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는 왜 PC용 칩을 만드나 [AI칩 인사이드]

김이슬 기자 2026. 6. 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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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에이전트 PC 시장 진출, 추론 최적화 CPU 판매 확대
퀄컴·Arm 등 IP 정체성 허물고 AI칩 제조 도전장
삼성 GPU 독자개발 '명과 암' 평가 엇갈려


3년 전, 현재 국가 대표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대표를 인터뷰하던 중 삼성전자의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업 진출 가능성과 경쟁력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엔비디아가 GPU로 반도체 시장을 흔들 때였다. 당시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이었고 그 정도 체급이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지금 보면 굉장히 단순한 접근이었다. 실제 삼성 반도체 사업부 근무 경력이 있던 그는 단칼에 "메모리 집중 전략이 낫다"고 답했다. 종합 반도체란 사업 특성과 다소 경직된 조직 문화 때문이었다. AI 파고가 덮친 후 GPU 제조사가 CPU를 만들고, 설계자산(IP) 공급 주력 회사가 완제품을 팔겠다고 나선 격변에도 그의 판단은 유효할까.

AI 언어모델 학습에 최적화한 GPU 하나로 데이터센터를 휩쓸며 글로벌 시총 1위 자리에 오른 엔비디아가 CPU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엔비디아가 예상한 CPU 시장 규모는 2000억달러, 올해 자사 CPU 예상 매출은 약 200억달러 수준이다. 젠슨황 CEO는 이번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도 CPU 전략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황 CEO는 "세계 최대 CPU 공급 업체를 목표로 한다"고 자신했다. 대만에서 열린 IT 박람회 컴퓨텍스에선 델과 마이크로소프트(MS) PC에 탑재될 새로운 칩을 소개했다. 자체 개발 CPU와 블랙웰을 묶은 형태로 AI 에이전트 서비스 본격화에 대비한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최근 AI 반도체 시장은 에이전틱 AI 대중화와 함께 추론 수요가 늘면서 칩을 제어하는 CPU 중요도가 커졌고, 이로 인해 인텔과 AMD를 중심으로 CPU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GPU에 밀려 매각설까지 돌던 인텔은 올 1분기 매출이 시장 예측치보다 10% 상회한 135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글로벌 CPU 시장을 양분하는 AMD도 깜짝 실적을 낸 가운데 서버 CPU 시장 성장 전망치도 35%로 기존 전망의 2배로 상향 조정했다. 구글 TPU와 아마존 트레이니엄처럼 독자 칩 개발에 나선 빅테크들조차 CPU만 별도로 구매를 늘리는 상황이다. 엔비디아의 이번 발표는 인텔과 AMD에 집중되는 CPU 물량까지 거두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기존에 엔비디아는 그레이스와 베라처럼 자체 CPU를 만들었지만 GPU 보조 성격이 강했다"며 "온디바이스 AI 수요가 점차 커지자 모바일보다 볼륨이 큰 대표 개인용 기기 PC 시장으로 AI 생태계 확장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AI 격동기를 맞은 반도체 산업은 기업들의 사업 다각화로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는 중이다. 모바일 칩의 강자 퀄컴은 미래 성장 돌파구로 삼은 데이터센터용 AI칩 시장에 본격 뛰어든 이후 가시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 바이트댄스는 퀄컴이 설계한 칩 수백만개를 조달해 AI 에이전트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로 결정했다. 바이트댄스가 자체 설계한 칩을 공급하는 맞춤형 주문반도체(ASIC)까지 퀄컴이 주도한다. 엔비디아 GPU가 HBM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퀄컴은 LPDDR(저전력 D램)을 탑재한 설계로 틈새를 파고 들었다. 추론 반도체에 들어갈 비용과 효율 면에서 유리해 위협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30년간 스마트폰 설계자산(IP)으로 시장을 평정한 영국 Arm도 AI 데이터센터용 자체 칩 제조·판매에 뛰어들었다. 이 변화를 이끌고 있는 르네 하스 Arm CEO는 "이런 전략 변화로 회사 매출 5배가 늘 것"이라고 했다. 다만 고객사 이탈은 리스크로 남아 있다. 퀄컴과 애플 등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90%가 Arm의 IP를 제공받아 칩을 만들어온 만큼, 경쟁으로 맞붙게 된 기존 고객사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점이 변수다. 기우가 아닐 수 있다. 가까운 예로 삼성전자는 모바일과 가전, 반도체 사업을 함께 영위한다는 이유로 과거 애플 등 경쟁업체들은 삼성 파운드리를 기피했고, 기술력을 차치하더라도 TSMC와의 수주전에서 열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 삼성전자가 2027년 모바일 AP 탑재를 목표로 독자 GPU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으로 업계는 한창 떠들썩했다. 독자 개발하면 높은 로열티가 사라져서 주주들은 환호했지만, 자칫 AMD 등 고객사를 자극할 수 있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회사 측은 "미국법인(SEA)에서 추진하는 글로벌 엔지니어 영입만으로 GPU 개발 프로젝트와 연관짓는 건 무리"라면서도 "해외 IP를 기초로 한 특화 설계 연구개발은 진행 중"이라고 일축했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외부 IP를 조합해 제품을 만드는 구조에 머물러선 장기적으로 차별화를 도모할 수 없다고 본다. 엔비디아와 퀄컴 등 거물 IT기업 CEO들은 한 목소리로 AI 시대 경쟁력은 부품이 아닌 컴퓨팅 플랫폼에서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AI가 몰고 온 변화에 맞춰 정체성까지 바꾸는 반도체 업계 사례에서 보듯 성장 기업에는 엄연한 성공 방정식이 있는 것 같다. 자칫 뻔하지만 안주 않고 도전하는 자세다.

돌이켜보면 삼성은 과거 2010년부터 독자 CPU 코어 개발에 나섰다가 발열 문제로 9년만에 개발팀을 해체했다. AI칩 시장에서 메모리 후발주자였던 SK하이닉스에 선두를 내준 것도 AI 부흥기를 앞두고 HBM 개발팀을 공중분해시켰기 때문이다. 당장 수익이 잘 나는 모바일·PC D램에 치중하느라 손을 뗀 게 패착이었다. 이쯤되면 중도 포기없이 밀고 나가는 것도 성장의 필수조건이다.

AI 호황 속에서 GPU건 CPU건 그 밖의 새로운 AI 인프라가 생겨나도 결국은 메모리 병목에 따른 수요 증가로 귀결된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국내 메모리 기업들은 당분간은 공급 부족으로 가격 주도권을 꽉 쥐고 있을 것이다. 잘 나가는 만큼 독자 개발 시도는 괜한 리스크만 낳는 꼴이라는 지적도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3년 전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6조5400억원, 올해는 350조원까지도 바라본다. 메모리 르네상스로 눈앞에 곳간이 넘쳐나지만 3년 뒤, 5년 뒤 어떤 기술을 쥐고 있을 건지 해답은 분명히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 생태계 방향성을 정할 진정한 주도권을 가져야 사이클 변수에 종속되지 않는 새로운 서사도 시작될 수 있다.

김이슬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