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쌓는'시대, 칩메이커 뒤에서 조용히 폭등…식각이 뭐길래[반도체 8대공정]

김영은 2026. 6.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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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쌓을수록 돈 번다
반도체 미세공정 뛰어넘는 적층화
HBM·낸드 쌓는 시대, 식각이 핵심

[커버스토리 : 반도체 8대공정-식각공정]

램리서치 로봇 덱스트로. 램리서치


반도체 시장의 시선이 메모리에 쏠려 있을 때 장비 시장에서 조용히 몸값을 올린 주인공도 있다. 미국 램리서치다. 램리서치 주가는 1년 새 285% 폭등하며 같은 기간 엔비디아(57.6%)의 상승률을 4배 웃돌았고 반도체 노광장비 독점 기업인 ASML(113%)도 가볍게 제쳤다.

반도체 미세화로 인해 웨이퍼 위 밑그림(포토공정)을 따라 필요한 회로만 남기고 불필요한 물질을 깎아내는 ‘식각공정’이 핵심 승부처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때 식각공정은 원자에 가까운 나노미터 단위로 이뤄진다. 

램리서치는 식각 장비 시장의 1인자다. 1980년 설립 이후 가스와 플라스마를 이용한 ‘건식 식각’의 표준을 제시하며 시장을 지배해 왔다. 기존 화학 용액 기반의 ‘습식 식각’은 액체가 회로 사이에 스며들어 미세 패턴을 무너뜨리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램리서치가 고도화한 가스 기반의 건식 식각은 나노미터 단위의 정교한 제어를 가능케 하며 미세 공정의 필수재가 됐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최근 반도체업계는 회로를 얇게 그리는 데서 진화해 HBM처럼 반도체를 수직으로 높게 쌓아 올리며 미세화의 한계를 극복했다. 반도체 적층화 시대에 식각공정의 지위는 더 높아졌다.

각 D램 다이에 미세한 수직 통로(TSV)를 오차 없이 뚫어 적층 후 데이터가 흐르게 하는 고종횡비(HARC) 식각 기술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램리서치를 대체할 기업은 사실상 없다. 램리서치에 한국 시장은 큰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초고단 HBM과 차세대 D램 투자를 집행하면서 한국은 램리서치 매출 기준 2위 시장을 차지했다. 

D램보다 먼저 적층화에 도전한 낸드플래시 공정에서도 식각공정이 핵심이다.

특히 8단에서 12단 정도인 HBM과 달리 낸드플래시는 300단을 넘어 400단 이상까지 상용화를 앞두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셀을 한 번에 깊게 뚫는 기술이 한계에 직면했다.

구멍이 휘거나 밑바닥에 도달하기 전에 식각 능력을 잃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극저온 식각’은 웨이퍼 온도를 영하 60~70도 이하로 낮춘 기술이다.

온도가 극도로 낮아지면 식각 가스가 회로 표면에 더 잘 흡착되어 종횡비가 높아질 때 발생하는 측면이 잘못 깎여 나가는 현상(보잉)을 방지한다. 수직 방향으로만 정교하고 빠르게 구멍을 뚫을 수 있어 생산성과 수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식각공정은 여전히 램리서치와 도쿄일렉트론(TEL),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같은 글로벌 장비 강자들이 주도한다. 하지만 식각 난도가 높아지면서 틈새시장을 파고들거나 핵심 소재·부품 공급망을 대체하는 국내 소부장 업체들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브이엠은 외산 장비사들의 전유물이었던 ‘메인 건식 식각(Dry Etch)’ 장비 국산화에 성공했다. 브이엠의 주요 고객사는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 HBM 생산 공정에도 이 회사 장비가 적용되고 있다. 

피에스케이(PSK)는 그동안 식각 후 잔여 감광액을 제거하는 ‘드라이 스트립(Dry Strip)’ 장비로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왔다. 램리서치 등 글로벌 기업들이 메인 식각 시장을 장악한 사이 세정·마감 영역을 파고들며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 4572억원 중 70%가 해외에서 나왔다. 

소재·부품 분야에서는 솔브레인의 고순도 식각액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솔브레인은 3D 낸드 적층 공정의 필수 소재인 ‘고선택비 인산(HSN)’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낸드를 높이 쌓기 위해서는 산화막과 질화막을 번갈아 쌓은 뒤 질화막만 선택적으로 녹여내야 한다. 솔브레인의 HSN은 다른 막질에 손상을 주지 않고 질화막만 완벽하게 제거하는 독보적인 화학 소재다.

식각 장비 내부의 소모성 핵심 부품인 포커스 링을 공급하는 비씨앤씨 역시 신소재를 앞세워 국산화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로 국산 합성쿼츠 소재 ‘QD9+’를 독자 개발했는데, 기존 천연 쿼츠 부품보다 순도가 높고 내마모성이 강해 부품 수명을 1.5배 늘려준다. 장비 교체 주기를 늘려 국내 대기업은 물론 북미 글로벌 거인들의 양산 라인까지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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