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대신 선작지왓 오르는 이유 [6월의 산악사진]

산악사진가 정현석 2026. 6. 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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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6월 6일이면 관성처럼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제주는 누군가에겐 휴식의 공간이겠지만 사진가인 내게는 일 년을 기다려온 '분홍빛 성지'와 조우하는 결전의 무대다. 목적지는 한라산 영실 코스를 지나 마주하는 천상의 화원, 선작지왓이다.

흔히 한라산 철쭉이라 하면 화구벽을 휘감는 역동적인 운해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자연은 늘 사진가의 예상 너머에 더 큰 선물을 준비해 둔다. 이번 산행에서는 화구벽을 가리는 자욱한 안개 대신,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촘촘히 박힌 새털구름이 맞이했다.

해발 1,600고지 윗세오름을 향해 오르다 마주한 풍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한라산 화구벽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고, 그 위로 흐르는 새털구름은 마치 화구벽의 위용을 찬양하듯 부드러운 리듬감을 더하고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선작지왓의 주인공인 한라산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융단을 이룬다. 모진 바람을 견디기 위해 바짝 몸을 낮춘 채 피어난 분홍빛 꽃송이들은, 광각 렌즈의 프레임 안에서 푸른 하늘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화구벽의 단단한 질감과 새털구름의 부드러움, 그리고 철쭉의 연약한 듯 강인한 생명력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운해가 없어도 충분히 뭉클한 순간이다. 오히려 탁 트인 시야 덕분에 화구벽의 디테일과 하늘의 표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산이 허락한 찰나의 미학이 아닐까.

매년 같은 날, 같은 장소를 찾지만 한 번도 같은 풍경을 만난 적이 없다. 어떤 날은 비바람에 젖고, 어떤 날은 운해에 잠기며, 이번처럼 새털구름 아래 찬란하게 빛나기도 한다. 이것이 매년 6월 6일, 한라산을 오르는 이유다. 비바람을 견디고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이 사진도 독자들의 가슴에 시원한 바람과 분홍빛 설렘으로 피어나길 소망해 본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윗세오름 주변에 산죽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어 철쭉과 진달래 등 많은 군락이 사라져 가고 있다. 국립공원에서 산죽 퇴치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그 면적과 번식 속도에 비해서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정현석 산악사진가.

한라산 철쭉 사진 주요 포인트

① 영실기암(오백나한) 구간

- 급경사 계단길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기암괴석이 장관. 운해가 낄 때 최고지만, 날이 맑을 때는 암벽의 수직 라인을 강조해 촬영.

② 병풍바위 상단

- 가파른 길을 다 오르고 나면 시야가 터진다. 여기서부터 화구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며, 고산 지대의 탁 트인 풍경을 담을 수 있다.

③ 선작지왓

- 윗세오름 대피소 도착 전, 약 1km 이상 펼쳐지는 고원 평원. 등산로 데크 양옆으로 철쭉이 가장 조밀하게 피어 있다. 데크에 바짝 붙어 로우 앵글로 철쭉을 전경Foreground에 크게 배치. 멀리 보이는 화구벽을 배경으로 두고, 하늘의 새털구름 비중을 40% 정도 할애하면 광활함이 극대화된다. 대피소 가는 도중 왼쪽 전망대에서 화구벽 뒤로 떠오르는 일출 장면과 주변 철쭉을 같이 촬영할 경우 아주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

④ 노루샘 부근

- 샘터 주변의 습지 덕분에 식생이 독특하다. 구상나무 고사목과 철쭉을 한 프레임에 담아 한라산만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좋다.

⑤ 윗세오름 대피소~남벽 분기점(돈내코 방향 시작점)

- 대피소에서 남벽 방향으로 향하면 화구벽의 모습이 영실 쪽과는 전혀 다르게 변한다. 방애오름전망대는 남벽이 가장 정면으로 보이는 구간이다. 영실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수직적이고 남성적인 암벽의 결을 담을 수 있다. 남벽 분기점으로 가는 길목은 화구벽 바로 밑을 지나는데 여기서 거대한 암벽의 디테일과 그 틈새에 피어난 철쭉의 강인함을 클로즈업하기 좋다.

⑥ 남벽 분기점~돈내코 하산길

- 백록담 남벽의 웅장함을 마지막으로 넓게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새털구름이 남벽 위로 부채꼴로 퍼지는 순간을 담아내면 된다.

Tip 렌즈 구성

- 영실에서 오르는 초입과 윗세오름·선작지왓 초입은 멀리 백록담 화구벽을 원경으로 담기 때문에 24mm 이상 준광각·표준 렌즈가 적당하다. 윗세오름 대피소를 지나 화구벽 아래 철쭉 군락지에서 촬영할 때는 20mm 이하의 광각 렌즈를 사용해 철쭉 군락과 가까이 있는 화구벽, 그리고 하늘을 함께 담아내면 한라산만의 아름다운 산악 사진을 완성할 수 있다.

촬영 당시 카메라 설정값

후지필름 GFX100S, 초점거리 20mm, 측광모드, 노출 0, 조리개 값 F11, 셔터스피드 1/100초, ISO 400, 화이트밸런스 자동, 플래시 미사용, 삼각대 미사용, 그러데이션필터 사용, 촬영 후 약간의 포토샵 후보정.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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