국 시장과 큰 차이가 없지만 색조는 다르다. 색조 화장품은 태국 소비자의 다양한 피부 톤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시장에서 인기를 끈 색상과 제품 구성이 현지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현지 맞춤형 제품을 새롭게 개발하더라도 진열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반품 조건이 거의 없는 유통 구조 역시 브랜드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국내 K뷰티 브랜드들의 전략적 우선순위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주요 브랜드들은 미국과 일본, 유럽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들 시장에서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에는 대규모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는 반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를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한계가 있다"며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언어와 문화, 소비 성향이 모두 다른 시장인데 이를 하나로 묶어 접근하다 보니 현지화 전략도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뷰티는 여전히 '워너비'
결국 K뷰티가 태국 시장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접근 방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단순히 한국에서 성공한 제품을 수출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현지 생산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 강력한 유통 파트너와의 협업, 세븐일레븐 등 생활 밀착형 채널 공략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태국에는 1만4000개가 넘는 세븐일레븐 매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소용량 패키지 화장품 시장도 발달해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브랜드들은 제품만 좋으면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K뷰티에 대한 선망은 여전히 강하지만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태국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수십 년 동안 경쟁해 온 시장이고 마케팅과 유통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성과가 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업계는 K뷰티의 경쟁력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뷰티 산업의 본질은 '워너비(Wannabe)'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뷰티가 잘되려면 결국 따라 하고 싶은 대상이 있어야 한다"며 "K팝 아이돌과 한국 배우들이 가진 아름다운 이미지 자체가 K뷰티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태국 소비자들이 K뷰티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제품 기능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 여성들의 피부와 스타일을 닮고 싶다는 선망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문화적 경쟁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다이 (neverdi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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