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이스라엘을 사랑한 '아우슈비츠의 발레리나'

2023년 10월 가자전쟁(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최소 7만5,000명이 숨졌고, 그중 3만8,000명 이상이 여성과 소녀들이라고 유엔여성기구는 추정한다. 유니세프 자료로는 2025년 9월까지 어린이 최소 6만4,000명이 숨지거나 부상당했다. 이스라엘 측 희생자는 민간인 1,200여 명을 포함해 1,700명 남짓이다.
아랍계가 ‘나크바(Nakba, 대재앙)'라고 부르는 이스라엘 건국(1948) 이후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과의 분쟁으로만 최소 11만~14만 명이 숨졌고,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에 등록된 난민은 590만여 명이다. 이번 전쟁으로 가자 주민(약 220만 명) 생존자 90% 이상이 사실상 난민이 돼 굶주림과 전염병, 의료 공백 지대로 쫓겨났다. 유대 국가 건설이란 종교 세속적 집념(Zionism)과 건국 이후의 군사적 확장주의(대이스라엘주의)가 빚어온 인류 최악의 진행형 잔혹사다.
이 현실의 맥락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변주-재생산되고 있는 홀로코스트 서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재를 정당화하려는 ‘기억의 정치화’에 냉소하거나 외면해야 할까. 고통스러워도 구분해서 봐야 할까.
‘아우슈비츠의 발레리나’라 불리며 용서와 치유, 희망의 구루로 칭송받아 온 홀로코스트 생존자 출신 상담심리학자 에디트 에거(Edith Eva Eger)의 삶을 반추하는 일도 저 잔인한 질문에 닿아 있다. 에거는 만년의 자서전 ‘선택(The Choice: Embrace the Possible)’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상황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자 학살이 한창이던 2024년 9월 이스라엘 매체 인터뷰에서 그는 “이스라엘인들이 테러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를 가질 권리를 지지한다”며 하마스 테러로 고통받아온 이스라엘 시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가 별세했다. 향년 98세.

중-서 유럽을 잇는 교역 도시 코시체(Kosice)는 긴 세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였다가 1차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로, 38년 나치에 의해 다시 헝가리로, 종전 후 다시 체코슬로바키아로 편입됐다가 93년 분리 독립한 슬로바키아 영토가 된, 20세기 어지러운 중부유럽사의 상징적 도시 중 하나다.
에거는 헝가리계 유대인 재봉사 아버지와 주부 어머니의 3녀 중 막내로 1927년 코시체에서 태어났다. 맏언니 클라라(Klara)와 둘째 마그다(Magda)는 각각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지만 에거는 체조와 발레에 두각을 보여 10대 중반(41년 말~42년 초) 헝가리 올림픽 체조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하지만 42년 반유대인법으로 대표팀에서 쫓겨났고, 44년 3월 나치가 헝가리를 직접 통치하면서 게토에 수용됐다가 5월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이송됐다. 부다페스트 음악원에 다니며 따로 살던 맏언니는 한 교사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부모는 아우슈비츠에서 곧장 처형됐고, 만 16세의 에거는 '죽음의 천사'라 불리는 친위대 의사 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 앞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 선율에 맞춰 발레를 해야 했다. 그는 거기가 부다페스트 오페라 하우스라고 상상하며 춤을 췄다고 훗날 자서전에 썼다. 공연 후 멩겔레가 던져준 빵 한 덩이를 그는 수용소 소녀들과 나눠먹었다고 한다.
굶주림과 학대, 잦은 강제 채혈을 당하며 여러 수용소를 거쳤던 그와 마그다는 종전 직전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의 하위 수용소인 군스키르헨(Gunskirchen)의 가스실로 이송됐다. 그리곤 45년 5월 미군에 의해 시체 더미 속에서 구조됐다. 체중 32kg의 그는 척추 골절과 장티푸스, 폐렴, 흉막염 진단을 받았다. 귀향 후 병원 치료를 받던 중 결핵 병동서 만난 체코슬로바키아 파르티잔 출신 유대인 청년 벨라(Bela)와 이듬해 말 결혼했다. 만 19세의 그에겐 ‘일상’이 간절했고, 그게 결혼이었다.
부부는 체코 공산화 직후인 49년 두 어린 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 55년 텍사스주 엘파소에 정착했다. 벨라는 회계사가 돼 가족을 부양했고, 에거는 뒤늦게 엘파소 텍사스주립대(심리학)에 진학, 7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전문 상담심리학자로 지역 군 병원 등에서 일하다 캘리포니아 라호야(La Jolla)로 이주, 말년까지 상담소를 운영했다.
수용소로 실려가던 트럭 안에서 어머니가 해준 말 즉 “모든 걸 잃더라도 네가 머릿속에 담아둔 건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상시적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견딘 그였지만, 일상을 되찾은 뒤로도 대학에 진학하던 무렵까지 약 21년간 옛 기억을 애써 외면하며 침묵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아우슈비츠 생존자 출신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기억과 대면하기 시작했고, 53세 무렵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방문한 뒤 비로소 기억-억압의 모든 빗장을 열게 됐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과거와 온전히 대면하지 못하면서 상담을 해온 나 자신이 사기꾼처럼 느껴졌다.”
그는 첫 증손자를 얻은 80대 무렵부터 “아이들이 나를 좋은 롤모델로 여겨주길 바라는 마음”에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그 책이 만 90세 되던 2017년 출간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선택’이었다. 그는 3년 뒤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기, 용서하기, 현재에 집중하기 등 12가지 교훈을 예시와 함께 기록한 ‘선물(The Gift: 12 Lessons to Save Your Life)’을, 또 3년 뒤인 2024년 청소년 버전 자서전 ‘아우슈비츠의 발레리나’를 잇달아 출간했다. 세 책 모두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됐다.
그렇게 그는 단숨에 21세기 가장 극적인 홀로코스트 서사의 주인공이 됐고, 강연과 인터뷰, 칼럼과 SNS로 세계인에게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했다.

세 번째 책 출간 직후인 2024년 9월 이스라엘 매체 인터뷰에서 그는 하마스의 10·7 공격과 가자전쟁으로 고통받는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우슈비츠에서 나는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의 고통도 일시적인 것이며, (…) 매 순간이 우리에겐 새로운 기회다.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한다. 내가 유대인 여성인 사실이 너무 너무 자랑스럽다.”
가자전쟁 초기인 2023년 11월,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dr.editheger)에 하마스 공격으로 희생된 이스라엘 시민과 ‘평화로운’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희생에 안타까움을 전하며 “증오는 사랑을 만들지 못한다”는 소신을 거듭 피력했다. 그는 “반유대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식, (…) 유대인에 대한 깊은 증오 때문에 전 세계에서 많은 무고한 이들이 고통받거나 목숨을 잃고 있다는 소식에(…) 여러 생각이 든다”고도 썼다. 그리고, 테러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를 가질 이스라엘 시민들의 권리와 평화를 사랑하는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존엄과 자유를 함께 지지한다고 맺었다.
동조-응원의 댓글 못지않게 격렬한 비판 댓글이 이어졌다. 당신이 어떻게 시오니즘을 지지할 수 있는가, ‘테러로부터의 자유’가 가자 학살-인종청소의 정당화와 어떻게 다른가, ‘평화로운 팔레스타인인(the peaceful Palestinians)’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등등. 비판의 요지는 한마디로 그의 평화란 시오니즘적 질서하의 평화일 뿐이라는 거였다.
그는 “분노와 증오를 여기 가져오지 말아 달라”는 말과 함께 결국 댓글 쓰기를 제한했다.
2024년 10월 한 칼럼에서 그는 “우리가 복수를 추구한다면, 설사 그것이 비폭력적 복수라도 우리는 나아가지(evolving)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 뿐(revolving)”이란 ‘선택’의 문장을 인용하며 이스라엘 국민과 군인들에게 ‘용서’를 호소했지만, 거기서도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고통과 피해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극단적 비대칭적 살상의 책임 역시 묻지 않았다.
사실 이스라엘 현대사는, 홀로코스트에서 출발한 다수의 유대계 윤리철학자들에게도 이론-사상적 덫이 되곤 했다. ‘타자(the Other)에 대한 무한 책임’을 윤리철학의 핵심 테제로 삼았던 홀로코스트 생존자 출신 유대인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그 예다. 그에게 타자는 ‘나’의 범주로 포섭될 수 없는 고유하고도 개별적인 절대자다. 그래서 나는 대속도 감당할 만큼 타자에게 무한책임을 지지만, 타자를 나의 범주로 환원해(총체화, totalize) 타자에게도 대칭적 책임을 져달라고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는 여러 타자들, 즉 ‘제3자(the Third)’들이 존재하므로 그들 중 누구를 자신의 타자로 삼을지 저울질하는 순간 정치-정의가 개입되고 전체화-총체화가 시작된다고, 거기서 윤리와 정치 사이의 필연적 긴장-윤리의 실패가 비롯된다고 경계했다.
레바논 전쟁이 한창이던 1982년 9월, 이스라엘 측 극우 민병대가 베이루트 서부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사브라-샤틸라)에 난입해 수천 명의 민간인(여성-어린이 포함)을 학살한 직후, 레비나스는 프랑스의 유대계 라디오 방송(RCJ)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타자’는 이웃이지만 당신의 이웃이 다른 이웃을 공격하거나 부당하게 대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는 타자성 속에서 적을 발견할 수도 있고, 적어도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누가 정의롭고 누가 부정한지 판단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잘못된 사람들도 있다(There are people who are wrong).” 주디스 버틀러 등 동료 철학자들은 레비나스가 "자신의 윤리-타자의 얼굴 앞에서의 무한책임-를 정치로 대체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타자로서의) 얼굴 없는 존재로 전락시켰다”며 매섭게 비판했다. 저 에피소드는 시오니즘의 덫에 걸린 윤리(의 실패)의 상징적 사례로 기억된다.

‘공감(compassion/empathy)’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도 있다. 그에게 공감이란, 타자의 고통이 그의 과오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전제(책임 판단)하에서, 그 고통이 나의 것일 수도 있다는 서사적 상상력에 의해 발현되는 지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그 공감은 가족이나 집단 등 좁은 범주에 갇힐 경우 공동선으로 확장되는 데 장애가 되는 양면성을 지닌다. 예컨대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고통은 하마스 테러라는 원인 즉 누스바움식 공감을 얻기 위한 책임 판단의 전제를 충족시키지 못한 고통이었다. 평화와 용서를 호소한 에거의 착한 말과 글들이 꺼림칙한 뒷맛을 남긴 까닭도, ‘평화로운’ 팔레스타인이란 전제와 달리, 이스라엘(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에 기반한 선택적 공감- 좁은 공감에 갇힌 탓일지 모른다.
비유대계 성공회-개신교 집안 출신인 누스바움은 20대 시절 내세관 중심의 개신교에 환멸을 느껴 탈무드적- 현세적 정의의 종교라는 유대교로 개종, 만 61세 때인 2008년 성인식(bat mitzvah)까지 치른 드문 이력의 철학자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화해와 공존을 지지해온 그는 2002년 좌파 매체 ‘The Nation’에 기고한 글에서 “이스라엘은 내게 당혹스러움의 원천”이라며 ‘근육질 시오니즘’이 아닌 진보적-코스모폴리탄적 이스라엘을 희망했지만, 이번 가자전쟁을 두고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레비나스의 ‘타자에의 무한 책임’을 “윤리적 태도의 정치적 무능”이라 했던 슬라보예 지젝의 비판은 누스바움의 저 안전한 ‘화해와 공존’에도, 또 에거의 ‘용서와 평화'에도 해당될 것이다.
다시 묻자. 21세기 가자 학살의 현장과 20세기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우리는 어떻게, 하나에 눈감지 않고 사유할 수 있을까.
1994년 저서 ‘극단의 시대(1914~1991)’를 집필하며 저 질문을 두고 고민했을 유대인 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600쪽이 넘는 저 책에서 홀로코스트를 거의 스치듯 언급했고, 알파벳 순 색인에도 포함시키기 않음으로써 좌-우파 진영 모두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홉스봄은 자칭 ‘비유대적 유대인’이다.
폴란드 출신 좌파 유대계 사학자 겸 전기 작가 아이작 도이처(Issac Deutcher)가 1958년 발표한 에세이(The Non-Jewish Jew)에서 유래한 저 용어를 도이처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종교적으로 무신론자이며 유대 민족주의에 반하는 국제주의자다. 따라서 어떤 의미로도 나는 유대인이 아니다. 그러나 박해받고 학살당한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 연대 때문에, 그리고 유대 역사의 맥박을 느끼기 때문에 나는 유대인이다.
홉스봄은 8년 뒤인 2002년 출간한 자서전 ‘미완의 시대’에, 앞선 비판에 해명하듯, 피해자성에 입각한 유대인 정체성을 부정하며 이렇게 썼다. “내가 태어난 민족이 선택된 혹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믿을 만한 가장 적절한 이유는, (성경이나 홀로코스트 때문이 아니라) 게토에서 해방된 이후 대략 2세기 동안 인류 전체를 위해 문화 과학 예술 등에서 보여준 놀라운 기여 때문이다.”
에거는 93년 작고한 벨라와 2녀 1남을 두었고, 5명 손주와 7명 증손주를 얻었다. 일가는 “에거의 지혜와 가르침을 새로운 세대에 전파하고 다양한 공동체에 널리 알리기 위해” ‘에디트 에거 재단’을 설립했다. 에거는 청소년 버전 자서전 ‘아우슈비츠의 발레리나’를 별도로 출간하며 이렇게 말했다. “청소년들이야말로 평화와 선의의 대사이고 우리의 미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 의해서든 결코 희생양이 아닌, 살아남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가 저 말을 하는 순간에도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은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에 숨져갔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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