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시장에 나타난 '창문세' 효과 [더 머니이스트-김효선의 부동산이지!]

2026. 6. 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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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창문이 사라진 영국의 이상한 건물. 1696년 영국 정부가 창문세를 걷기 시작하자 절세를 위해 건물을 지을 때 일부러 창을 내지 않았다. 사진=한경DB

17세기 영국에는 역사상 가장 독특한 세금으로 꼽히는 창문세(window tax)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유리가 귀했고, 유리창은 곧 부유함의 상징이 됐습니다. 창문세는 유리창의 숫자에 따라 매겨졌고, 창문이 많을수록 세금 폭탄을 맞게 돼 사람들은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 창문을 합판으로 가려서 숨기거나 아예 창문을 막아 숫자를 줄이는 방법을 사용하기에 이릅니다. 이 창문세는 주택세의 도입으로 폐지되기 전까지 무려 150년 가까이 시행됐는데, 이런 이유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영국의 중세 건물 중 창문이 있어야 할 곳 몇 군데가 막힌 채로 남아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제도가 인간의 행동과 시장의 형태를 바꾼 대표적인 '문턱 효과' 사례입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심리적 병목 현상이 데이터로 포착되고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등록된 서울 아파트 중개거래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현재 시장은 자금 규모와 대출 규제선에 따라 상이한 3개의 시장으로 쪼개진 점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과거 창문세처럼 제도가 정한 금액 기준선을 넘지 않으려는 매수자의 치열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곳은 서울 아파트 거래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15억원 이하 시장입니다. 이 구간은 전체 중개거래량(2만6412건)의 80%에 달하는 2만1079건을 기록하며 시장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원·도봉·강북구 등 중위가격이 5억~7억원대에 형성된 저가 시장이 대표적입니다. 이 시장의 특징은 대출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는 점입니다. 그 덕분에 대외 환경 변화에 급격하게 흔들리지 않고, 봄 성수기 진입과 함께 완만한 거래 상승세를 보이며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는 기저 수요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시장의 가장 독특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곳은 15억~25억원 사이의 이른바 '점이 지대' 시장입니다. 성동·동작·마포·강동구 등이 대표적이며, 중위가격이 12억~17억원 선에 걸쳐 있습니다. 이 구간은 주택담보대출의 중요한 임계점인 15억원 규제선의 영향을 받습니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대출 가능 한도 내에서 최선의 상급지를 선택하려는 실수요자가 15억원 바로 직하 구간인 14억~15억원 사이에 촘촘하게 몰려드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동작구(141건), 영등포구(101건), 강동구(92건) 등에서 이 같은 경계선 거래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규제가 매수자의 자금 조달 의사결정에 얼마나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자료=국토교통부


마지막으로 강남·서초·용산구 등으로 대표되는 25억원 초과의 초고가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며 자산가의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장은 또 다른 대출 제약선인 25억원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여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강남구(40건), 송파구(30건), 마포구(27건)를 중심으로 25억원을 넘지 않는 24억~25억원 직하 구간에 수요가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고가 시장 내에서도 규제 임계값을 넘지 않으려는 신중함과 특정 신축 단지로의 가격 집중 현상이 데이터로 증명된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서울 아파트 시장은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대출 규제와 상관없이 실수요층이 탄탄하게 받쳐주는 15억원 이하 시장, 15억원 규제선 안에서 상급지 갈아타기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점이 지대 시장, 그리고 25억원 경계선 안에서 핵심지 위주로 실속 있는 매수를 이어가는 초고가 시장이 분리돼 움직이고 있습니다.

과거 영국의 창문세가 건물주들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었듯, 현재 서울 시장의 경계선 거래 집중 현상 역시 시장 참여자가 제도 안에서 찾아낸 가장 합리적이고 영리한 생존 전략입니다.

대출 규제라는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한, 임계점 직하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수요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 투자자는 단순히 전체 거래량 통계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입하고자 하는 자금대별 가격 구간이 어떤 규제선에 맞닿아 있는지 쪼개어 봐야 합니다. 정책이 정의해 놓은 제도를 이해하고 그 틈새에서 움직이는 실속 있는 수요의 흐름을 짚어내는 혜안이야말로 분절된 시장에서 중심을 잡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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